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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시작
뜨거운 커피를 빨대로 즐기는 공주.
전동 휠체어로 살사와 왈츠를 춤추는 공주.
식사는 아름다운 유리그릇으로 즐기는 호사(?)스러운 공주.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일곱 난장이를 거느리고 우아한 삶을 사는 그녀는 공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인 작가 정윤수. 공주의 해 맑은 몸짓으로 풀어낸 이야기 <꽃보다 활짝 피어라>를 만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엔 '장애란 무엇인가?', '장애의 벽은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끝없이 맴돌았다.

공주 정윤수씨는 장애로 불편하지만 고단한 삶을 온전히 껴안은 채 오감을 활짝 열고,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직시하는 할 수 있는 용기, 그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성찰해 가는 사람.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솔직하고 따끔한 비판과 웃음이 흐르는 위트에 담긴 아릿한 통증, 하지만 끝까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아름답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소곤소곤 속삭이듯 풀어낸 가슴속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롯하게 채워진 작가의 진솔한 삶이 주는 감동 속엔, 그러나 우리 모두의 편견과 부당한 시선을 향한 그녀의 항변이 있다.

"We see, We hear, We talk and laugh. We sing, We dance, We jump, too!"

세상이 바라보는 그녀

▲ <꽃보다 활짝 피어라> 본문에 들어 있는 홍기영 작가가 찍은 정윤수씨 사진.
ⓒ naver blog ppoppo71 제공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절망 속에서 세상과 단절을 한다. 첫 글 '얼음 자갈밭'은 장애로 인해 출생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아픔이 담겨있다. 그리고 유년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조롱 속에서 자신의 장애를 직시하며 인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 다만 불편함으로 이해하고, 극복할 희망을 찾아 나설 뿐이다.

1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보이듯 그녀도 장애로 인해 상처 입고, 절망하며, 수용해 간다. 그 고통은 다른 장애인들과 같다. 단, 그녀에게는 포기와 굴종이 없다는 것이 '다름'이다.

그런 그녀의 '다름'의 가장 큰 본질은 '장애와의 아름다운 화해와 사랑'이었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비롯해 상처를 주었던 대상들과 화해. 그 과정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자신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장애'를 극복해 내는 에너지로 변화시킨다. 바로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사랑으로 돌려주는 그녀.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길임을 말한다.

2부 '공주와 완두콩'에서는 자신의 '현실' 속에서 장애를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일과 반복되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글에는 비통함이나 절규가 아닌, 따뜻함 속에 절절하지만 아릿하게 아픔을 주는 그녀만의 아름다운 몸짓과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가 장애인이라는 안타까움을 넘어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성찰의 용기와 그녀만의 사랑법 때문이리라.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과연 누가 자신의 한계와 내면을 이토록 진솔하게 응시할 수 있을까. 나는 부끄러웠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눈앞에 불이 확 일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

분명 그녀는 중증장애자다. 그러나 자신의 표현대로 비록 '불판의 오징어'처럼 오그라든 몸이지만, 누구보다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우아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당찬 한 여성이다. 그리고 장애에 대한 무의식과 몰이해에 대해 분노하고 투쟁하는 투사다.

무엇보다 자신의 장애를 통해 자기실현을 향한 강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을 쉼 없이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런 의지의 본질은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의 실체는 장애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이별이 약속된다. 그리고 이별은 종류를 떠나 아픔이 남는다. 부모와의 지워지질 수 없는 깊은 흉터의 이별, 살포시 다가선 짝사랑과의 '시간의 약'이 필요한 이별. 그리고 세상 속에 유일한 혈육의 끈이었던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외로움과 서러움의 이별.

짧은 글 하나마다 그녀가 온 몸으로 쓴 사랑과 이별이 담겨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씩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읽게 만들고, '사랑'에 대해 깊숙이 침잠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을 하고 이별을 치유를 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 대해 당당한 선언을 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이제는 깨지고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또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 장애인이라는 생각이다. 비장애인이 서너 번 사랑에 실패를 겪고 한 번 성공한다면, 우리 장애인들은 열 배 스무 배는 더 많은 기회를 가져야 한 번 성공시킬 수 있게 사랑 아닐까. 그리하여 결국 자기 분신을 찾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직도 꿈을 꾼다."

그렇게 그녀의 사랑은 자신과 장애인에 대한 사랑을 넘어 '불편한 사회'를 향한 행동으로 실천한다.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몰이해와 부족한 배려를 꼬집으며, 비장애인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그녀만의 몸짓과 해맑은 웃음이 가득한 위트로 끊임없는 교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삶의 장애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 예로 자신의 집인 '해피 하우스'에서 조차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배려'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단지 "사회 곳곳에 있는 사람들의 선입견만 사라지면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장애와 장애인들에 대한 부당한 현실, 부조리한 문제를 꼬집고 풀어간다. 그래서 신체의 장애보다 더 큰 '정신적 장애'를 가진 우리 모두를 부끄럽고 송구하게 만든다.

작가 정윤수. 그녀는 비장애인의 눈으로 자신의 장애를 내려다보며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의 아픔을 그렇게 객관화시킨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현실의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어떻게 그토록 따뜻한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지….

책을 읽는 동안 쉼 없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답은 바로 그녀의 용감함과 당당함이었다. 그런 그녀가 본질과 근원조차 불분명한 불안과 갈망 속에서 끊임없는 '결핍'에 시달리며, 이기심과 편협함의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히려 토닥토닥 따스한 손길로 위로를 전한다.

"내가 바로 내 삶의 연출가이고, 또 그러면서 주인공인 삶을 산다는 것을요!. 저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할머니와 같이 살 때만은 못하지만요, 그래도 세상은 좋은 쪽으로도 많이 변했어요."

마지막 책장을 덮자 온 몸이 불에 덴 듯이 후끈거렸다.

덧붙이는 글 | 공주인 그녀가 드디어 왕비가 된단다. 그녀의 100년 동안의 잠을 깨워 준 왕자가 나타났고, 왕자의 달콤한 입맞춤으로 마법에서 풀려나 행복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일곱난장이들이 전해 주었다. 그녀에게 축하의 마음을 보내며, 앞으로도 사랑의 갈증을 앓는 모든이들을 적셔 줄 오아시스 같은 해 맑고 환한 웃음이 영원히 솟아나기를 기도한다.


꽃보다 활짝 피어라

정윤수 지음, 김명이 엮음, 천년의시작(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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