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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정상에  서면 주변의 연봉들을 두루 볼 수가 있다.
민주지산 정상에 서면 주변의 연봉들을 두루 볼 수가 있다. ⓒ 김연옥
나는 지난 6일 민주지산(1241.7m, 충북 영동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예전부터 민주지산에 한번 가고 싶었던 건 순전히 그 이름 때문이다.

사실 민주지산(岷周之山)이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民主之山'으로 생각되어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마지막 시구를 떠올리곤 했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우리 일행은 아침 8시 마산을 출발하여 11시에 산행 기점인 도마령(800m)에 도착했다.

영동군 상촌면과 용화면을 가르는 도마령은 옛날 칼을 든 장수가 말 타고 이 고갯길을 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칼을 든 그 장수가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또 어떤 사람인지 전해지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고개 이름 하나 멋지게 남긴 셈이다.

각호산 정상에서. 멀리 민주지산 봉우리가 아득하게 보인다.
각호산 정상에서. 멀리 민주지산 봉우리가 아득하게 보인다. ⓒ 김연옥
각호산 정상.
각호산 정상. ⓒ 김연옥
출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비탈진 길을 계속 오르기가 좀 힘들었지만, 싱그러운 초록으로 하늘을 가린 숲길은 시원해서 좋았다. 11시 50분쯤 나는 각호산(角虎山, 1176m) 정상에 이르렀다.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각호산. 무엇보다 시야가 탁 트여 기분이 상쾌하다. 그곳에 서면 민주지산의 봉우리가 그윽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벌써 내 마음은 민주지산을 찾아 여름 숲속으로 종종걸음 치고 있었다.

나는 각호산 정상에서 내려와 능선을 타고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내 몸에 서걱서걱 부딪치는 풀잎 하나 하나에서도 이제 여름이 느껴진다. 숲속은 겉으로는 고요가 흐르는 듯하나, 살랑살랑 부는 바람결 따라 여름 향기 묻어나는 풀꽃들이 내게 자꾸 속삭속삭한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숲속은 풍요 그 자체다. 새들의 아름다운 소리에 뿌리 깊은 나무들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 숲속. 등산객들의 둔탁한 발소리와 이야기 나누는 소리에 숲속의 평화가 깨져 버리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산행을 할 때 되도록 침묵한다. 그리고 홀로 존재하면서도 여럿이 어우러져 지내는 법을 숲속에서 배우게 된다.

내 몸에 서걱서걱 부딪치는  풀잎 하나 하나에서도 여름 향기가 묻어난다.
내 몸에 서걱서걱 부딪치는 풀잎 하나 하나에서도 여름 향기가 묻어난다. ⓒ 김연옥
영동군의 최고봉인 민주지산. 능선 길이라 가파르지 않는데도 그간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우연히 일흔일곱이 되었다는 조일제 할아버지가 그날 나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 할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마음에 드는 산행 코스를 잡은 산악회를 그때그때 따라나선다 했다. 내가 걷다 지치면 할아버지가 멀찌감치 떨어져 기다려 주었다.

민주지산 정상. 그날 산행에서 조일제(77) 할아버지가 나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민주지산 정상. 그날 산행에서 조일제(77) 할아버지가 나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 김연옥
몇 번이나 그렇게 쉬다 걷다 하면서 낮 1시 40분쯤 민주지산 정상에 이르게 되었다. 민주지산 정상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그러나 시야가 트여 조망이 참으로 좋다.

그곳에 서면 주변의 연봉들을 두루 굽어볼 수가 있다. 산 이름에 두루 주(周)가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민주지산 정상에서 내려와 쪽새골 갈림길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각자 가져온 김밥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할머니가 손수 담갔다는 오디와 오가피 등으로 만든 달짝지근한 술도 몇 모금 얻어 마셨다.

나는 바위 모양이 쌀겨처럼 생겼다는 석기봉(1200m)과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 충북 영동군과 접해 있어 경북, 전북, 충북의 3개 도가 한데 모인 삼도봉(三道峰, 1177m)까지 계속 걸어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낮 2시 20분에 쪽새골 갈림길에서 민주지산 입구 쪽으로 할아버지와 같이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쪽새골 갈림길에서 민주지산 입구 쪽으로 하산하는 길. 온통 돌밭이었다.
쪽새골 갈림길에서 민주지산 입구 쪽으로 하산하는 길. 온통 돌밭이었다. ⓒ 김연옥
쪽새골. 시원한 물에 손을 씻고 오디와 오가피 등으로 담근 달짝지근한 술도 마저 마셨다.
쪽새골. 시원한 물에 손을 씻고 오디와 오가피 등으로 담근 달짝지근한 술도 마저 마셨다. ⓒ 김연옥
그런데 쪽새골 쪽은 온통 돌밭이었다. 짜증스러울 만큼 그렇게 돌이 많이 깔린 너덜겅은 처음 보았다. 그래도 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로 짜증을 씻겼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가져온 달콤한 그 술을 둘이서 마저 마셔 버렸다.

하산길에.
하산길에. ⓒ 김연옥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를 지나 상도대리까지 12.8㎞에 이르는, 그 유명한 물한계곡은 바로 민주지산과 석기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계곡과 삼도봉과 석기봉 사이에서 발원하는 계곡이 합쳐져 형성된 것이다. 문득 류시화 시인의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이 떠올랐다.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한참 내려가다 보니 하늘로 쭉쭉 뻗은 잣나무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숲속의 숲'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잣나무 숲은 삼도봉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 있다.

아름다운 잣나무 숲.
아름다운 잣나무 숲. ⓒ 김연옥
잣나무 숲에서 물한리 주차장까지도 꽤 걸어가야 했다. 나는 산행으로 인한 심한 갈증으로 뒤풀이 자리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 방면) 경부고속도로→영동IC→영동 방면 11km(2시간 30분가량 소요)
(부산 방면) 경부고속도로→황간IC→영동 방면 15km(3시간가량 소요)
(광주 방면)호남고속도로→서대전분기점→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영동IC→영동 방면 11km(3시간 30분가량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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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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