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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축제를 둘러싼 여러 담론 중 가장 미더운 것은 ‘축제의 문화·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축제가 대다수 시민들이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묻지마식 ‘지역 경제 활성화’를 외치는 이들에게는 지겨운 소리겠지만, 화려한 수사와 언변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이 도외시하는 문화의 의미를 새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외지의 방문객들이 돈을 들여서 축제를 보기 위해 오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축제 고유의 문화적 체험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체험의 문화’가 기다리고 있는데, 교통이 불편하면 어떻고 편의 시설이 허접하면 어떤가!

어쭙잖은 축제를 개최해 놓고, 혹시나 하며 기대를 안고 찾아온 방문객에게 지갑을 열라는 건 손님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여하간 축제의 문화적 가치는 특별한 것이다. 그럼 이제 이런 사고의 바탕에서 올해 <전주풍남제> 평가를 비판적으로 개괄해보고, 미진한 부분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 보자.

올해 '전주 풍남제'에 대한 평가

▲ 태조로에 들어선 '전주풍남제'.
ⓒ 권오성
올해로 마흔 여덟 번째를 맞이한 <전주풍남제>의 기획 방향은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전통문화축제’와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민대동축제’로 크게 두 가지였다. 그리고 주최측은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예년과 차별화한 행사 전략으로 ▲경기전과 태조로에 주요 행사 집중 ▲축제협의체 운영으로 지역 주민의 직접 참여 확대 ▲찾아가는 풍남제 문화행사 등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전체 행사를 ‘전주의 멋·맛·흥’ 세 가지로 분류하여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것도 다소 달라진 모습이었다.

<전주풍남제>의 정체성이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한 시민 축제’라는 점에서는 기획 방향을 보더라도 큰 무리가 없는 듯하다. 역시 실제 대부분의 체험 행사도 전통 문화에 큰 방점을 찍었고, 다양한 공모 행사가 치러지는 등 기획 상으로는 크게 지적할 만한 대목은 많지 않았다. 여느 축제고 그렇듯이 문제는 역시 기획의 타당성보다 실행 과정의 적절성에 있었다.

축제 진행에서 일단 긍정적인 부분을 짚어 보자. 먼저 경기 전에 전통 체험 행사를 집중 배치하여 학생과 시민들이 쉽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 점은 좋았다. 다만 보다 활발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충분한 공간 활용과 짜임새 있는 동선의 확보는 향후 반드시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

▲ 전통 문화 체험에 참가하는 시민들.
ⓒ 권오성

▲ 한편 또다른 체험 행사는 소극적인 동선 확보 탓에 한산할 때가 많았다.
ⓒ 권오성
다음으로 ‘대한민국 비빔밥 큰잔치’와 ‘찾아가는 풍남제’도 축제를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의지로 읽혀져 보는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그리고 ‘아시아 명장 명인 공방’은 축제를 통한 아시아적 연대를 꿈꿀 수 있는 맹아적이지만 소중한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 2006인분의 대한민국 비빔밥 큰잔치.
ⓒ 권오성

▲ 아시아 명장 명인 공방. 이들은 문화부가 지원하는 '아시아문화 동반자' 사업으로 현재 전주에 체류하고 있다.
ⓒ 권오성
이에 반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도 눈에 띄었다. 우선 야시장과 특산물 전시 부스가 그렇게 많아야 했는지 의문스러웠다. ‘전주를 사라’는 글귀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지만, 태조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양쪽을 가득 메운 천막이 내뿜는 상업성에 숨이 턱하고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태조로 중간쯤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호객을 하는 ‘엿장수’ 극단과 임시적인 천막 식당을 보고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요 프로그램에 속하는 ‘장승 체험’과 ‘민속 장터’의 공간이 목 좋은 곳을 내어주고 초라하게 기생하는 것 같아 영 씁쓸했다.

▲ 협소한 태조로 거리는 온갖 천막들로 방문객의 통행에 오히려 방해가 됐다.
ⓒ 권오성

▲ 공예 체험 거리.
ⓒ 권오성
또한 경기전 앞 특설무대는 어떤가!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축제 공간에서 오로지 방송을 위해서만 꾸며놓은 듯한 무대 설치는, 과연 주최 측이 전통 문화 축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많은 무대 공연을 통해 시민들의 대동 한마당이 어떻게 가능할지 보다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조명과 장비들을 최소화하더라도 비빔밥 큰잔치가 열렸던 경기전 안에 열린 원형 무대를 만드는 게 더 나을 듯싶었다.

▲ 올해 풍남제의 특설무대.
ⓒ 권오성
쟁점과 대안

<전주풍남제>를 둘러싼 쟁점은 해묵은 것인 만큼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이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언급하고, 결론을 대신하여 이와 관련한 대안을 간략하게나마 모색해 보겠다.

‘과연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축제를 보는 내내 이런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겉으로는 풍남동 주민을 위시한 전주 시민 모두의 축제라고 하지만, 실제는 장사치에 땅을 임대한 땅주인이나 인근 상인만을 위한 축제라는 의구심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 태조로 한 복판에서 '엿장수 극단'이 방문객의 주의를 끌고 있다.
ⓒ 권오성
그렇다면 굳이 축제 장소로 태조로까지 택할 까닭이 없다. 아예 전통문화 체험 행사를 경기전 안에 국한하고, 시민 공모 프로그램 및 무대 행사는 보다 협조적이고 넓은 공간에서 진행할 수도 있다. 5억원이 넘는 축제 예산이라면, 덕진 공원이나 동물원 일대는 물론 더 나은 최적의 장소를 충분히 물색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축제 명칭의 변경은 불가피하다.

그래도 전통 한옥 마을의 상징성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장소를 고집한다면, 축제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공공 기금으로 흡수해야 옳다. 적립한 수익금은 공정한 논의를 거쳐 적절하게 쓰일 수 있게 한다. 이는 각종 민원이나 주민의 비협조를 줄일 수 있는 방책이기도 하다.

‘<전주풍남제>의 고유성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축제를 당장 연상시키는 행사가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건 문제이다. 아울러 전주 시민이 대동한마당을 펼칠 수 있는 대표 행사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전주만의 지역성을 공간이 아니라 행사 전반에 어떻게 적극 반영할 것인가도 넘어야 할 과제이다. 한옥 마을과 전통문화센터는 물론 전주시 곳곳을 보다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개발도 생각해 봄직하다.

▲ '뻥튀기' 재현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답답한 느낌을 줬다.
ⓒ 권오성
‘다른 축제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앞으로도 다른 세 축제와 함께 ‘전주문화축제’를 고수하려면 그에 걸맞은 위상과 이미지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외지 방문객의 유인 효과가 큰 <전주국제영화제>와 반드시 함께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주풍남제> 체험을 하면 영화제 예매권을 부여할 수 있다.

이밖에 전반적으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축제 기간 동안 전주시의 관공서와 학교는 오전 근무가 바람직하다. 여유롭고 편하게 먹을 시간이 없는데 진수성찬만 차려 놓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무쪼록 해마다 발전하는 <전주풍남제>로 거듭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월간 문화예술전문지인 <문화저널> 6월에도 실렸습니다. 다만 기사 분량을 줄이고 새롭게 축제 사진을 모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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