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독자들 때문에 남편도 고민입니다.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독자들 때문에 남편도 고민입니다. ⓒ 김혜원
"독자들이 서운해하는데 그냥 계속 해볼까?"
"이제 대단원이 되었다면서. 어떻게 계속해?"
"연속극 늘이는 거 못 봤어. 연재도 마음만 먹으면 고무줄처럼 늘일 수 있지."
"그러다 꼭 욕 먹더라. 뭐든 아쉬울 때 끝내는 게 좋은 거지."
"난 <단장기>를 읽는 독자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계속 쓰길 바라는 마음 말이야."
"허어∼ 이제는 모니터를 통해 독자와 텔레파시까지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셨네요. 무협지를 쓰시더니 내공이 고강해지신 모양입니다 그려. 호호호."


<단장기>의 탄생은 아주 우연한 것이었습니다. 3년 전, 그러니까 2003년 봄쯤이지 싶습니다. 당시 남편은 지독한 봄을 앓고 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럭저럭 잘 나가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가족 모르게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는 것은 나중에 남편에게 들어서야 알았습니다. 더구나 아내라는 사람은 남편의 고민을 살피기는커녕 '집안 분위기를 무겁게 한다'며 오히려 잔소리를 하고, 아이들 역시 그런 아빠를 멀리 하던 시기였지요.

남편은 그 해 그 춥고 시린 봄날의 언저리에서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줄 것을 찾던 끝에 제목마저도 자신의 심정과 같이 슬프고 애절한 <단장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힘든 봄을 지내고 여름으로 접어 들어가는 어느 날 새벽. 톡톡거리는 컴퓨터 자판치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 3시를 지나는 그 시간까지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벌써 한 달도 넘게 밤이면 컴퓨터 앞에 붙어 앉은 남편을 보고 별 상상을 다 했습니다.

'혹시 다 늙어 채팅에 빠진 건 아닐까? 요즘 나하고 사이도 안 좋은데…. 그 핑계로 밤새도록 여자들하고 노는 거 아냐? 밖에서도 만나는 건 아닐까?'

자존심상 '뭐하느라 밤새 컴퓨터를 하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한 채 '저러다가 싫증나면 그만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 해 여름을 다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을을 맞던 어느 날입니다. 컴퓨터를 켜고 문서 작업을 하다가 문득 남편 이름으로 된 문서 폴더를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여기다가 채팅하는 여자들 명단이라도 숨겨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넌 죽었어!'

단장기에 주신 좋은 기사원고료. 남편의 자랑거리랍니다.
단장기에 주신 좋은 기사원고료. 남편의 자랑거리랍니다. ⓒ 김혜원
일기를 훔쳐보는 심정으로 열어본 남편의 문서 폴더 속엔 '송하령', '담천의', '단장기', '중국역사', '중국전통음식', '중국고대의상' 등등 알 수 없는 이름의 폴더들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여자이름인 송하령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송하령? 하령이가 누구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정말 이 인간이 여자를?'

기가 차서 열어 본 '송하령'이라는 문서 안에는 그녀에 대한 짤막한 인상 스케치가 나와 있습니다.

[나이 20세. 송렴 대학사의 손녀. 담천의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짐.]

'뭐야…? 담천의와 사랑에 빠져? 담천의는 또 누구야? 설마 채팅 아이디는 아니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발칙한 상상을 누르며 열어본 단장기 폴더에는 엄청난 양의 글이 들어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여름 그리고 가을이 시작되는 그 시기까지 밤을 새워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한 남편의 애인은 바로 무협소설인 지금의 <단장기>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몇 시간을 앉아 눈이 아프도록 읽어 내려갔습니다. 무협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재미도 모르겠고 어려운 말 때문에 이해도 잘 되지 않았지만, 단 한 가지 얼마나 정성을 다해 열심히 써 내려갔는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관련 일을 하게 된것도 단장기 때문 일까요?
중국관련 일을 하게 된것도 단장기 때문 일까요? ⓒ 김혜원
20년 전 학생 신분으로 결혼하고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썼던 무협지를 이제는 자신을 가라앉히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쓰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밤새 손톱이 아플 정도로 자판을 두드려대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저 사람이 그동안 참 많이 힘들고 외로웠구나….'

그렇게 열심히 남편이 써 놓은 <단장기>는 이듬해 8월 <오마이뉴스>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장기>를 세상에 내놓길 두려워하던 남편 몰래 제가 <오마이뉴스>에 살짝 올려두고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연재여부를 결정하려 했던 것인데,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에 힘입어 어느새 3년을 넘기고 430회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독자들과의 약속이 없었다면,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없었다면, <단장기>는 완성되지 못할 작품이었어. 오늘날 <단장기>를 완성하게 한 것은 모두 독자들의 공이거든. 안 그랬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쓰기를 그만 두었을 거야. 내 스스로에게 나도 놀라고 있어. 그래서 독자들과 소주라도 한 잔 나누려는 거지. 감사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어서…."

한 달에 열흘 이상은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야 했던 남편은 지난 몇 달 동안 연재에 대한 부담으로 밤을 새워서라도 연재분량을 맞추어 놓고 출장을 떠났습니다. 이런 남편을 보면서 힘은 들었지만 스스로의 인생을 돌이켜볼 때 참 멋진 시간들이었다는 추억과 보람을 가지게 될 그가 부러웠습니다.

남편은 약속처럼 말합니다. 당분간은 연재의 긴장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겠지만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너무 오래 독자들과 헤어져 있지는 않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남편은 <단장기>와 독자들, 둘 다를 너무나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당분간 그 두 애인이 없는 틈을 타서 제가 사랑을 좀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래가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 정통무협소설 <단장기> 페이지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