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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순천만 ⓒ 안준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학여행에 빠진 아이들을 데리고 이틀째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25일)는 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겸하여 야생화 탐방을 했고, 오늘은 순천만을 다녀왔습니다.

짧은 여행 덕에 노란 꽃은 모두 개나리인줄 알았다는 한 아이가 이제는 고들빼기와 씀바귀를 구별하는 놀라운 수준까지 이르렀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꽃도 꽃이지만 아이들 각자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특성들을 스스로 구별하여 가꿀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26일) 스쿨버스 기사님의 배려로 차에 몸을 싣고 순천만으로 가는 길에 저는 가방에서 편지 한 통의 꺼내 읽었습니다. 저와 같이 근무하는 송미숙 선생님이 주신 편지입니다. 사실은 그 편지의 진짜 수신인이 바로 그분입니다. 편지의 발신인은 송 선생님 아들의 담임선생님이시고요. 그런데 왜 그 편지를 복사하여 저에게 주었을까요?

"안 선생님, 우리 다형이 담임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 한 번 읽어보세요.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시험을 보고 통신표를 받았는데 거기에 함께 넣어 보내주신 거예요.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아이들을 배려하는 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거 있죠.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참 자상하신가 봐요. 이런 선생님이 아들 담임이 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사실은 그런 말씀을 제게 해주신 송 선생님이 바로 훌륭한 교사의 표본이지요. 어느 해인가는 남학생 반을 맡으셨는데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속도 많이 상하셨지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힘들다고 마음에서 지우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전매특허가 아이들에게 쪽지를 써서 주머니에 재빨리 넣어주는 것이었지요. 그런 선생님의 끈질긴 사랑에 방황을 끝내고 제 자리로 돌아 온 아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저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시를 쓰게 하신 분도 바로 송 선생님이시지요.

야생화를 찾아서. 오른쪽은 노랑괴불주머니
야생화를 찾아서. 오른쪽은 노랑괴불주머니 ⓒ 안준철
이른 더위라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교무실
책상 위에 수북이 노트를 쌓아놓고
송 선생님 오늘도 노트 검사 하신다.
노트 한 권의 두께가 한 장 한 장
아이들이 가꾸어온 삶의 무게만한 것인지
천금 같은 빈 시간을 종일 눌러 앉아
더디게 더디게 근시안을 가까이 들이대고
함부로 그려놓은 암호 같은 글씨도 넉넉히 풀어내며
아이들 흐트러진 삶도 잡아내며
송 선생님 오늘도 노트검사 하신다.
끝없이 길을 잇는 철도공사 묵묵히 하신다.
맨 말미에는 싸륵싸륵 눈이 쌓이는 소리로
시보다도 더 아름다운 글말을 적어주신다.

-자작시 <송 선생님의 노트 검사>


진실은 진실끼리 통한다는 말이 있지요. 학생들에 대한 그런 자상함을 지니신 분이기에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보내오신 편지에 감동하여 그 넘치는 기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동료교사인 저에게 편지의 복사본을 전해 주셨던 것이지요. 이제 그 아름다운 편지를 소개해야겠네요. 뒤에 이어지는 편지는 송 선생님이 쓰신 답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학교 운동장에 하얀 이팝나무 꽃이 예쁘게 피어있답니다. 아직은 나무가 어려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중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보는 중간고사를 치르며 운동장에 서 있는 이팝나무처럼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안쓰러움과 대신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 대견함을 같이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받아온 점수가 부모님들의 눈높이에 부족할지라도 요게 뭐야, 왜 이 점수밖에 안 돼. 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비교할 기준이 없어서 점수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백점을 맞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현주소는 알아야 할 것 같아 전제석차를 적어 보냅니다. 차후의 공부계획에 참고하시고 또한 아이들이 그린 자신의 점수 그래프를 동봉합니다. 책상 앞에 부착하여 항상 보면서 자신의 결심을 현실화시키는 자료로 사용해 주십시오.

어제는 저희반이 발야구와 축구 예선전이 있었답니다. 평소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반목하고(속으로는 좋으면서) 싫은 척 하더니 응원은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그리고 짝꿍이 골인을 하자 춤을 추며 짝이 넘 대견하다며 온 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은 이런 모습일까 라고 혼자 생각하면서요.

개별 통지문은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내용이 모두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잘 양육하여 저희 반에 보내 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덕분에 제가 행복하답니다. 더욱 열심히 사랑을 먹이며 표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계절이 아름다운 만큼 우리들의 가정이 행복하길 기도하겠습니다.

2006년 5월 OO일 이지연 올림

뱀딸기와 땅비단(개불알풀이라고도 함)
뱀딸기와 땅비단(개불알풀이라고도 함) ⓒ 안준철
이지연 선생님께

성적표와 함께 배달된 쌤의 편지는 부모와 아이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냉수 한잔과도 같았습니다. 잘 받아 봤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이든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등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한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나니까 등수보다는 아이의 얼굴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마음을 만져 주실 줄 아는 선생님 밑에서 자랄 아이를 생각하니 저도 덩달아 행복해진답니다.

바르게 자라 섬기며 사랑하며 살아 갈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저도 생각날 때 마다 1-4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 선생님 함께 하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2006년 5월 OO일
다형이 엄마 송미숙 드림.


저는 두 분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어디선가 지속적으로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면 강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은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작은 구멍에서 펑펑 쏟아지는 맑은 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너진 성터를 손수 쌓고 계시는 아름다우신 두 분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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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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