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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민수
진달래 피고 지고 철쭉 피어 나는 사이에 피어나는 나무꽃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무꽃들은 풀꽃들보다 늦게 피어나고 나무꽃들이 피어나면 "이젠 정말 봄이 왔구나!" 실감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나무 꽃 중에서는 한 겨울에 꽃을 피우는 비파나무나 매화나무 같은 것들도 있지만 진달래, 병꽃나무, 철쭉 등은 제법 부지런한 편에 속하는 나무들입니다.

풀꽃은 일년초이거나 다년초라고 해도 겨울이면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봄이면 다시 새싹을 냅니다. 그러나 나무는 앙상한 가지로 온전히 겨울을 납니다. 지난 해보다 뿌리는 더 깊고 나무줄기도 더 무성하지요. 그들은 너무 천천히 자라서 매일매일 바라보아도 자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잠시 잊고 있다 바라보면 훌쩍 커버리는 것들이 나무지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는 옷을 하나 둘 놓아버립니다. 그리고 좀더 깊은 겨울이 되면 최소한의 물만 몸에 남겨두고 모두 배출시켜 버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엄동설한에 얼어죽습니다. 벌거벗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온전히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이했으니 새싹을 하나 내는 일, 꽃을 하나 피우는 일 모두가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 김민수
그래서 이젠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젠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것 같았는데, 절망의 가장 밑바닥 같았는데 그 안에 꿈틀거리던 희망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났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을까요? 지금 꽃을 피운 현실,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꿈 같은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들려주고 싶겠지요. 그리고 그 행복 속에는 겨울이라는 고난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알고, 그 고난도 의미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겠지요.

고난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고난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말일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오히려 더 절망시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견딜만한 아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만한 아픔 외에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고 믿고 살아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하얀 거짓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망하다 결국은 절망해버린 이들도 많으니까요.

ⓒ 김민수
그러나 절망에 절망해 버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은 없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이들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말, 그것이 희망의 말입니다. 겨울을 온전히 지내고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운 병꽃나무, 그 병꽃에는 '희망의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담고 있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속내일 것입니다. 물론 외형과 외모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겉모습을 가꾸는 만큼 우리의 속내도 가꿔야겠지요. 그리고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내도 보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김민수
겨울 들판에 서 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춥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죽음의 문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봄의 들판에서 서 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따스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희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명의 신비로움이 어떤 것인지.

봄 안에 겨울 있고 겨울 안에 봄 있고
꽃 안에 봄 있고 봄 안에 꽃 있어
꽃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떤 것인지
꽃 앞에 서 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자작시 '병꽃나무')


병꽃나무는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원예종으로 각광을 받을 만큼 꽃이 예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꽃이 필 무렵이면 황사가 밀려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자라고 있는 병꽃나무는 제 빛깔을 내는 날이 드물지요. 빌딩 숲 사이에서 피어난 그들이 바라보는 하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이미지일까 생각해 봅니다.

꽃들은 어디에 뿌리를 내렸든지 최선을 다해서 피어납니다. 오히려 척박할수록 더 깊은 향기를 간직하고 더욱 더 짙은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일까요? 저 깊은 산골 강원도에서 만난 병꽃나무보다 빌딩 숲에서 만난 병꽃나무가 더 짙습니다. 한 차례 봄비가 내린 다음 날 맑은 햇살 가득 담은 병꽃나무가 봄 햇살을 가득 담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서 손마디가 아프도록 주먹을 꽉 쥐어 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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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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