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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교수님 초청강연
서중석 교수님 초청강연 ⓒ 이기원
망월동 신묘역 입구 민주의 문
망월동 신묘역 입구 민주의 문 ⓒ 이기원
첫 순서는 서중석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5.18 민중항쟁의 현재적 의의'라는 주제였다. 교수님과는 1994년 강원지역 동학농민운동 답사에서 만나 강릉에서 밤 새워 술 마시며 토론한 기억이 있다. 주로 역사비평지에 나온 글을 중심으로 얘기를 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음에도 올곧게 현대사를 중심으로 역사연구에 전념하신 노 교수님의 모습을 다시 뵙게 되어 참 반가웠다.

러일전쟁과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문제, 문세광의 8.15 저격사건, 그리고 5.18 문제 등 근,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구체적 자료를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셨다. 학교 담장에 갇혀 야자다 보충이다 일은 많이 하지만 정작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는 타성에 젖은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해주는 채찍처럼 교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아프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수업 사례 발표가 있었다. 광주 전남 지역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업 사례가 발표되었다. 아쉬웠던 것은 수업 사례 하나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발표하기보다는 많은 수업 사례들을 종합해서 소개하는 방식이라 사례 발표를 듣는 입장에서 '아하!' 라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일 기회를 자주 갖지 못했던 점이다.

추념문과 기념탑
추념문과 기념탑 ⓒ 이기원
많은 준비를 해서 많은 걸 보여주려는 마음은 고맙게 생각되지만 참실 발표처럼 하나의 수업을 자세하게 소개해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자료집에 들어있는 모든 수업을 다 소개하려 하지 말고 대표적 수업 한두 개 정도 집중적으로 발표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소개되지 못한 수업은 나중에 자료집을 통해 각자 읽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 마지막 순서는 친교의 시간이었다. 5.18 재단과 전남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께서 마련해주신 자리에 둘러앉아 한 사람 소개에 건배 한 번씩의 강행군이었다. 말로도 노래로도 내세울 만한 재주가 없는 터라 군더더기 하나 없이 필요한 말만 쏙쏙 골라 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휘어잡는 말재주꾼 선생님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운동가면 운동가대로 민요면 민요대로 뽕짝이면 뽕짝대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들었다. 먼동이 틀 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는 전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자리를 굳게 지켰다.

다음날의 답사가 이번 연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방문지는 망월동 묘지였다. 묘지 입구 자유의 문 앞에서 박경순 묘지관리소장님이 반겨 맞아주었다. 5.18 희생자 유가족의 한 분이라고 했다.

깔끔한 정도를 넘어서 거대하고 웅장하게 단장된 망월동 신묘역을 소장님과 함께 들어섰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두부처럼 잘리워진.. 손옥례씨의 무덤
두부처럼 잘리워진.. 손옥례씨의 무덤 ⓒ 이기원
80년대 대학가에서 목이 메도록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 가사처럼 세월은 흘러 26주년이 되었다. 1985년 남도 답사 길에 전남대학교 학생의 도움을 받아 새벽에 남의 눈을 피해 들어갔던 망월동 묘지였다. 새벽이슬 촉촉한 묘역을 돌아다니며 희생자들의 사연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른 지금 망월동 묘지는 성역처럼 우뚝 솟아있고 예전 같은 긴장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희생자들의 묘비명 앞에 서면 가슴 속 뜨거운 감정이 뭉클 치솟는다.

고무신 주우러 갔다가 총 맞아 죽은 아이, 두부처럼 가슴이 잘려진 채 죽은 꽃다운 나이의 누이, 남편을 기다리다 총을 맞아 죽은 임신한 아내의 죽음…. 어머니가 죽어가는 동안 뱃속의 아이는 오랫동안 요동을 쳤다고 한다. 남편은 참혹하게 죽은 아내의 시신 앞에서 한마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이 묘비 뒤에 새겨져 있다.

여보 당신은.. 임산부의 죽음
여보 당신은.. 임산부의 죽음 ⓒ 이기원
상반신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주검도 있었고, 가족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무명의 주검도 많았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계엄군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다가 총을 맞아 죽은 중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가끔 나이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단체로 이곳을 찾는 경우 이 참혹했던 과거사에 몸서리를 치면서 그 책임자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대답하면 아이들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왜 죽지 않고 살아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지 난감해진다며 박경순 소장님은 쓸쓸하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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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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