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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사의 부도밭
대둔사의 부도밭 ⓒ 문일식
미황사의 부도밭
미황사의 부도밭 ⓒ 문일식
전남 해남을 대표하는 사찰은 두륜산 대둔사와 달마산 미황사가 아닌가 합니다.

이 두 사찰에는 규모가 큰 부도밭이 있습니다. 부도란 쉽게 말하면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일종의 스님들의 무덤입니다. 사실 무덤이라고 생각하면 꺼려지는 게 맞는 이야기지만, 이 두곳을 찾아가면 특별한 재미가 있습니다. 바로 '숨은 그림찾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도의 기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말 선종사상의 유입으로까지 갑니다. 선종은 도의와 신행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불교사상인데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누구라도 수행을 함으로써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교리는 금세 널리 퍼지게 되고 흔히 구산선문이라 불리는 9개의 종파가 수립됩니다. 이렇게 종파가 성립됨으로써 각 산문을 열게된 개산조로부터 제자가 양성되고, 각 산문의 법맥과 스승들의 공적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보존하고자 스님이 입적한 후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부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질좋은 화강암이 지천에 널려 있기 때문에 석조부도가 발달할 수 있었던 좋은 환경이었고 탑과 아울러 부도가 아직까지 현존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석조부도가 탄생된 초기에는 근엄하고 당당하며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를 건너뛰면서 평범하고 단순화되고 해학적으로도 만들어집니다.

대둔사와 미황사의 부도밭을 차지하고 있는 부도들은 시대도 훨씬 후대의 것들이기도 하지만, 부도의 몸에 새겨진 많은 문양들 하나하나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고승들의 업적이나 풍미했던 법맥, 그리고 부도의 형식을 논하는 것이 아닌 그저 동물원 구경가듯 편안하게 들러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한다면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딱히 어떤 모양을 새긴 것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호랑이가 될 수도 있고,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개방적인 미황사, 담장에 둘러싸인 대둔사... 두 사찰의 부도밭

대둔사 부도밭 가운데 있는 서산대사 부도에 새겨진 동물상들
대둔사 부도밭 가운데 있는 서산대사 부도에 새겨진 동물상들 ⓒ 문일식
대둔사와 미황사의 부도밭에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위치적으로 대둔사는 일주문을 조금 지난 위치에 사람들의 왕래가 당연히 거쳐가는 곳에 있는 반면 미황사는 찾아가지 않으면 가볼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대둔사 부도밭은 부도를 감싸안은 긴 담장을 두르고 문을 낸 뒤 출입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문을 잠궜습니다. 질서정연한 모습도 있지만, 미황사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당장 화가 치밀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둔사의 부도밭은 어느 정도 위엄과 권위가 어느 정도 느껴진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미황사의 부도밭은 멀찌기 떨어져서 보는 전시물이 아닌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느낄 수 있도록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훼손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석공들의 솜씨를 느껴볼 수 있고,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미황사의 부도밭은 개방적이고, 자유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하겠습니다.

대둔사 부도에 새겨진 여러 문양들. 원숭이와 꽃도 보이고, 히죽히죽 웃는 용의 모습도 보인다.
대둔사 부도에 새겨진 여러 문양들. 원숭이와 꽃도 보이고, 히죽히죽 웃는 용의 모습도 보인다. ⓒ 문일식
대둔사의 부도밭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한 고승의 부도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대둔사를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으며 종통이 돌아갈 곳이라 하여 가사와 발우를 전했던 그 유명한 서산대사의 부도입니다. 서산대사의 부도 외에 50여기의 부도와 10여기 남짓되는 부도비가 질서 정연하게 서 있습니다.

크기도 가지가지, 종류도 가지가지이고, 하늘로 삐죽 솟은 부도비도 여럿 보입니다. 대둔사 부도밭은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앞뒷편에서 담장을 따라가며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이긴 합니다만.

서산대사의 부도에는 여러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치 부도를 든든히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부도의 몸돌을 부여잡은 채 고개는 바깥을 향하고 있습니다. 한마리는 곰처럼 보이고, 한마리는 입이 삐죽 튀어나온 게 영락없는 멧돼지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한참 유행했던 '테크노 춤', 마치 이 동물들이 벽을 부여잡고 테크노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안나올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맨 아랫부분과 상륜부를 차지하는 윗부분도 재미있는 문양을 새겼습니다. 아랫부분인 하대석에는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각 면에 하나씩 문양을 동물과 꽃들을 새겼습니다. 무슨 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줄기와 꽃까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엎드려 있는 원숭이의 모습을 한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편 윗부분인 상륜부에는 희화한 용의 얼굴을 새긴 것 같기도 하고, 아래처럼 원숭이의 얼굴을 새긴 것 같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빨을 드러내놓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을 새긴 것입니다. 삐죽 튀어나온 이빨의 모습이 자못 인상적입니다.

대둔사 부도밭에는 스님의 부도와 함께 세운 부도비가 여러 기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수(비석의 꼭대기에 올리는 지붕모양의 돌)에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을 새기거나 전통건축의 지붕모양을 본떠 만드는데 이 부도비의 이수는 각이 선명한 네모 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도의 이수에 새겨진 화분에 담긴 꽃과 귀부가운데 발 부분
부도의 이수에 새겨진 화분에 담긴 꽃과 귀부가운데 발 부분 ⓒ 문일식
네모진 돌의 앞뒷면에는 이쁘장한 화분과 꽃을 새겼습니다. 네모진 면에 가득 그려진 꽃들의 줄기와 꽃이 섬세하고 화사합니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것은 귀부라고 합니다. 주로 거북이나 용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위엄있는 얼굴에 여의주를 다부지게 물고 있는 모습, 딱딱한 등갑 등 기세 등등한 모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발도 예외는 아닌데 한 귀부의 발 모양이 무척 특이합니다. 마치 사람의 발을 닮았습니다. 발가락이 4개인 게 흠이긴 하지만, 여타 부도비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둔사, 테크노춤 추는 멧돼지... 미황사엔 방아찧는 토끼

미황사 부도밭에 있는 방아찧는 토끼와 외발로 서있는 오리
미황사 부도밭에 있는 방아찧는 토끼와 외발로 서있는 오리 ⓒ 문일식
이제 달마산 미황사 부도밭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볼까요? 미황사는 불교의 남방해로를 통한 유입설을 가지고 있는 사찰입니다. 그래서인지 대웅전의 주춧돌과 많은 부도에 게와 물고기 등이 많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장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두 녀석입니다. 하나는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외다리로 서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를 그대로 연상하게 하는데 예전에는 머리에 토끼귀가 있었던 듯 돌조각이 부러져 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새의 모습은 집에서 키우는 가금류 중 닭보다는 오리를 연상케 합니다. 다리를 뒷쪽이 아닌 앞쪽으로 구부린 것도 재밌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사슴과 경복궁 영제교의 서수와 비슷한 문양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사슴과 경복궁 영제교의 서수와 비슷한 문양 ⓒ 문일식
미황사 부도밭은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달마산 아래 기슭에 대부분 모여있지만, 아래쪽에 약 대여섯 기가 있는데 이 곳에 새겨진 녀석들이 진품입니다.

경복궁 영제교에는 벽사능력을 가진 서수가 있습니다. 영제교 아래를 굽어보며 마치 무엇인가를 노려보는 듯한데, 이곳 미황사 부도에 그 모습을 닮은 녀석이 숨어 있습니다. 물론 부도의 몸체이긴 하지만 잔뜩 웅크린 채 무언가 노리는 듯한 모습입니다.

또 한 녀석은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사슴같습니다. 얼굴이나 몸전체적으로도 어린 기운이 느껴지는데 비실비실할 것만 같은 약한 네 다리가 더욱 더 그래 보입니다. 못해도 100년은 족히 넘은 듯한데 아직도 어린 모습 그대로입니다.

귀면으로 여겨지지만 용과 문어의 모습을 닮았다.
귀면으로 여겨지지만 용과 문어의 모습을 닮았다. ⓒ 문일식
귀면의 모습이라 여겨지는데 마치 문어와 용의 느낌이 짙게 풍깁니다. 특히 문어랑 비슷한 녀석은 왕방울 눈에 매부리코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어렸을 적 만화 <파란해골 13호>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용의 모습 또한 희화되어 무서운 인상보다는 삐죽 튀어나온 이빨과 덥수룩하게 나있는 수염 등이 재밌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버거운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
자신에게도 버거운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 ⓒ 문일식
마지막으로 가장 재밌게 본 녀석은 바로 이 녀석입니다. 용들은 주로 여의주를 희롱하거나 물고 있는 모습을 취하는데, 이 녀석은 여의주를 물긴 물었는데 그 크기가 자신에게 무척이나 버거웠던 모양입니다. 입안에 가득 물긴 물었는데 마치 "우욱~"하며 게우는 듯한 표정입니다.

부도밭은 대둔사나 미황사 뿐 아니라 많은 사찰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수가 적은 곳도 있고 이곳처럼 수십기의 부도가 밭을 이뤄 모셔진 곳도 있습니다.

대둔사와 미황사의 부도밭을 둘러본다면 사찰을 찾는 재미는 아마도 두 배는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도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숨은그림 찾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런지요?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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