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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송진현)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영화〈다빈치 코드〉가 신성을 모독해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침해한다"며 이 영화의 한국배급사인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를 상대로 낸 영화상영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16일 기각했습니다.

이미 문화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시대를 살고 있으니 이런 판결이 날 것이라는 것쯤을 누구나 상상 가능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개신교 단체나 각 기독교 상회(총회)의 사회에 대한 일방적 인식과 원리주의적이고 독선적 행태에 대한 반성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개신교 단체들의 '권력 해바라기' 근성

최근 각 종교계의 인식도 조사에서 교회 목사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나쁘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작년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교회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서 최하위의 평가가 나온 점 또한 우리 기독교인들이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며 우리 교회의 대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요? 미군 장갑차가 두 여중생을 치고 달아났을 때 국민들은 울분을 쏟아내며 미국의 태도에 대해 광분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치어죽은 여중생에 대한 측은지심은커녕 미군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만 표했었습니다.

사학 재단의 전횡으로 사학의 부패가 문제가 되어 사학법이 개정되었을 때 각 개신교의 단체 대부분과 각 총회들은 사회적 비난은 외면한 채 보란 듯이 사학만을 옹호, 두둔하였습니다.

분명하게 현행 사학법이 사학의 전횡과 부패를 조장하는데도 사학만을 두둔하는 것은 국민들로선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국민들 여론의 80%가 사학의 부패를 인정하는데도 사학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듯한 태도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러한 비이성적인 것들에서 우리 개신교 전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군부의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를 감행했을 때 우리 개신교 지도자들은 전두환을 두둔하는 조찬기도회를 열어 나라를 잘 이끌어 줄 것을 기도했습니다. 박정희 시대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우리 개신도 지도자와 단체는 여러 종교단체 가운데 유독 두드러지게 권력 해바라기의 근성을 드러냈습니다.

한기총의 <다빈치 코드> 극렬반대 선동, '비예수적'

<문명은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1927)>와 <신앙과 역사(1949)>를 쓴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니부어(Niebuhr, Reinhold·1892~1971)는 윤리를 사회윤리와 개인윤리로 구분해 사회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집단간 분쟁에서의 집단이기주의를 폭로하고 단순한 그리스도교적인 사랑만을 실천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적인 사랑에 접근해나가는 소위 그리스도교적 리얼리즘의 입장을 제창하였습니다.

그는 도덕적인 인간으로 구성되는 사회라 할지라도 그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한 개인은 동정심도 있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이타심이나 이해심을 가질 수 있으며 또 개인으로서는 양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언제나 도덕적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회집단은 그렇지 않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부도덕한 짓도 감행한다는 것입니다.

니부어는 사회 개개인의 개인윤리와 사회단체의 사회윤리를 구분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우리 개신교단체나 상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개개인의 개인윤리가 아무리 신실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표한들, 기독교단체를 구성하여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신교 집단이나 상회들의 파행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들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집단적인 행태에서 분명 자기 집단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침해가 된다면 국민적 여론이나 개개 개신교 신자들의 뜻과 무관하게 이익집단의 관심을 쫓아다니는 기독교 단체나 상회인 총회를 보면서 우리 기독교가 기독교 독선주의로만 비춰지는 것입니다. 오직 목사나 장로들의 사익만을 쫓고 반성경적이며 반이성적임을 국민들이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사학법이 개정되었을 때 기독교 단체들 중에는 십자가를 지면서 “순교를 각오한다”는 퍼포먼스 시위를 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과 사학법에 반대하는 것, 대척점에 선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번에 영화 <다빈치 코드>가 개봉될 즈음 한기총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슬람식으로 해야만 영화상영을 저지할 수 있다”며 “좌파적인 방법으로 데모하자”고 선동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생명을 걸고 영화상영을 막겠다”는 막말로 결의를 했었습니다.

이를 보고는 국민들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습니다. 영화상영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비이성적인 행태를 드러내겠다는, 상식을 넘은 기독교 절대주의적 사고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다빈치 코드>는 분명 예수님을 호되게 욕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기총이 내보인 수단들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너무 비성서적이고 폭력적인 원리주의자들을 본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본인들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로 구성한다니 실소를 금할 길 없습니다.

진정한 예수의 길을 가라

예수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죽임을 당하시면서 홀로 고난을 감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의 군병들을 향하여 야단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빈치 코드>가 예수님을 모독한다손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모습으로 있으시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무장을 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처럼 ‘공격 앞으로’ 의 구호를 들으시기를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상회 즉 총회나 노회 그리고 여러 개신교 단체들에게 고합니다. 이제 권력과 독선, 아집의 자리, 사회를 향해 총대를 메는 자리가 아니라 ‘예수에게로 귀의’하는 자리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썩을 대로 썩고 정치모리배들을 닮아 권력을 추종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개선하기는커녕 교회 공의조차도 세우지 못하는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과 교회의 공의를 위해 진정한 성직자의 자리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목사와 장로들의 패거리 정치가 아니라 낮고 어두운 구유의 자리에 서서 오직 예수님이 서 계셨던 자리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상회의 금권과 권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 <뉴스엔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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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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