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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웃음으로 수ㆍ목요일 밤을 기다리게 만들던 SBS <불량가족>이 지난 11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방영 내내 수목드라마 부문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시청자들의 꾸준한 지지를 받았던 <불량가족>은 마지막회에서 19.2%로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지난 3월 첫 전파를 타기 시작한 <불량가족>은 사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안방극장에 스타급 배우들과 제작진을 앞세운 화제작들이 대거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데다가, 당초 여주인공 역으로 낙점되었던 한채영이 남상미로 갑작스럽게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된 후, <불량가족>은 별다른 홍보나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우지 않고도 조용한 인기몰이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시청률은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꾸준히 10% 초중반의 성적을 유지하며 동시간대 선두를 유지했고, 개성강한 캐릭터들과 신-구 배우들의 적절한 호연, 남녀노소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편안한 홈드라마의 매력을 앞세워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는 데 성공했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통속성을 뒤집어

교통사고로 일가족을 모두 잃은 소녀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생면부지의 타인들이 '유사 가족'을 결성한다는 독특한 설정에서 출발한 <불량가족>은, 일반적인 가족드라마의 통속성을 뒤집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시선을 모았다.

<불량가족>의 구성원들은 진짜 가족이 아니다. 무식한 건달 오달건(김명민)의 협박과 회유에 의해 마지못해 동참하게 되는 불량 가족 멤버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빈곤한 소시민들이거나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별 볼일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무엇 하나 의지할 곳 없이 각박하게 살아왔던 인물들은, 온갖 소동과 고락을 함께 겪어나가면서 차츰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마침내 진짜 가족들보다 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불량가족>은 선남선녀나 화려한 재벌 2세가 아닌, 우리의 이웃에 가까운 평범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별 볼일 없는 소시민들이 힘을 합쳐 역경을 헤쳐나가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공동체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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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가족드라마'들이 뒤틀린 가족사나 출생의 비밀, 불륜과 고부갈등 같은 진부하고 자극적인 소재에만 매몰되어 가족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과 달리, <불량가족>은 가짜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보다 더 인간 냄새 나는 '가족이야기'를 펼쳐보였다. 또한 아무런 고민 없이 사랑타령에만 매달리는 요즘 트렌디드라마의 주인공들에 비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언제나 소소한 현실의 고민을 등에 업고 사는 <불량가족>의 인물들은 화려하지는 못해도 훨씬 인간적이다.

뚜렷한 개성들이 이룬 앙상블이 인기 비결

저마다 개성과 역할이 뚜렷한 캐릭터와 배우들 간의 앙상블은, <불량가족>의 가장 중요한 인기비결이었다. <불량가족>은 일반 트렌디드라마처럼 남녀 주연 1-2명이 절대적인 비중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 아니다.

불량가족 멤버인 장항구(임현식)와 박복녀(여운계), 조기동(강남길), 엄지숙(금보라) 등은 물론이고, 외부 인물인 하부경(현영)이나 노아나(최하나)에 이르기까지. 조연들도 단순히 주연을 받쳐주는 그림자이거나 중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인물들이 아니라, 저마다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자신들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담당한다. 극 전개상 다소 얄미운 역할이나 연적관계라 할지라도 저마다 미워할 수 없는 개성과 내력을 지니고 있다는데서 '앙상블 드라마'의 장점이 돋보인다.

<불멸의 이순신>의 무겁고 진지한 이미지에서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건달로 연기변신에 성공한 김명민의 몸을 사리지 않는 막춤, <달콤한 스파이> 이후 밝고 건강한 신세대의 이미지를 구축한 남상미의 억척녀 연기, 노년의 고독을 쓸쓸한 미소 속에 감추던 임현식의 걸출한 호연이 빛난 '어둠 속의 나 홀로 댄스',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실제 히트곡을 천연덕스럽게 부르던 현영의 시장 노래자랑 등은 <불량가족>을 빛냈던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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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량가족>의 진정한 히로인은 역시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 나림 역을 호연한 아역배우 이영유였다. 전작 <불량주부>에서 손창민의 발랄하고 귀여운 딸 송이 역으로 야무진 매력을 선보였던 이영유는 1년 사이 부쩍 커버린 모습만큼이나, 특유의 깜찍한 표정 연기는 물론이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애절하고 슬픈 눈물 연기를 여러 차례 선보이며 '한국의 다코타 패닝'이라는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부자연스럽지 않게 눈물과 웃음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점에서 <불량가족>은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홈드라마의 강점을 두루 갖췄다.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좌충우돌할 때는 유쾌한 시트콤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다가도, 매회 에피소드에서 각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낼 때면 뭉클한 감동과 눈물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유쾌한 웃음 속에서도 소시민들의 애환과 고뇌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였던 <불량가족>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최근의 드라마 속에서, 제목과 달리 전혀 불량하지 않은 가족들의 행복한 꿈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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