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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신 TV시청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신 TV시청 ⓒ 김기세
지금은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마약성(!) 진통제를 몸에 붙이고 계시면서 식사를 하시고 약을 드시면 거의 비몽사몽간에 누워 계십니다. 주로 TV를 크게 틀어놓으시고 정신이 나시면 이리 저리 드라마에서 심지어는 골프채널 및 광고방송까지 두루 섭렵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제 아내와 같이 TV를 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둘째형과 같이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이란 곳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습니다. 침대에만 누워 계시니 씻지도 못하시고 맨날 답답하고 하셔서 틈만 나면 창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셨는데, 목욕을 가자고 하였더니 금방 얼굴이 밝아지셨습니다.

목욕탕으로 가시기 위해 밖으로 나오신 아버지
목욕탕으로 가시기 위해 밖으로 나오신 아버지 ⓒ 김기세
사실 아버지께서는 특히 오른쪽 골반과 왼쪽 어깨 부위에 암세포가 많이 퍼져 있어 거의 못 움직이시는 데다 조금만 다치면 통증을 느껴 비명을 지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목욕탕에 가고 싶어 하셔서 휠체어에 모시고 인근의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어제가 아버지와 제가 목욕을 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려서는 목욕탕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주로 부엌의 아궁이에서 연례행사로 '목간'이라는 것을 별도로 했었지요.

그 이후는 도회지로 이른바 '유학'을 가게 되면서 두 아이의 가장이 되기까지 아버지와 목욕을 한 번도 같이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불효자가 따로 없습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그야말로 하체 부분에 거의 뼈만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살점이라고 해봐야 근육의 느낌이 없는 물렁물렁한 살들……. '어린아이의 살이 이보다 더 부드러울까'라는 느낌이 들다가 결국 '부드럽다기보다는 힘이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제 어머니께 "아버지가 많이 야위셨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조금 더 빠지시면 돌아가신단다"라고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목욕탕에서 직접 아버지의 모습을 뵈니 정말로 '얼마 남지 않으셨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욕탕으로 가면서 아버지는 저 멀리 바다와 연접되어 있는 수평선을 지그시 바라보셨습니다. 마치 '아 내가 다음에도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시는 듯.

큰며느리에게 용돈을 주시는 아버지
큰며느리에게 용돈을 주시는 아버지 ⓒ 김기세
오늘이 큰형수의 생일이었는데 둘째형이 아버지께 "아버지 오늘 큰형수 생일인데 아버지께서 용돈 좀 주세요"라고 큰 기대감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바로 "그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 오셔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큰며느리를 부르더니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둘째며느리, 일이 있어 미처 내려오지 않은 셋째며느리를 빼고 막내며느리까지, 그리고 손주들까지 일일이 불러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저를 포함한 형제들까지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아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지갑에 돈이 많이 있었던 것도 놀랍고 더더욱 놀란 것은 돈을 거의 남기지 않고 골고루 다 나누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용돈을 주시면서 오랜만에 웃음을 보이시는 아버지
용돈을 주시면서 오랜만에 웃음을 보이시는 아버지 ⓒ 김기세
아내가 돌아오면서 "아버님께서 용돈을 주셔서 받긴 받았는데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네~"라고 한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지난주에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어머니는 밭에 나가시고 아버지 혼자 방에 누워계시면서 TV를 보시든가 아니면 약 기운에 취해계실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모든 것 다 때려치우고 무작정 차를 몰고 시골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삶이란 것을 저를 쉽게 놓아주질 않더군요. 아니 제가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을 핑계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조금씩 조금씩 당신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그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주 전화 드리고 자주 찾아뵙는 것밖에 없는 듯해서, 아니 그것도 제대로 못해서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아버지… 부디 조금만 힘을 더 내십시오. 다음주 82회 생신 보내시고 내년까지는 더 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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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과 국가가 향후 진정한 자주, 민주,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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