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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의 풍경> 겉그림.
<한국 근대사의 풍경> 겉그림. ⓒ 생각의나무
'모던 조선을 거닐다'는 부제를 가진 서적으로 <한국 근대사의 풍경>은 독자들과 만난다. 먹고살만해진 후에 관심 가지기 시작한 가깝고 먼 과거사는 거대한 금맥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손짓한다. 문화와 결부된 생활사나 미시사는 이제 거역하기 어려운 관심영역이 되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후에 익숙해진 독서생활의 편린 가운데 하나다.

왜 우리는 지난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는 것일까. '젊은이는 노인의 과거이며, 노인은 젊은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반추하는 우리는 구세대의 미래지만, 지금과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다가올 신세대의 과거다. 시간에 대한 관심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공통된 유전인자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제한된 시간만을 살아가는 인간숙명에 대한 정면응시다.

<한국 근대사의 풍경>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철도와 전기-통신, 도로와 상가 및 탈것에 대한 의미천착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근대성' 앞에 내걸린 '뒤틀린'이란 수식어가 글쓴이의 기본자세와 입장을 매우 적절하게 함축한다. 제2부는 제1부의 이론적인 논거를 구한말과 식민지 조선팔도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실천의 마당이다.

제1부: '뒤틀린 근대성의 상징들' 가운데서

"앞차의 화륜이 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굴게 되니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사백리를 달린다 하였는데, 좌우에 산천초목과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함으로 도저히 잡아보기 어려웠다." (16쪽)

1876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의 <요코하마 열차탑승기> 가운데 일부다. 정확히 지금부터 130년 전에 있은 일이다. 우리보다 불과 다섯 세대 앞을 살았던 조선의 고위급 지식인이 넋을 잃은 풍경 하나가 눈앞에 또렷하게 떠오른다. 만일 그가 오늘날 서울 부산을 최고속도 300km로 달리는 고속열차를 탄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일본이나 일본인을 통해서 수입된 조선의 근대는 당연히 식민지경영을 위한 수탈과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절망과 애환의 징표로 작용하였다. 전기와 조명에 관련된 대목을 하나 살펴보자.

"국권상실의 허탈함을 뒤로 하고 사람들은 마법에 홀린 듯 밤거리 불빛 속을 떠돌아다녔다. 대중들은 사용하는데 서툴러 전구를 켜놓고 입으로 훅훅 불어서 끄려 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1920-30년대 조선인들 사이에는 저녁나절 뚜렷한 목적도 없이 진고개와 혼마치 (오늘날 명동과 충무로 일대) 상점가를 배회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44~45쪽)

강제로 통상조약을 맺고, 일제에 강점된 조선인들은 근대문물에 노골적으로 노출되었고, 그것에 저항할 여력도 없이 근대의 강력한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버렸다. 그리하여 식민지인의 자각마저 상실한 일부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질탕하게 놀아나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1933년 '조선일보' 만평 <이꼴저꼴>의 한 대목.

"요사히 보히는 게 지랄밧게 업지만 자동차 '드라이브'가 대유행이다. 탕남탕녀가 발광하다 못해 남산으로 룡산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러브씬-'을 연출하는 것은 제딴에는 흥겨웁겟지만 자동차 운전수의 '핸들' 쥔 손이 엇지하야 부르 떨리는 것을 아럿는지." (142쪽)

제2부: '변화의 소용돌이 조선팔도'를 찾아서

해방과 분단 60년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그와 함께 조국의 북쪽에 대한 기억이나 관심도 점점 빛바래 간다. '공통의 기억'을 매개로 존재하는 민족개념은 더 이상 남과 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장엄하고 웅장한 백두산 천지에 경외심을 느끼지만, 그 너머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삶과 죽음에는 얼마나 둔감한가!

서책 <한국 근대사의 풍경>은 이런 점에서 읽는 사람들의 영혼을 깊숙하게 푹 찌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는 이제는 고인이 된 사운 이종학 선생이 남긴 수많은 흑백 사진들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남루하고 또 너무도 구차하여 눈물이 쏟아져 나올 듯한 지난날의 풍광과 인물과 이야기들이 서책의 사진 속에 빼곡하게 실려 있는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그리고 황해도와 관련한 여러 자료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이름마저 낯선 나남, 성진, 웅기, 경성(鏡城), 회령, 무산, 부령, 길주, 신포, 영흥, 북청, 용암포, 강계, 혜산진, 신갈파진, 진남포, 신천, 개천, 안주, 정주, 희천, 사리원, 박천, 연백, 연평도 등을 담은 사진자료들이 우리의 눈길을 붙든다.

여기에 더하여 관부연락선에 대한 부분이 나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식민지시대 부산의 도시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시모노세키와 부산 사이를 오가던 관부연락선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여객보다 화물운송에 주력한 관부연락선은 일본의 경제문화권이 한반도로 뻗어나가는 촉수역할을 하였다. 동경 역에서 차표를 사면 관부연락선으로 서울과 만주의 안동은 물론이고 유럽까지 갈 수 있었다." (285쪽)

60년 전에 반도를 유럽과 연결하였던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관한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의 허리가 잘림으로써 반도가 아니라, 섬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그곳을 다시 유라시아 전체와 연결하려는 '6·15 남북선언'은 얼마나 장쾌하였는가! 잃어버린 대륙을 향한 장대한 꿈의 실현은 우리의 상상력에 싱싱한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부산에서 출발하여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 도착한다. 거기서 중국의 여러 도시들을 지나 바이칼에 면한 이르쿠츠크를 거쳐 예카테린부르크를 지나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하여 바르샤바와 베를린, 파리를 거쳐 도버해협을 지나 런던을 타 넘고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까지 가는 것이다. 장장 1만km가 넘는 대장정이다.

글을 맺으면서

언젠가 프리드리히 쉴러는 "현재는 쏜살같이 날아가고,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고 썼다. 기독교 신자였던 도이칠란트의 작가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서술하였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해를 촉발하였으며, 그 결과 종말론과 결부된 직선적인 시간관은 이제 수정되고 있다.

과거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안에서 맹렬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엄정한 의미에서 현재라고 규정할 수 없는 '현재'는 미래와 충돌하면서 쉬지 않고 과거로 달린다. 우리가 유쾌하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거기서 추출해야 할 풍부한 자양분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로 점철된 인간과 사회사 전부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과거사를 어찌 방기하겠는가.

서책 <한국 근대사의 풍경>은 우리 조상들의 일그러진 지나간 날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낮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우리도 그들처럼 실패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 아름답고 풍요로운 미래를 남길 것인지. 그리하여 이제는 너무도 오랜 세월 남처럼 살아온 남과 북 거주자들의 공통분모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조용하게 묻고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한국 근대사의 풍경>, 노형석 지음, 이종학 사진과 자료제공, 생각의 나무, 2005.


한국 근대사의 풍경

노형석 지음, 생각의나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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