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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미국으로부터 날아온 혼혈인 '하인즈 워드'의 눈물겨운 성공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 환희를 맛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4월 초 바로 그 '하인즈 워드'가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한국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언론들이 잽싸게 달려들어 '황우석 신드롬의 몰락'으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우리사회에 새로운 '하인즈 워드 신드롬'을 선물했습니다.

정치꾼들은 정치꾼대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사회에서 성공신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세태에 부응하기 위하여 '하인즈 워즈'와 함께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보려고 안달했습니다. 그리고 장사꾼들도 장사꾼들대로 '하인즈 워드'의 성공신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하인즈 워드'는 몇몇 일정을 취소하는 등 한국 언론들의 극성스러운 선정성과 상업성에 마땅치 않은 심사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인즈 워드 신드롬' 덕분에 우리사회에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레 고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톺아보면 볼수록 혼혈인에 대한 우리사회 기억은 편견과 멸시와 천대로 점철된 부끄러운 모습만 떠오를 뿐입니다.

더 나아가 현재처럼 미국 땅에서 가장 상업화되고 돈이 되는 스포츠의 스타로 성공한 '하인즈 워드 신화'를 통해서 혼혈인과 인종차별 문제가 제기되는 것 자체가 우리사회의 또 다른 병리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사회에서의 맹목적인 힘의 숭배, 물질 숭배의 천박성입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병리현상은 한편으로는 '하인즈 워드'의 성공신화에 열광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으로 대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혼혈인이나 코시안들을 백안시하는 이중성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인즈 워드 신드롬'에 의해 고조된 우리사회의 혼혈인에 대한 관심도 벌써 한낱 지나가는 봄바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아닙니다.

▲ 대전이주민지원센터 활동가들의 활동점검 모습
ⓒ 김철호
그렇더라도 다행스럽고 분명한 것은 '하인즈 워드'의 성공신화가 우리사회의 혼혈인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뿌리 깊은 우리의 순혈주의와 인종차별인습을 타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1994년 창립되어 대전 및 충청지역의 외국인노동자의 권익보호와 문화 복지 향상을 위하여 일해 온 '대전외국인노동자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2006년 봄 새롭게 '대전이주민지원센터' 열었습니다.

대전이주민지원센터는 국제결혼가정을 찾아가 그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전달하는 천사이자 절친한 이웃입니다. 단순한 도우미차원을 넘어서 국제결혼가정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고 그들과 함께 행복과 희망이 넘치는 참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 농어촌 총각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신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농어촌 총각들 중 4명당 한명 꼴로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듯 모 일간지 사회면에는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여성의 국제결혼실태를 보도하면서 "한국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주오"라는 제목의 사진이 붙은 상품광고와도 같은 기사를 내걸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결혼한 국제결혼 부부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코시안'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코리안'과 '아시안'의 합성어입니다. 이 코시안들이 늘어나면서 2005년 10월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국제결혼가정 자녀들의 초·중·고생 취학숫자가 6121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또 2005년 7월 전남도 통계에 의하면 2500여명에 이르는 코시안들이 지역 초등학교에 취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코시안들이 취학을 통하여 한국인으로써의 사회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우리말 문장을 제대로 이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말 구사능력이 유아원아동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농어촌 가정에서는 아빠들보다 엄마가 아기를 키우는 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대부분의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아이가 한국인이고 자신은 한국말을 못하니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자포자기 상태에서 아이에게 젖이나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남편들과 농어촌 시부모들과 가족들은 애초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지냅니다. 또 대부분 농어촌의 시부모와 가족들은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같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도리어 국제결혼 이주여성이 우리말, 우리문화 교육을 받겠다고 바깥출입을 하다보면 무언가 탈이 날 것이라고 걱정까지 합니다.

▲ 교육자료를 준비하는 대전이주민센터 활동가들
ⓒ 김철호
물론, 처음에는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관계이니 갈등조차도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점에서 일부 동남아국가는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는 글과 문화뿐만 아니라 관습과 생각마저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예를 들면, 베트남 여성은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남편을 섬기지 않습니다. 필리핀이나 태국여성들은 남편이 늦게 귀가하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왔기에 겨울철 남편이 직장을 나가는데도 문밖으로 배웅 나갈 생각도 못합니다. 어르신들에 대한 존칭도 없습니다. 일도 안하는 게으름뱅이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이미 대부부의 국제결혼가정들이 말과 문화와 생각과 관습과 세대차이로 인한 수많은 문제와 갈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제결혼 가정에서 가족구성원 상호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가정 내 바람직한 역할 분담을 이루어내지 못한 채 서로가 말 못하는 고통을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시지역이든 농어촌지역이든 일단의 국제결혼가정들은 가족구성원사이에 상호신뢰부족과 잦은 분란으로 말미암아 끝내 파탄을 이르고 맙니다.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고, 살아온 경험과 생각이 달라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은 서로가 마음을 터놓는 깊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교육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어촌 시부모들과 가족들이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을 집안에만 묶어두고 다른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는 관계로 이러한 교육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점에서 국제결혼가정 남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결혼가정 남편은 외국인 신부들이 이러한 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또한 가족구성원들 앞에서 외국인 신부를 당당하게 대접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줌으로써 당당한 가족구성원으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 대전이주민지원센터 활동가들의 활동 교육훈련 모습
ⓒ 김철호
만약 지금처럼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코시안들이 태어나면 결국 코시안들의 성장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코시안들은 다른 아이들과 생김새와 얼굴색이 다릅니다. 만약 이 아이들이 우리말이 서툴고 우리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학습능력마저도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진다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학교현장에서는 10명 중 1명의 코시안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코시안들이 언어발달장애를 겪고 있어서 같은 또래들보다 종합적인 사고력이 떨어지고 학습부진을 겪게 되면서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까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코시안'들이 우리 모두의 아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미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일부 농어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코시안들에게 관심을 갖고 전담부서를 만들어 코시안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교육부에서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을 내어놓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이주여성 센터'는 국제결혼가정을 직접방문해서 일대일 또는 부부 와 가족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어와 한국생활문화교육 ▲가족상담 및 교육을 통한 의사소통과 가정통합성의 증진 ▲자녀교육에 대한 교육과 자녀교육 지원 ▲소득증대와 취업의 지원 ▲부부 및 가족구성원 ▲지역사회와의 통합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대전이주민지원센터 활동가들의 활동 교육훈련 모습
ⓒ 김철호
대전이주여성센터는 이러한 사업을 통하여 국제결혼가정의 행복과 희망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이해와 나눔과 사랑의 연대를 통하여 우리사회에 만연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타파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대전이주여성센터는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코시안들이 이 땅의 또 다른 약자로 소외계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국제결혼이주여성들의 행복한 삶을 지원하며 지지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를 그토록 영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던 '하인즈 워드'는 사실 우리 모두가 이중적 차별과 멸시를 퍼붓던 대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혼혈인이면서도 백인계 혼혈인이 아니라 흑인계 혼혈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는 그보다 더한 삼중적 차별의 대상이 존재합니다. 바로 코시안입니다. 우리사회에서 코시안은 혼혈인 중에서도 가장 차별받는 계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사회는 '하인즈 워드'신화를 통해서 작으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혼혈인차별, 유색인종 차별, 서양인과 아시아인의 차별이라는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삼중차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자각이 우리의 집요한 순혈주의적 인종편견과 차별을 타파하고 보다 열린사회로 나가는 귀중한 계기기 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전이주민지원센터'와 같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행동과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전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하는 모임'(http://cafe.daum.net/daffl) 소식란에도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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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우리사회의 화두는 양극화와 불평등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이다. 필자는 희년빚탕감 상담활동가로서 '생명,공동체,섬김,나눔의 이야기들'을 찾아서 소개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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