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중학교의 수업광경(자료사진.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한 중학교의 수업광경(자료사진.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 오마이뉴스 남소연
며칠 전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오하이오주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담당하신 한 여자 선생님께서 갑작스럽게 많이 아프시다는 내용의 전단을 보내왔다.

병명은 급성 뇌수막염인데, 심각한 상태여서 이후 상황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 그 분 가족들이 학교 측에 치유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전염성은 없으므로 기본 예방 접종을 마친 학생이라면 따로 예방 접종을 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학교, 한 교사의 죽음을 준비하는 전단지를 보내오다

그 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학생들의 정서적 충격을 고려한 상담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즉, 이 선생님께서 오랜 동안 학교에 재직하면서 많은 학생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쳐 왔기 때문에 이후 벌어지는 사태와 관련, 일부 학생들은 별도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또 학생들이 원하면 자원하는 다른 학교의 상담 선생님들까지 동원해 학생들을 위한 상담에 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런데 1학년인 우리 큰 아이의 경우는 '킨더가든'(우리 나라의 유치원에 해당하나 정식 학제에 포함됨)에 다니는 둘째 아이와는 다르게 때때로 그 선생님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마도 자기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그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던 그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 입원하신 지 단 닷새 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생면부지인 나에게조차 충격이었다. 나이가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분이셨는데, 나이가 연로하지 않으신 분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충격일 것이다.

그 날 학교로부터 전교생의 학부모들에게 또 다른 한 장의 전단이 전해진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선생님의 죽음을 공지하는 것과 아울러 학생들이 받을 정서적 충격에 대비한 여러 가지 대응책들이었다.

먼저 학교 측에서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상담을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여러 선생님들과 상담자들이 개인적으로나 그룹 별로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동안은 언제까지든지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학생들 충격 줄이려 '위기관리팀'까지 구성

다음으로, 학부모들이 선생님의 죽음을 경험한 자녀들의 충격을 완화활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제시되었다. 어린이들이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화를 내는 등 죽음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자녀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그들이 죽음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은 정상적이라는 점을 확신시켜 주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강조하면서 죽음의 상실과 관련된 책을 자녀들과 함께 읽어보라는 권유와 함께 관련 도서 목록도 첨부됐다.

이것을 통해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바로 학교 측은 이미 '위기관리팀'을 구성해 대비책을 수립해 왔었다는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이 갑작스런 선생님의 죽음에 큰 정서적 충격을 받을 것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각 반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그 분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주도록 했다. 그런 뒤 그 분의 죽음이 전해진 당일 오후 대비책들을 설명한 안내 전단을 부모들에게 신속하게 보내왔던 것이다.

한국 학교에서 수년간 교직에 있었던 나로서는 이와 같은 학교의 대응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교사의 결원으로 생기는 교사 충원에 대한 문제를 우선시하지 않고, 학생들이 받을 심리적 상처와 충격을 최우선의 문제로 여겼다.

내가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이와 비슷한 죽음을 당하셨던 선생님들의 사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수업 결손에 관한 대비책만 있었을 뿐이지, 한 번도 학생들이 받을 정서적 충격을 대비해 학교 측에서 대안을 논의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상담 교육에 임하는 관점도 판이하게 달랐다. 한국에서 상담실은 소위 '문제아'들이 상담을 받는 곳이다. 그것도 문제가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나서야 '사후 약방문'식으로 상담 교육 프로그램이 개입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심리적 갈등 상황에서 학생들이 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한 취지에서 상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학생 개개인에 대한 돌봄과 배려로 교육이 진행된다면, 학생들이 큰 사고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런 차이는 두 나라 학교 교육의 근본 목적이나 교육 철학에서 오는 것이다. 또 사소한 것이 아닌 중대한 차이이다.

이는 학교가 행정상의 문제와 학생들의 정서적 측면 중 어느 것을 먼저 고려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생들을 집단의 일원으로서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할 것이냐, 소중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할 것이냐와 관련된 교육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강희정 기자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제도나 문화를 '선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을 지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행정편의주의와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우리의 교육 풍토를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