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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하고 있는 석공
작업을 하고 있는 석공 ⓒ 김현
돌조각 하나하나에 웃음이 흐르고
손마디 하나하나에 인생이 흐르고
표정 하나하나에 슬픔과 해학이 어울렁 흘러
보는 이의 마음밭에 투박한 웃음과 평온한 미소
바닷바람에 실어 보내면
가른가른한 제주의 숨결이 도란도란 뛰어논다.


그곳에 가면 제주의 얼굴들이 살아 움직인다. 돌조각 하나에 온 생애의 정열을 쏟아 부은 한 명장(장공익 명장)의 손길이 묻어난다. 40여 년 동안 까만 돌을 쪼며 제주의 모습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불교에서 보았음직한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모습들을 조각하여 세상에 선보인 한 인간의 삶이 묻어나는 곳을 찾았다. 금릉석물원. 오늘도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옆으로 누워 웃고 있는 여인
옆으로 누워 웃고 있는 여인 ⓒ 김현
언젠가 동료들과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제주도라는 섬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는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뭍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을 느끼게 해주는 제주, 역사적 아픔 속에서도 그들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 그 제주의 모습을 가장 오롯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얼까? 금릉석물원이 어쩌면 제주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현무암으로 만든 조각품들은 화강암 같은 돌로 만든 작품에 비해 정교함이 없다. 현무암은 돌 자체가 투박하고 단단해 정교하고 매끈한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 투박함이 오히려 살아있는 얼굴의 표정을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표정이 서로 대조적인 석상
표정이 서로 대조적인 석상 ⓒ 김현
살아있다는 것은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 석물원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품들의 대부분이 생동감이 있다. 그런데 그 생동감이 다양하게 표출되어 있다. 어떤 조각품은 해학적이고 익살스럽다. 어떤 작품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단순한 표정 속에 감추듯 하면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시선을 가장 끄는 것은 엄마 가슴에 안겨있는 아이들이 조각되어 있는 상이다.

생각에 잠겨있는 촌로
생각에 잠겨있는 촌로 ⓒ 김현
여러 명의 아이들이 엄마 배 위에 올라 붙어있거나 잔다.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어떤 불안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행복하고 안온해 보인다. 또 어떤 녀석은 큼직한 가슴을 만지고 있거나 젖을 먹고 있다. 엄마인 듯한 여인은 그저 흐뭇한 듯 평화롭게 미소 짓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 어떤 것이 엄마 가슴보다 따뜻하고 평안할까. 조각상을 바라보면 엄마의 가슴은 아이들에게 행복과 평안의 요람임을 알 수 있다.

물허벅을 지고 아이를 재우는 아낙
물허벅을 지고 아이를 재우는 아낙 ⓒ 김현
또 물허벅을 등에 지고 애기구덩이(요람)를 흔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나, 일을 하다말고 밭두렁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언가 상념에 잠겨있는 촌로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그러나 석물원에서 가장 해학적인 조각상은 똥을 누는 여인의 모습일 것이다.

이놈들아 고만 잠아댕겨라!!
이놈들아 고만 잠아댕겨라!! ⓒ 김현
떠억 치마를 훌쩍 내리고 볼 일을 보면서 활짝 웃는 아낙네의 모습을 보고 누가 에로티시즘을 연상하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의 조각상을 찾아봐도 여인이 똥을 누고 그 밑에서 짐승이 그것을 받아먹는 장면을 이렇게 맑으면서도 해학적이게 표현해 놓은 작품이 있을까 싶다.

웃는 표정이 무척 맑습니다.
웃는 표정이 무척 맑습니다. ⓒ 김현
ⓒ 김현
이밖에도 심술이 난 아이들이 달마와 같은 형상을 한 사람의 눈과 입을 잡아당기는 모습도 재미있다. 아이들이 무언가 해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으로 꼬집는데도 팔짱을 낀 채 끄덕도 않는다. ‘이 놈들아!’ 하고 소리 한 번 지르면 무서워 도망칠 얼굴인데도 아이들은 전혀 무서운 기색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는데 함께 왔던 엄 선생이 “머시 우스워 그리 웃어, 무섭게만 생겼구먼” 말하면서 가자고 이끈다.

무슨 고민이 있길래...
무슨 고민이 있길래... ⓒ 김현
석물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윙" 하는 기계음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기계로 돌을 자르고 다듬고 있다. 장공익 명장은 출타 중이라고 한다. 몇 번 말을 더 붙이자 작업 중이니 나중에 하자고 손짓을 한다. 그런데 관광객 중 그가 일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누군가 돌을 다듬고 있구나 하는 정도이다. 저 석공의 손 하나하나가 움직이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보고 가는 작품이 만들어질 텐데 사람들은 만드는 손보다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사진 찍는데 더 관심이 많다.

금릉석물원을 나와 맞은편을 바라보면 코발트빛의 푸른 바다가 시원스레 보인다. 야자수 틈새로 보이는 바다가 너무 맑고 깨끗해 발길을 절로 잡아끈다. 저 바다 건너 자그마한 섬 하나가 보인다. ‘비양도’라는 섬이다. ‘비양도’는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겐 산보다는 물빛깔이 너무 매력이이어서 그냥 물속으로 걸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푸른 바다의 물빛과 비양도
푸른 바다의 물빛과 비양도 ⓒ 김현
물의 유혹에 빠져 그렇게 한참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하게 부딪치는 물소리가 가슴을 시원스레 적셔준다. 쪽빛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석공은 금릉석물원에서 수많은 세월동안 돌을 쪼개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곳 바닷가에 와서 저 푸르다 못해 빛나는 물빛을 바라보며 힘을 얻고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석공의 마음을 생각하니 돌을 깨는 정 소리가 바닷바람에 들려오는 듯하다.

금릉석물원

금릉석물원은 북제주군 한림읍 금릉리에 위치한 야외 석물(石物) 공원이다. 이곳은 40여년 간 돌하르방을 제작한 장공익 명장이 현무암으로 조각한 작품들을 1만여 평에 전시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는 돌하르방 외에 해녀상, 동자상, 밭을 가는 소와 촌로의 모습, 물허벅을 지고 아이를 재우는 여인의 상과 제주의 전설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세계 여러 나라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이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선물하였던 돌하르방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곳에 가면 제주민들의 생활과 삶을 조각된 돌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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