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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망가고 싶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모니터 앞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약기운 탓인 것도 같다. 시간은 무서울 정도로 빨리 흐르고 있는데 여전히 제자리다. 발밑이 보이지 않는다. 난 대체 어디 서 있는 걸까.

"우리의 길이 확실치 않음이 일생 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지 생각해보면 무서운 것이다. 의무가 길을 인도하여 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

오래전에 사고 덮어두었던 책을 읽었다. 흔들린 건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가슴으로 쏴아 하고 들어오는 것만 같다. 출판사는 '도망과 해방의 안내서'라며 '젊은이에게 권하는 복음서와 같은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내 책을 던져 버려라, 그것은 인생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수천의 태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남이라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잘할 수 있을 일이라면, 하지 마라. 그대 자신 속에서가 아니고는 아무 데도 없다고 느껴지는 것 이외에는 집착하지 마라."(같은 책)

생각해보면, 이런 미래를 꿈꿨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무 살엔 사랑을 하고 스물셋 쯤엔 원하는 것을 뚜렷하게 말할 수 있고, 스물여덟엔, 적어도, 자신이 꿈꾸던 일과 관계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미래를 향해 힘차게 걸어가고 있을 줄 알았다.

내 모습을 바라본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걷고는 있지만, 아직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터벅터벅 어딘지도 모를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백수 시절, 캥거루족이란 말을 들으며 발끈했지만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회사를 다닐 땐 학교 선배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가 타박을 당했지만, 뭐라고 대꾸를 하지 못했다. 뭔가 내가 이상한 것 같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장 내일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 없는 팔자 좋은 인간의 배부른 고민인 걸까? 일하기 싫어서 핑계를 자꾸 만들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바쁘지 않아서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이나 걱정만 늘어놓는 한심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난 대체,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갈까? 내일의 날씨? 주말 여행? 어디 영어학원을 다닐지? 내일은 무슨 옷을 입을지? 스물여덟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같은 질문만 하고 있는 건 내가 이상한 걸까? 하지만 자꾸 생각난다.

이런 생각은 시간이 남기 때문에 하게 되는 걸까? 일단은 뭘 하든 무조건 몰두해보는 게 중요한 걸까? 그런데 몰두할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래도 억지로 해야 할까? 모두 꿈꾸던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면 꿈을 이루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포기하며 사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원래 일과 꿈은 따로따로인 게, 두 인생은 분리되는 게 평범한 삶인 걸까? 이 세상에 몇 명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것과 어느 쪽이 더 괴로운 걸까? 죽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될까? 목숨을 걸고 싶을 정도의 꿈은 어느 날 찾아오는 걸까, 아니면 우연히 찾아내는 걸까?

그런데 꿈이란 게 대체 뭘까?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대체, 몇 살이 되면 멈추는 걸까?

"수심(愁心)이란 식어버린 열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같은 책)

내 나이 스물여덟, 변변한 경력도 없고 뛰어난 능력도, 불타는 열정도 없다. 남아 있는 건 혼란과 불안 뿐. 그리고 아주 희미한, 어떤 것들에 대한 관심(그나마 그것도 게으름에 묻혀버리기 십상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분명히 하고 있다.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다. 경력이 화려한 것도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것도 아니다. 힘들어도 즐거워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서른을 맞고 싶지는 않다고 매일 밤 잠들기 전 생각한다. 달라질 수 있을까? 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만 하는 사이 또 하루가 간다. 아아, 새로운 삶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시작이다. 그래, 원하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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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보잘 것 없는 목소리도 계속 내다 보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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