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찰리박.
찰리박. ⓒ 김재경
녹음방초(綠陰芳草) 무성한 안양시 비산3동 산자락 아래, '카사노바 사랑'으로 늦깎이 신인가수가 된 찰리박(본명 박영철·52)의 연습실을 지난달 말 찾아갔다. 온갖 음향 기기가 설치된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찰리박의 신들린 듯한 통기타 연주는 한낮의 나른함을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연습실 벽면에는 찰리박 자신과 인기그룹 신화의 멤버이자 아들인 전진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 옆 문설주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무대의상이 걸려 있었다.

찰리박을 찾아간 이유는 인기그룹 신화의 전진 아버지인 그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 궁금하기도 했고, 나의 딸이 다녔던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찰리박을 만나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해 들어봤다.

완고한 아버지와 넘치는 끼를 지닌 찰리박

찰리박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했다. 찰리박의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봉건적인 이북 출신으로 아들 찰리박의 넘치는 끼를 발산하는데 한치 양보나 협상조차 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는 단호했다.

"딴따라! 뭐 어드레. 내가 보기엔 네 성격 같아선 군바리가 제격이지. 넌 육군사관학교 가서 오로지 말뚝 박으라우."

고등학교 시절, 찰리박은 배한성씨처럼 CF방송 성우로 활동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막혔다. 또한 음악에 대한 부친의 반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찰리박은 불타는 열정으로 고3 때까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악기를 다루었지만, 그렇게 갈망하던 음대진학의 꿈도 아버지 때문에 접어야만 했다.

찰리박은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를 무릎 쓰고 어렵게 무협스타로 뽑히는데 성공했지만, 억누르면 누를수록 가슴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19살의 찰리박은 무작정 집에서 나왔다.

집에서 나온 찰리박은 통기타를 치며 종로와 을지로의 음악다방 DJ로서 젊음을 불태웠다. 그는 노래를 비롯해 섹소폰과 드럼을 연주했고, 탭댄스와 브레이크댄스까지 소화할 정도로 춤 실력을 소유하는 만능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 가. 완고하고 강직한 아버지는 아들의 넘치는 끼를 끝내 꺽지 못했다. 아버지는 임종 전날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찰리박의 모든 걸 인정했다.

넘치는 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 전진

ⓒ 김재경
찰리박의 아들 전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음악성을 보였다. 6학년이 되자 동요보다는 스윙을 더 좋아했다. 때문에 "왜 공부할 시기에 이렇게 하느냐"며 가족간에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찰리박은 공부보다 춤이 먼저였던 아들에게 "갈 길은 다 있다"며 아낌없이 격려했다. 오로지 아들의 소질대로 춤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아비의 심정이었다.

찰리박은 "자∼ 이제부터 아버지가 노는 것 좀 봐라"라면서 아들에게 그 동안 단련된 댄스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님 아직도 팔팔 하시네"라며 환호했다고 한다. 찰리박은 춤에 몰두하는 아들을 위해 새벽에 라면을 끓여 오토바이에 싣고 가서 먹일 정도였다. 완고했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의 끼를 적극 밀어 주고 싶었다.

그런 아들이 이제는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됐다. 주변에서는 "아버지가 그러니까 전진이 그렇지"라며 진이 아버지의 넘치는 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찰리박은 "아들 때문에 덕본다"는 소리가 싫어서 부자가 함께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방송국의 요청을 은근히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찰리박의 생활 방식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술을 마시면서 눈을 맞추는 게 풍류를 즐기던 우리네 문화야. 일부러 고개를 돌려 마시는 것은 '고자이마쓰'식의 일본문화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찰리박은 아들과 같이 술잔을 나누며 주량까지 저울질해 준다고 한다. 급속도로 변화되는 세상만큼이나 찰리박은 개방적이었다.

"훈계 보단 실수가 약이다"

찰리박의 생활 신조 또한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그는 돈도 직접 써봐야 알기에 자녀에게 용돈을 언제나 타당성 있게 준다.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쓸지언정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게 그의 생활 신조다. 일상적 실수도 그대로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찰리박의 철칙이다.

얼마 전 아들 전진이 음주운전에 걸렸을 때도 찰리박은 경찰서를 방문해 "어, 한 건했네"라며 꾸지람이나 훈계가 아닌 '화이팅(?)'을 외쳐주면서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겼다. 그러자 진은 "지금 반성 중"이란 간단한 문자 메시지를 아버지에게 보내고, 이미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고 한다.

"자유롭고 편한 가정은 쉼터"

찰리박은 자녀들과 언제나 친구같이 편하게 살기에 형식적인 전화나 인사치레는 질색이라고 강조한다. 또 찰리박의 가정 생활은 가족들이 철저한 개인 플레이를 하더라도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 자녀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지하 연습실에서 노래도 하고 녹음도 한다. 노래를 연습할 때 느낌이 와서 맥이 끊어지면 안되니까, 식사 때가 돼서 배가 고프더라도 알아서 적당히 배달시켜 먹는다고 한다.

"이 나이에 컴퓨터 미디어 음악을 하는 게 쉽진 않아요. 사전을 꺼내 놓고 새벽3시∼4시까지 공부해 가며 연습해요. '아 힘들어!' 하기 일쑤죠"라고 말하는 그에게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때로는 영화를 좋아하니까 DVD보다가 가족에게 '나 먼저 잘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연습실에서 자유롭게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고. 이런 생활 습성은 밤낮이 뒤바뀐 밤업소 프로덕션에서 댄스 생활 10년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굳어진 것 같다.

이런 생활 속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찰리박은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과 함께 지금의 피아노학원을 시작하게 됐다. 벌써 15년 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안양까지 서울에서 출퇴근한 찰리박은 가르치던 아이들과 정이 들면서 아예 이사를 오게 됐다. 안양에서 생활한지 10년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맑은 하늘과 밝은 태양을 보며 사는 삶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만큼이나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찰리박은 맥가이버!

"'이게 컴퓨터 음악이다'라고 하면 애들이 전부 놀래요. 그리고 난타 음악을 들려주면 신나거든요.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 드럼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판때기 두드리는 것부터 가르치면 저절로 신이 올라요."

찰리박은 학원생들에게 클라리넷과 플롯도 무료로 지도한다. 그리고 요즘은 10월에 있을 공연을 앞두고 난타 연습이 한창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의 신조는 '억지로 하지 말라'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혹사이기 때문이다.

찰리박은 학원을 시작한 초창기에 학원차를 운전하면서 때로는 플롯을 불고, 맹구 흉내 내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에 아이들은 찰리박이 뭐든지 잘해서 '맥가이버'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가수로 세간에 알려지면서 아이들은 "찰리박! 찰리박!"을 먼저 외친다.

그는 음악적 소질 외에도 자동차 수리며, 고장난 냉장고까지 척척 고쳐내는 만능이다.

"연기 속 배역으로 살고 싶다"

ⓒ 김재경
'카사노바 사랑'으로 시작된 늦깎이 신인가수 1년은 눈코 들새 없이 바빴다. 지방에 내려가고, 방송 출연 제의도 들어오고, 모 커피회사를 비롯해 CF도 대여섯 개나 찍었다.

자유롭게 사는 찰리박을 부인은 '광대'라고 부른다. 평균 수면시간이 5시간인 그는 빈틈없는 일정 속에서도 연극과 노래를 하며, 아이들과 잘 논다. 주변에서 찰리박에게 "그 정도 나이면 은퇴해야지"라고 이야길 꺼낼라치면, "에이, 송대관이 몇 살인데?"라며 맞받아 친다.

밤무대의 솔로 댄싱 가수였던 그는 이미 연예계에서 자리매김한 아들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연기자가 되고 싶은 게 소망이다. 비록 배고플지언정 드라마 속 배역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한편, 찰리박의 연습실에 있는 이젤에는 부인이 그리다만 초상화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샌드백이 매달려 있다. 그 샌드백은 찰리박에게 순발력을 키워주는 도구이다. 또 벽에는 전면 거울이 있다. 말이 연습실이지 이 공간은 만능 작업실이다.

내가 연습실을 나서기 전 찰리박은 "안양에서 보란 듯이 창작 뮤지컬을 만들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후속곡 '별'을 준비하고 있는 찰리박은 별처럼 빛나고 싶은 영원한 청년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안양'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