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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읍에서 먹은 5000원짜리 백반.
해남읍에서 먹은 5000원짜리 백반. ⓒ 문일식
정말로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에서 해남까지 400km가 넘는 길을 숨 가쁘게 달려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약 5시간 걸렸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허기진 배부터 채웠습니다. 남도에서의 식사는 반찬 가짓수만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5000원짜리 백반 하나에도 반찬 종류가 기본적으로 10가지가 넘습니다. 남도의 넉넉한 마음이 전해져옵니다.

해남읍에서 녹우당까지는 10분도 채 안 걸립니다. 대둔사 가는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고산 윤선도 유적지' 표지판이 나옵니다. 자칫 헷갈리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녹우당 가는 길 옆 논에 펼쳐진 자운영 군락.
녹우당 가는 길 옆 논에 펼쳐진 자운영 군락. ⓒ 문일식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덕음산 자락에 위치한 연동마을에 있습니다. 덕음산을 향해 연동마을로 들어가는 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보랏빛 자운영의 은은함이 느껴지는 논은 올 한해 풍년을 기대하는 몸짓으로 곧 분주해질 듯합니다. 녹우당에 가까워질수록 덕음산 자락의 녹음이 짙게 느껴지고 비자나무숲에서 일렁이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녹우당은 1660년에 지어졌습니다. 고산 윤선도는 인조의 아들이자 후에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스승입니다. 훗날 즉위한 효종은 스승인 윤선도에게 수원에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1660년 효종이 승하하자 윤선도는 해남 연동으로 내려오면서 수원집의 일부를 뜯어 내려갑니다. 이를 토대로 지은 집이 바로 녹우당입니다.

녹우당을 지키는 수백년된 은행나무.
녹우당을 지키는 수백년된 은행나무. ⓒ 문일식
녹우당 주차장을 찾았습니다. 매표소가 있는데도 매표를 담당하는 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뛰어오는 사람이 없어 무임승차하는 사람마냥 얼쯤하게 녹우당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구멍가게를 지나면 널찍한 공간이 나오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녹색빛 가득 머금은 은행나무였습니다. 녹우당은 은행나무 뒷편에 있습니다.

녹우당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임시 휴관이라고는 하지만...
녹우당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임시 휴관이라고는 하지만... ⓒ 문일식
녹우당을 둘러보기 위해 문 앞에 섰는데,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A4용지 한 장에 원성과 분노를 담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보수공사 지연, 당국의 무례하고 통념에 어긋난 운영 등으로 임시 휴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유적 복원사업 과정에서 해남 윤씨 종중과 해남군 사이에 마찰이 생긴 것입니다. 지난 4월 30일 답사차 이곳을 찾았을 때 '휴관'이라고 붙어 있던 그 종이는, 다시 방문했던 5월 20일에도 변함없이 붙어 있었습니다.

녹우당을 보기 위해 머나먼 서울에서 내려간 걸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처사입니다. 해남군청 문화관광 부문 홈페이지에도 녹우당 및 전시관 휴관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녹우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종이만 한 장 붙은 채 빗장이 걸려있습니다. 매표소 쪽엔 휴관 사유가 적힌 게시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런 상황은 31일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만 공허하게 한 것입니다. 말은 휴관이지만, 근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열지 못하는 것을 보니 임시 휴관이 아닌 일방적인 폐쇄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산사당과 어초은 사당 가는 길에 길게 늘어선 담장.
고산사당과 어초은 사당 가는 길에 길게 늘어선 담장. ⓒ 문일식
하지만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돌아간다면 코앞에 놓인 진주를 캐지 못 하는 격입니다. 녹우당 주변에는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이 아니더라도 눈에 담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물전시관과 녹우당을 끼고 들어가면 고즈넉한 긴 담장 사이로 길이 나 있습니다.

고산사당 옆에 늠름하게 서 있는 해송. 고산사당을 보호하고 있는 듯합니다.
고산사당 옆에 늠름하게 서 있는 해송. 고산사당을 보호하고 있는 듯합니다. ⓒ 문일식
제법 운치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람한 해송이 한 그루 나타납니다. 해송의 분위기에 압도되면서 급기야 탄성을 지르고 맙니다. 담장을 지나 널찍한 공간에 서면 커다란 해송 한 그루가 시야에 가득 들어옵니다. 해송은 고산사당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하듯 굽어 있습니다. 수령이 500년이나 되었다는 해송은 녹우당 최고의 볼거리가 아닐까 합니다.

고산사당과 함께 어초은 윤효정 사당이 대각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어초은 사당을 지나면 덕음산 방향으로 아담한 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녹우당이란 이름을 짓게 한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숲으로 가는 길입니다. 녹우당은 비자나무숲에서 일렁이는 바람소리가 비 내리는 소리와 흡사하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천연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 표지석.
천연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 표지석. ⓒ 문일식
'과연 빗소리 들리듯 할까? 어떤 느낌일까? 비자나무숲의 청아한 소리가 가슴을 적셔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올라갔지만 숲속은 고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저 여행객들이 산길을 밟으며 지나는 소리, 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 숲의 적막을 깨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비자나무숲의 일렁이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시원한 숲길을 따라가며 담소를 나누거나 조용히 생각에 잠겨 산책을 즐기기엔 그만한 곳이 없을 듯합니다.

녹우당으로 바로 내려오지 않고 댓잎들이 소곤거리는 담장을 따라 가면 추원당이 나옵니다. 추원당은 어초은 사당의 별채 격으로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추원당은 길게 잘라 만든 석재를 이용해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진 석축 위에 다부지게 앉아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추원당의 지붕에 덧대어, 덧지붕을 씌어 놓았습니다.

한자까지 곁들여놓은 경고 문구.
한자까지 곁들여놓은 경고 문구. ⓒ 문일식

경고 문구의 대상. 듬직하니 잘 생긴 녀석이다.
경고 문구의 대상. 듬직하니 잘 생긴 녀석이다. ⓒ 문일식
이곳에는 추원당을 관리하는 분만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분이 거처하는 행랑채 벽에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개를 만지지 마셔요"라는 한글과 함께 "黃狗 接觸 嚴禁(황구 접촉 엄금)"이라는 한자를 함께 적어놓았습니다. 한자까지 곁들여서 써놓은걸 보니 역시 사대부 명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경고의 대상'인 황구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늠름했습니다.

추원당 대문에 만들어진 빗장둔테.
추원당 대문에 만들어진 빗장둔테. ⓒ 문일식
추원당을 나서다 보면 삼문에 거북모양의 빗장둔테가 있습니다. 보통 잠금장치는 빗장을 이용합니다. 양쪽 문짝에 빗장을 걸 수 있도록 짧은 나무토막을 붙이고 가운데를 뚫어, 빗장을 건너질러 잠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짧은 나무토막을 바로 빗장둔테라고 하는데 이곳에 거북 모양의 빗장둔테가 있어서 요모조모 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추원당을 나서서 아담한 차밭을 지나 녹우당 담장을 끼고 나오면 맨 처음 대면했던 은행나무 앞에 도착합니다. 녹우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셈입니다.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을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여전히 푸르기만 한 거대한 해송, 비자나무 숲길까지 둘러보면 녹우당 등을 못 본 것을 위로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간에 해남 윤씨 종중과 군의 마찰이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되어, 고산 윤선도를 위시한 해남 윤씨의 당당한 가풍을 느끼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녹우당을 나서는 길에 여전히 젊음이 느껴지는 우람한 은행나무를 보며 이번 가을 즈음 다시 한 번 오겠다는 짧은 다짐을 해봤습니다. 그 때는 비자나무숲에서 일렁이는 바람 소리를 꼭 들어보겠노라는 다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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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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