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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 박주현
"한국은 간판 공화국, 우리는 이미지의 독재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해 온 그가 지방선거와 지방자치제를 향해 일갈을 가한 내막이 뭘까. "'강금실·오세훈 효과' 덕분에 '이미지 정치' 논쟁이 뜨겁다"며 지난 4월 19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이미지와 독재'란 칼럼에서 이미지 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한 후여서 더욱 관심을 끈다.

"다가올 4대 지방선거는 출발부터 잘못됐다"며 포문을 열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데아'와 '이데올로기'가 정치판에서 '이미지'와 '이마골로기'로 대체되고 있음을 경계해 온 강 교수는 더 이상 지방 이데올로기를 감내하기 어렵다고 한다.

평소 지역내부의 소통채널 부재를 우려했던 그는 지방선거에서도 여전히 중앙 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는 원인을 '스톡홀름 신드롬'에서 해법을 찾고자 한다.

"지방의 근본 문제는 어떤 정당이 지배력을 행사하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중앙정치권이 지방을 식민지로 생각하고 있다는데 있다"고 전제한다. 이는 '도토리 키 재기'가 아니라 '쌀알 키 재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중앙과 지방 중 누가 더 썩고 덜 썩었나 하는 걸 따져 무엇하랴만, 정작 따져야 할 일은 우리당이 차지한 지방권력과 한나라당이 차지한 지방권력의 부패정도를 비교평가 하는 것"이라고 일차 문제제기 한다.

70년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인질강도 사건에서 문제제기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당시 인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자인 강도들의 논리에 동화되어 그들의 편을 들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행태를 보인 '스톡홀름 신드롬'이 지금 우리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한다.

"'규칙' 지키지 않은 정부 여당, 1차적인 책임"

중앙과 지방의 관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논거로 든 사례치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는 중앙에 사사건건 발목 잡힌 지역민들의 중앙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꼬집었다. "지역주의적 투표행위도 궁극적으론 우리지역 정당을 키우자는 장기프로젝트 일환일수 있지만 중앙정당 중심의 정략적 파워와 무관치 않다"는 게 그의 논리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리지상주의에 집착하고 있지만 지방선거는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이다. 비판의 날은 정부와 여당을 우선 향했다. 대통령도 이 대목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5월 지방선거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고, 부정과 반칙하는 사람이 반드시 패배하는 그런 선거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 대통령의 발언을 강 교수는 문제 삼았다.

"장관직이 논공행상의 전리품이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내각이 선거용 경력관리 기구로 국민들에게 인식될 경우 우리 정치풍토와 공직문화에 미칠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것도 규칙에 충실한 것이었을까."

그의 반문은 계속 이어졌다. 실종된 규칙에서 공정한 건거관리 의지가 가능할리 만무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함으로 읽혀진다.

"여당이라고 해서 오로지 집권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심산이라면 선거 분위기를 혼탁하게 몰아가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강 교수는 여당이 부르짖는 선거개혁과 규칙 간의 괴리와 모순은 잘못된 5.31 지방선거의 시발점이었음을 끝내 경고한다.

'대선필패'보다 더 무서운 건 한나라당 '공천장사'

인물과 사상 6월호에서 강준만 교수는 지방선거와 지방자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인물과 사상 6월호에서 강준만 교수는 지방선거와 지방자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 인물과 사상
정부와 여당이 규칙위반을 했다면 야당은 공천장사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한나라당을 꼬집었다. "정부여당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바쁜 반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공천장사하기에 바빴다"며 그는 씁쓰레 한다.

당 대표의 피습으로 의제가 쉽게 식고 말았지만 한나라당은 4월에 불거진 김덕룡·박성범 의원의 공천파문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언론마저 그걸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강 교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당시 보도내용을 끄집어 든다.

영남지역의 공천파문 확산과 관련해 양 신문이 보도한 내용 중 '대선필패 열차', '공천장사 정찰가', '국민의 피와 꿈과 목숨조차 못 팔 게 없는 무서운 정당' 등 한나라당에겐 뼈아픈 대목을 되짚었다. "공천장사가 지방자치를 돈 놓고 돈 뜯어먹기 전쟁으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다"는 그는 '대선필패'보다 더 무서운 적으로 간주했다.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제에 대해서도 그는 문제를 제기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정치관계법 간담회에서 정당공천 폐지가 주장됐고 코리아리서치센터 여론조사와 한국헌법학회 및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의 지방자치토론회 등에서도 '국민의 열망을 저버린 악법'으로 규정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이 후보를 검증해 자격 없는 후보가 난립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장에선 이 제도가 실제론 국회의원이 자기 사람을 지역구 내 각 동에 심는 역할을 하는 꼴"이라며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국회의원의 권력 때문에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강 교수는 또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지방분권을 같은 맥락에서 비판했다. 그는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의 졸로 기능하는 건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반문 한 뒤 "유감스럽게도 이것 역시 기대할 게 못 된다"고 답했다.

"5.31 지방선거가 아니라 5.31식민지 선거다"

참여정권 출범의 핵심의제였던 지방분권의 뒤틀린 형상도 꼬집었다. 그는 "지방엔 어음, 수도권에 현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수도권 택지개발 확대는 참여정부가 금과옥조로 내세웠던 수도권 과밀화·집중화 억제정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지역내 소통 채널이 부재한 것도 지방정치를 중앙정치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한 요인"이라며 그는 끝내 지역언론의 병리현상도 지적한다. 정당들은 '묻지 마 영입'을 하고 유권자들은 '묻지 마 투표'를 하는 것은 지역 내 소통 채널이 부족한 때문으로 일단 분석했다. 그런 뒤 최근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내놓은 지역신문 구독률을 사례로 들었다.

고작 1~10%대인 지역신문 구독률로는 중앙식민지 정보유통 체계를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역언론에 돌을 던지고 침을 뱉기에 바쁘지만 지역언론이 그런 참상에서 탈출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고 한다.

체념의 지혜를 발휘하며 지방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음을 그는 개탄했다. "지금과 같은 중앙 식민지 정보유통 체계를 그대로 두고선 지방자치에 희망이 없다"는 그의 글에선 '악순환'이 가장 큰 위험 요소임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때문일까. 그는 "5.31지방선거가 아니라, 5.31식민지 선거"라고 글 말미에서 표현했다. 지금과 같은 중앙 식민지 정보유통체계를 그대로 두고선 지방자치에 희망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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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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