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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만 나는 변절한 소주, 넌 이제 내 친구가 아니야.
물맛만 나는 변절한 소주, 넌 이제 내 친구가 아니야. ⓒ 시골아이고향
30도, 25도, 22도, 21도 이젠 20.5도! 이제 너흰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술이란 모름지기 취하라고 만든 것을 먹어도 먹어도 배만 부를 뿐 알딸딸한 기분도 없고 게다가 탁 털어 넣었을 때 느끼는 첫 느낌, 싸하면서도 기존 세상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감동마저 없다.

“캬~” 일부러 소리 내지 않아도 조건반사이듯 뒤따라오는 쾌감을 느낄 수 없으니 넌 이제 소주가 아니라 맹물과 더 가까운 그저 그런 맹탕에 지나지 않는다. ‘쐬주’도 아니다.

세상인심 이렇게 야박하게 변할 수 있는가? 술주정하는 게 아니다. 주정(酒精) 값이 올랐기로서니 이게 무슨 해괴한 장난질이냐. 소주(燒酎)는 속을 불태우며 때론 울분을 삭이고 더러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며 간혹 마음에 응어리진 울분을 달랠 그 어떤 마약보다도 훌륭한 걸작이었거늘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싱겁게 만들어놓았으니 어찌 서민들 허전한 가슴을 채울 거나.

그래 좋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 도시에서 살아 육체노동과 거리가 멀어지고 젊은 사람 입맛에 맞추려니 하는 수 없이 도수를 낮춰 잡는 것까지는 좋다. 경기가 어려워 술집 주인 매상이 오르지 않으니 한 병이라도 더 팔게 병수를 늘려 잡도록 술술 들어가게 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다만 술은 술이어야 하고 물은 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술도 아니고 물도 아닌 김빠진 맥주와 진배없고 뚜껑 열어둔 지 사나흘이나 지나 맛이 간 술에 지나지 않으니 이거 애주가를 물로 보는 한심한 처사가 아니고 무언가.

어제 보니 소주 도수가 20.1 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22도에 머물 때는 아쉬운 대로 홀짝거리는 맛이 있었거늘 먹은 뒤끝마저 깔끔하지 않으니 환장하겠다. 명주(名酒)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술에 대한 예의마저 깡그리 무시하고 있으니 난 더 이상 너흴 사랑하지 않을 테다. 오늘자로 소주, 널 사망신고 하겠다.

그나마 옛 맛을 간직하고 있는 지방 소주 제품, 지난 주에 가서 먹었더니 역시 그 맛이었다.
그나마 옛 맛을 간직하고 있는 지방 소주 제품, 지난 주에 가서 먹었더니 역시 그 맛이었다. ⓒ 시골아이고향
오늘부로 난 기존 35도 과실주용 소주와 너희를 조금 섞어 새 술 만들기에 돌입하겠다. 만약 이 사태가 지속된다면 결단코 밑술을 담가 소규모 증류(蒸溜) 시설을 설치하여 아침 이슬에 버금가는 술을 직접 제조하여 반주(飯酒)로 석잔 걸치면 그만이었다. 술집에 맡겨도 되고 달랑달랑 들고 와 며칠 뒤에 먹어도 변치 않았던 그 순수함은 어른까지 생각하게 했는데 이젠 한 병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를 않으니 이 또한 애꿎은 서민 호주머니를 날강도나 마찬가지로 백주에 털어가는 몰염치한 행위다.

담합을 하였는지 가는 곳마다 똑 같구나.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주당들에게 한번이라도 물었는지 모르겠다. '소비자는 왕'이랍시고 떠들다가 이젠 정말이지 ‘소비자는 봉’으로 여기지 않으면 단행하지 못할 조치다. 허허, 어느 날 뜬금없는 소식에 기가 찬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요, 뚱딴지같은 날벼락에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다.

어느 누구 하나 항의하는 자 없고 원상 복구하라는 소리 없으니 주신(酒神) 박카스와 백수광부(白首狂夫)의 후예로서 술맛을 논하고 못된 술에 대해 자격 없음을 반박하지 않을 손가. 소주잔 크기를 줄여 알콜중독을 막을 일이다.

마땅히 술에 대한 세상의 인심과 인식을 바꿔야 하거늘 본래 맛까지 죽여 가며 상술에 혈안이 된 업계의 처사를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술 한 병이 일곱 잔 나오게 한 것도 주당들 사이엔 한 병 더 팔기 위한 건전하지 못한 노림수와 잔꾀라는 것쯤이야 다 아는 이야기다.

하여 나는 되도록 물과 구별이 가지 않은 소주를 구태여 소주라 부르지 않을 것이며 입에 대지도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천명한다. 간이 덜 된 듯한 음식에 손이 가지 않음은 자명한 일 아닌가.

끓다가만 찌개를 내놓으면 주인을 나무라면서도 정작 술맛이 가버린 소주에 대해 입 꾹 다물고 있음은 죄악이다. 다시금 소주맛, 쐬주를 맛볼 날을 기다리며 방방곡곡 애주가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분연히 일어나 새벽쓰린 가슴위로 찬 소주를 붓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최소 22도는 유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주는 소주다워야 한다.
최소 22도는 유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주는 소주다워야 한다. ⓒ 시골아이고향
‘누구 진짜 술 좀 주소.’ 기교도 나름이지 술 가지고 제발 장난치지 마시라. 헛배만 부른 걸 어찌 술이라고 내놓는단 말인가.

빈병만 남기고 4월과 함께 껍데기는 가라.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고향☜ 바로가기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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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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