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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8일) 아침 호주 할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소파에 앉아 계셨다. 이제는 광주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 걸까? 평상시에는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셨는데 오늘은 목소리부터 가라앉았다.

호주 할아버지가 한국에 오신 지 11일째. 오늘 떠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니 영원히 못 보는 것은 아닐까? 호주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한 우리 가족들도 아쉽기 그지없다.

▲ 4월 23일 보성 다원에서 호주 할아버지와 함께
ⓒ 김명성
집사람은 둘째딸 보고 할아버지께서 우리집에 와 계시는 동안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 즐거웠는지 등을 여쭤보라고 재촉을 했지만 딸애는 영어가 좀 서툴러서 부담이 되는가 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영어로 말씀을 드리기 전에 집사람이 묻고 싶은 뜻을 이미 다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집사람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침상을 차렸는데도 할아버지께서는 입맛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잘 드셨는데 오늘따라 빵 한 조각 먹기도 힘드신 것 같았다. 겨우 한 조각을 먹고는 그만하셨다.

▲ 어디서나 환영받은 호주 할아버지. 마음은 하나!
ⓒ 김명성
아침식사를 대충 마치고 할아버지께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할아버지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 식구들도 덩달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동안 '있는 정, 없는 정'이 다 들어 떠나신다고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호주 할아버지는 67세로 이름은 '워너'(Werner)다. 우리 가족에게는 워너란 이름보다 '호주 할아버지'로 통한다.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큰딸애 덕분이다.

지난해 여름 큰딸애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호주 애들레이드로 현장 실습을 나가서 머무른 곳이 할아버지 댁이었다. 딸이 6월초부터 6주간 머무는 동안 직장을 정년퇴임하신 호주 할아버지는 딸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셨다고 한다. 낯선 호주 땅에서 딸애가 혹시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매일 곁에 계신 것이었다.

그러다가 호주 할아버지가 "꼭 한국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셨고, 딸아이는 "한국에 오셔서 우리 집에서 편히 쉬었다 가시라"고 말씀드린 것이 계기가 돼 이번에 한국에 오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지난 17일 한국에 오셨다. 처음으로 외국인 손님을 맞는 우리 가족은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우리는 전국 축제행사 일정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할아버지와 함께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 큰 딸이 우리 조상이 살아오면서 사용한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 김명성
휴일에는 내가 모시고 다니고 평일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휴가를 내거나 큰딸아이 친구를 동원해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우리는 나름대로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드리기 위해 피곤함을 모르고 다녔다.

한국에 오신 귀한 손님이라 중형차를 빌려 모실까도 생각했지만 부담없이 편하게 모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타고 다닌 12년 넘은 소형차로 모셨다. 아마도 차 내부가 좁아 불편하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으셨다.

할아버지와 지내면서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식사법이었다. 우리 가족은 음식을 남겨 버리기 일쑤인데 할아버지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음식이 많거나 먹기가 힘들 때는 미리 접시에 먹을 만큼 덜어서 먹는 것이 생활에 배어 있으셨다.

▲ 앉는 것이 불편해도 내색하지 않고 맛있게 드셨다.
ⓒ 김명성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 할아버지가 한국에 오시기 전에는 가족 모두 여행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공부탓에, 아이들이 커서는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가족 여행을 못 떠났다. 여행은 둘째치고 가족이 함께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 계신 동안에는 가족 모두 모여 웃음꽃 피우는 것이 생활이 된 것이다.

▲ 호주 할아버지와 보낸 즐거운 한 때
ⓒ 김명성
또 한가지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있다. 할아버지는 여행 다니는 곳마다 길바닥에서 돌멩이를 발견하시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걸려 넘어 질까봐 옆으로 옮겨놓으셨다. 타인을 배려하는 할아버지의 심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서양 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우리 가족에게 할아버지는 많은 것을 알려주셨다. 짧은 기간이나마 호주 할아버지가 한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음에 만날 때까지 행복과 건강하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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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사회는 변화와 혁신을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 한다. 지방에서 주민에게 헌신과 봉사 하는 자세로 몸 담고 있으면서 주민이 알 권리를 알려야 할 의무 감을 갖고 이 곳 을 찾았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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