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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들과 산에만 꽃이 피는것은 아닙니다
메꽃, 들과 산에만 꽃이 피는것은 아닙니다 ⓒ 권용숙

한남동 고가다리밑 사거리 횡단보도를 빠른 걸음으로 건너갑니다. 빠른 걸음이라기 보단 항상 뛰어 다닙니다. 오 년째 아침저녁,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지나다니는 우뚝 솟은 빌딩옆 은행 입간판 뒤에 촌에서 올라온 애들(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무섭게 덩굴을 뻗으며 한껏 피고 지고 있는 메꽃입니다. 저도 촌에서 올라왔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촌사람 눈에는 촌엣 것들이 보입니다. 같은 동지의식과 무언가 땡기는(?) 것이 있나 봅니다.

한남동 고층빌딩 아래 철책 사이 좁은 땅에 해마다 메꽃이 피고 집니다.
한남동 고층빌딩 아래 철책 사이 좁은 땅에 해마다 메꽃이 피고 집니다. ⓒ 권용숙

두 번 째 날부터는 날 땡기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오우~! 오늘 아침은 나팔 닮은 꽃 다섯 송이나 피워놓고 나팔을 불어댑니다. 아침햇살 아래 보는 연분홍 꽃잎이 어찌 이리도 깨끗할까요. 이른 아침에 막 피어났나 봅니다. 국제적인 도시 서울 하늘아래도 이런 야생화들이 종족을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삭막한 빌딩아래 좁은 땅에 피어난 꽃이기에 더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 권용숙

나팔꽃이 메꽃과 일까요, 메꽃이 나팔꽃과 일까요. 후자로 생각했는데 나팔꽃이 메꽃과 입니다. 메꽃과 나팔꽃은 사촌쯤 되는 것 같은데 다른 점은 메꽃은 하얀 뿌리로 번식하고, 나팔꽃은 씨앗으로 번식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화려하지 않은 메꽃을 더 좋아합니다. 가끔 불러보는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가사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란 가사가 있지요, 정말일까? 했는데 정말이었습니다. 저녁엔 메꽃들이 꽃잎을 다 오무렸습니다. 활짝 핀 꽃잎을 베베 꼬아놓고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다시 꽃잎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어김없이 꽃잎을  오무렸습니다.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어김없이 꽃잎을 오무렸습니다. ⓒ 권용숙

다음 외환은행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자주달개비들이 말을 겁니다.

비올때 자주달개비
비올때 자주달개비 ⓒ 권용숙

"사랑하는 그대여 날 좀 봐요 봐요 날 좀 봐주세요" 비오는 날은 눈물을 글썽이며 절 쳐다봐 달라 합니다 내가 봐주지 않으면 저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는 척 해야 합니다. 빗물 묻은 보라빛의 환상적인 자태는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햇살이 맑은 날은 같은 시간이지만 꽃 색깔이 다릅니다. 아주 변화무쌍한 달개비입니다. 그리고 점심때 자주달개비꽃이 꽃잎을 말기 시작합니다. 꽃잎 끝이 또로록 안으로 말려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이렇게 꽃잎이 말려 들어가는지,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누가 꽃잎을 몰래 말아 넣고 있는 걸까?

자주달개비의 변화 무쌍한 변신, 아침,점심,저녁의 모습입니다.
자주달개비의 변화 무쌍한 변신, 아침,점심,저녁의 모습입니다. ⓒ 권용숙

저녁 해가 서산에 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서산이 보이지 않고 남산만 보입니다. 남산이 서산인가요?

"누가 꽃을 다 따간거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많던 꽃들이 한송이도 없는 겁니다. 마음이 울적해서 그냥 지나쳤었는데 몇 일을 지켜보니 꽃들이 다 봉오리 속으로 쏘옥 말려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갈라진 봉오리사이로 보라빛 꽃잎이 조금 아주 조금 보입니다. 어두운 밤 꽃잎들이 봉오리 속에 숨었다가 아침이 오면 보라색 꽃잎을 활짝 열어놓고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 참 신기합니다.

한남동 이탈리아 문화원앞입니다.
한남동 이탈리아 문화원앞입니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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