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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청어람미디어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큰소리친다. 그만큼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존경하며 그의 문학을 사랑한다는 얘기가 되겠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에는 식민지 인도에 대한 멸시와 ‘대영제국’의 문화에 대한 자만심이 담겨 있다.

그런 영국인들의 문화적 우상인 셰익스피어는, 더 이상 영국인들만의 셰익스피어는 아니다. 흔히들 세계 3대 문호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의 명성을 가진 셰익스피어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혀오고 있으며 대학교의 영문학 과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학자들의 정전이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의 희열과 비극을 대표하는 세계 문학으로 꼽히고 있고,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끊이지 않고 영화화되고 있다. 대학로를 비롯한 한국의 연극판을 살펴보자. <템페스트>, <한여름 밤의 꿈>, <셰익스피어의 연인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 희곡의 원작과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들이 계속적으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도서관에서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서가를 찾아가면 그 방대한 도서들에 압도되기까지 한다. 아마도 마르크스와 성경에 관련된 책들을 제외하면 가장 방대한 분량이 아닐까 싶다. 셰익스피어 비평의 역사를 담는 책인 <셰익스피어 비평사>도 두꺼운 책으로 몇 권 분량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힘이 센 셰익스피어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오고 있었던가. 현대 한국과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이 전혀 달랐을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아무런 비판적 의식 없이 읽어왔던 건 아닐까. 이런 의문으로부터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고자 하는 독자라면 박홍규의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노동법을 전공한 학자로 전공보다는 다양한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저술과 번역으로 명성이 높다. 더우기 나는, 그를 수많은 국내 문학도들보다 앞서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한 학자로 알고 있어서 이번 책에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박홍규의 번역과 저술을 모두 합해서 처음으로 접하는 그의 저술인 까닭에,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라는 다소 선언적인 주제와는 별개로 박홍규라는 저자에 대한 관심도 작지 않았다.

그러면,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는 대체 어떤 책일까. 이제 책을 읽어보자. 먼저, 이 책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나 비평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두고 읽어야 한다. 박홍규가 영문학자나 셰익스피어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적인 평가를 접하고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사거나 읽는 일을 말리고 싶다. 책 제목의 다소 도전적인 선언만큼 박홍규는 셰익스피어를 치밀하게 읽어내고 있지는 못하다.

셰익스피어의 생애과 시대를 간략하게 소개해주고 있고 그의 몇몇 희곡 작품들의 줄거리를 요약해주고 그 안에 담긴 셰익스피어의 차별주의를 읽어내고 가끔씩 국내에 번역된 셰익스피어 희곡의 오역을 지적한 뒤에 셰익스피어 희곡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작품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긴장이 상당히 풀린 진부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를 비판적으로 읽는 박홍규의 작업은 얼마나 성공적인가. 박홍규는 머리말에서 “나는 셰익스피어가 싫다.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부시만큼 싫다. 두 사람 모두 제국주의자이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 셰익스피어를 비하다니! ― 지하에 있는 셰익스피어가 들었다면 매우 원통해했을, 심한 욕설이 아닐 수 없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정치적 혐오감을 그대로 드러낸 이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정치적 비평의 예리하고 섬세한 칼날을 들이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박홍규는 그러한 문제 의식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박홍규가 지적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희곡에서의 차별주의’를 중요한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 말하자면 영국의 식민지 활동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활동은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32쪽)
- 어떻게 보든 간에 셰익스피어 시대는 봉건적 귀족으로부터 상업 부르주아 지배로 가는 이행기라고 볼 수 있다. (38쪽)
- <헨리 4세>는 잉글랜드의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침략을 다룬 제국주의 사극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은 영문학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삼국시대의 백제나 고구려가 신라에게 제국주의 침략을 당했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겠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침략사를 객관적으로 보는 한 그렇게 보지 못할 이유도 없다. (98쪽)
- 물론 이처럼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차별, <오델로>는 흑인 차별, <리처드 3세>는 장애인 차별이라고 하여 출판이나 상연을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에는 그런 차별주의가 깔려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117쪽)


이외에도 셰익스피어 희곡에서의 동성애 차별이라든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태풍(템페스트)>에 대한 분석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라는 선언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박홍규의 전공인 법학 지식이 발휘되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의 법정 장면에 대해 설명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치밀하지 못한 이 책은 박홍규 저술 작업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겠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자신의 전공을 넘어서 ‘새로운 읽기와 쓰기’를 고민하고 대중 독자들에게 다가서려는 저자의 노력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전공의 벽을 높이높이 쌓아올리기만 하는 소통 불능의 학계-문화계가 그만큼 답답해 보이는 까닭이다. 영역과 전공을 넘나들면서 인문 교양과 문화의 폭을 넓혀가는 박홍규의 계속될 작업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박홍규 / 청어람미디어 / 2005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박홍규 지음, 청어람미디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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