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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들이기 좋은 계절, 하늘만 바라본다.
ⓒ 한지숙
봄이 영영 올 것 같지 않던 시골 산자락의 혹독했던 지난 겨울. 마음 한켠에 그래도 버리지 못한 건 봄이 온다는 희망이었다. 죽 끓듯 변덕스런 날씨가 교대로 들락이는 가운데 봄은 어김없이 왔지만, 버석한 가뭄은 또 흙바닥을 쩍쩍 가르며 봄이 오는 길목에 드러누워 훼방을 놓더라.

며칠 전엔 마른 먼지 일으키며 장대 같은 비까지 지나갔으니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하늘. 농사로 평생을 살아온 이웃 어르신들의 깊은 한숨만큼이나 물들이는 사람의 가슴에도 마른 내음이 푸석거린 나날이다.

▲ 평사리 들녘, 큰 비 지나고
ⓒ 한지숙
어쩌다 볕이라도 반짝 고개를 내밀면 그동안 손대지 못한 '물들이기'에 허둥거리기 일쑤. 며칠 맑은 날이 이어질 듯 오전엔 마당 한가득 말간 볕까지 머물러 염료를 끓이기 시작했는데 오후 들어 바람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지붕 없는 작업장 곁을 떠날 수가 없다. 가스불의 기운이 어디를 향해 할랑할랑 혀를 낼름거릴지 종잡을 수 없는 날, 벼르고 별렀는데 가볍게 포기할 밖에. 검정이 필요하고 분홍도 필요한데 오늘처럼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날엔 정련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 일반면도 정련을 해 놓는다.
ⓒ 한지숙
‘염색’을 생각하면 물들면서 드러나는 은은하고 고운 자연의 빛깔만을 떠올리지만, 곱게 물들어 원하는 색이 되기 이전에 정련에 마음 기울이는 정성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염료에 따라 그 염료만이 지닌 고유의 ‘빛깔’은 기본이되 내가 빚은 색깔, 나만의 빛깔을 내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정성을 쏟는 이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물들이는 작업에 앞서 최선을 다하는 작업이 내겐 바로 정련이다.

▲ 본 염색에 앞서 정련을 잘해야
ⓒ 한지숙
‘정련(精練)’은, (천연)섬유에 들어 있는 이물질이나 화학성분을 없애고 표백이나 염색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말한다. 염색을 하려면 이 과정을 놓치지 않아야 원하는 색을 고르게,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 조팝과 진달래가 어우러진 풍경
ⓒ 한지숙
견직물의 정련은, 하룻밤이나 물들이기 1~2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에 담가 풀기를 빼준다. 비틀거나 꼭 짜지 말고 자연스럽게 빨랫줄에 널어 꾸둑꾸둑한 정도가 되었을 때 염색을 하면 좋을 것이다.

면의 정련은, 비누를 녹인 물에 폭폭 삶아 비눗기가 남지 않도록 맑은 물에 여러 차례 헹궈 볕에 잘 말린다. 염색의 본 과정보다 조금 가볍고 쉽게 하는 작업이라 나는 이 과정 또한 즐긴다. 당연한 것인데도 ‘즐긴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련을 하는 동안 이 과정 후에 벌어질 본 염색에 대한 기대감이 정련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정련부터 정성을 들이자.
ⓒ 한지숙
화학기를 없애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이 여기까지라면, 면 염색의 경우 선매염을 해두는 것까지가 나의 정련 방법이다.

자, 준비가 다 되었으면 이제부터 물을 들이자, ‘소(素)하고 담(淡)하게’ 물을 들이자.

덧붙이는 글 | 물들이기 좋은 계절입니다. 
자연에 어우러져 자연에 물들기, 염색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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