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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의 전경,원음각을 지나 왼편에 극락전이 보입니다.
법흥사의 전경,원음각을 지나 왼편에 극락전이 보입니다. ⓒ 문일식
봄기운을 느끼며 한참을 달린 후에야 법흥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주문을 지나 원음루 앞에 이르렀습니다. 원음루 앞에 서면 왼편으로는 극락전이 생뚱맞게 홀로 앉아 있고, 그 뒤편 멀리 사자산이 우뚝 합니다. 넓은 주차장이 생기고, 질서정연한 석축이 무게 있게 앉아있고, 내부에는 건물을 짓고, 기와를 얹느라 분주함이 느껴졌습니다.

법흥사는 오대 적멸보궁중 하나입니다. 즉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입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가사와 진신사리를 전수받아 귀국한 뒤 경남 양산 통도사, 강원 설악산 봉정암,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 법흥사를 창건한 후 이곳에 진신사리를 봉안했습니다.(단 정암사는 통도사 금강계단에 안치된 진신사리를 임진왜란때 소실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나누어 봉안한 것입니다.)

보물 612호로 지정된 징효대사 부도비.
보물 612호로 지정된 징효대사 부도비. ⓒ 문일식
원음루를 지나 왼편에는 단청이 바랜 팔작지붕의 극락전 건물이 기단 위에 단정히 앉아 있고, 뒤편 작은 언덕에는 수백 년이 넘은 밤나무와 함께 부도와 부도비가 서 있습니다. 부도는 팔각원당형과 석종형이 각 1기씩 있는데 그중 팔각원당형 부도가 징효대사의 부도입니다.

징효대사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선종의 9개파중 하나인 사자산문의 개산조입니다. 통일신라때 왕권과 밀접한 교종을 대신해 개인수양을 강조하는 선종사상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오게 되고, 이는 지방호족세력과 결합하여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전국에 9개파(가지산문, 동리산문, 실상산문, 사굴산문, 성주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민산문, 사자산문)의 본산이라 하여 구산이라고 합니다.

사자산문의 개산조로서 이곳에서 선문을 크게 떨치고, 발전시켰기에 그의 부도와 부도비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징효대사 부도비는 보물 612호로, 부도는 강원 유형문화재 7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적멸보궁 가는 길.
적멸보궁 가는 길. ⓒ 문일식
원음각을 등지고 우람한 전나무 사잇길로 들어서면 선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 전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마득히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습니다. 이 길을 들어서면 신선한 느낌이 절로 들면서 기분도 좋아집니다. 알 수 없는 새소리도 청량하게 들려오고,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다람쥐의 사뿐거리는 모습도 가벼워보입니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산길가기 전에 있는 약수터. 부처님만 좋은물 마시나??
적멸보궁으로 가는 산길가기 전에 있는 약수터. 부처님만 좋은물 마시나?? ⓒ 문일식
길의 끝자락에는 약수터가 있습니다. 쉬엄쉬엄 오른 오르막길이지만,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잠시 목을 축이고 쉬어 가는 곳입니다. 이곳 약수터에는 특이한 글귀가 붙어있습니다. '맨 위의 물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물이니 일반인은 먹지 말라'신성시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고 하니 살짝 부아가 났습니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은 산길입니다. 몇 분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흙을 밟는 느낌이 좋습니다. 산속 여기저기에 핀 꽃들과 새순을 틔운 나무들을 보시며 어머니가 즐거워 하셨습니다. 매번 여행을 다니지만, 정녕 부모님을 모시고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즐거워하시고, 놀라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죄스런 마음이 잔뜩 들었습니다.

연화봉입니다. 마치 사자가 앉아 있는 듯한 산세입니다.
연화봉입니다. 마치 사자가 앉아 있는 듯한 산세입니다. ⓒ 문일식
적멸보궁에 올라서니 사자산의 듬직한 모습이 한껏 들어왔습니다. 사자산의 모습은 이름 그대로 사자였습니다. 사자가 긴장감을 감추고 느긋하게 앉아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적멸보궁을 지키고 계시는 한 보살님이 나오더니 법흥사와 적멸보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법흥사 적멸보궁의 전경.
법흥사 적멸보궁의 전경. ⓒ 문일식
어느 적멸보궁 전각에도 불상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굳이 불상을 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멸보궁 전각의 뒷벽은 진신사리가 안치된 사자산과 그 앞의 봉분이 훤히 보이도록 유리창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진신사리를 어느쯤에 봉안했는지를 물었는데, 아마도 영구보전을 위해 꼭꼭 숨겨두었고, 아마도 사자의 앞머리에 해당하는 어디쯤으로 짐작하고 계셨습니다.

적멸보궁 뒷편에 있는 부도의 몸돌에 새겨진 문양
적멸보궁 뒷편에 있는 부도의 몸돌에 새겨진 문양 ⓒ 문일식
적멸보궁 뒤편 봉분주변에는 부도한 기와 토굴, 석재조각 등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부도는 극락전 옆에 있는 징효대사 부도보다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팔각의 몸돌에는 두개의 문비와 함께 남은 6면에는 인왕상 2구와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이 부도는 강원 유형문화재 7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부도 옆 토굴은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진신사리를 봉안을 했으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해 토굴을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도 옆에 있는 석재 조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할 때 담아온 석함의 조각이라고 합니다.

연등접수를 위해 쓰고 계신 아버지. '좋은인연'만나라는 글도 남기셨습니다.
연등접수를 위해 쓰고 계신 아버지. '좋은인연'만나라는 글도 남기셨습니다. ⓒ 문일식
부모님은 적멸보궁을 둘러본 뒤 다가오는 석가탄신일도 있고해서 연등을 하나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소와 이름이 적힌 종이와 함께 연등에 붙이고, 수천 개의 연등중 하나가 되어 적멸보궁을 환히 비출 겁니다. 가족이름을 쭉 쓰시다가 내 이름 아래에는 '좋은 인연'이란 글을 특별히 쓰셨습니다. 올해는 장가를 가라는 아버지의 바램이신 모양입니다.

법흥사를 왔으면 요선정을 두고 그냥 가면 서운할 겁니다. 주천강이 휘감아 도는 절벽 위에 요선정이라는 정자와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으로 명명된 부처님이 한 분 계신 곳입니다.

이곳에 오게 되면 왜 정자가 서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마애여래좌상 뒤편으로는 아득한 절벽이고, 절벽 아래로 수놓아진 아름다운 풍광이 너무나도 아름다운지라 예로부터 이곳을 찾은 선비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요선정 내부에는 조선 숙종의 어제시도 걸려있다고 하니 그 빼어난 경관의 소문은 멀리 한양까지도 퍼졌던 모양입니다.

마애여래좌상 뒷편에서 바라본 풍경
마애여래좌상 뒷편에서 바라본 풍경 ⓒ 문일식
마애여래입상은 하나의 큰 돌덩이를 깎아서 만들었고, 입상의 머리 위에는 넓은 판석을 비스듬하게 올려 마치 갓을 씌워놓은 것 같습니다. 바위는 전체적으로 예쁜 물방울을 닮았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물방울 안에서 튀어나오는 듯해 보였습니다.

요선정에 있는 마애여래입상
요선정에 있는 마애여래입상 ⓒ 문일식
마애여래좌상 뒤편으로 조심스레 나아가면 절벽의 틈으로 멋지게 자란 소나무와 함께 아래의 까마득한 풍경이 한껏 조화를 이룹니다. 소나무의 모습은 마치 팔을 크게 벌리고 아래를 향해 몸을 던지는 듯 하거나 아니면 미소를 머금고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나무와 똑같은 자세로 아래를 굽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용기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녔더니 배가 고프신 모양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황둔에 가서 송어회를 먹기로 하고, 주천강의 맑은 물가를 따라 차를 몰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방법 : 
신림IC→88번 지방도 →주천교 직전 좌회전 무릉리 진입(법흥사 표지판 있음)→1번군도(법흥사 표지판 따라 갈 수 있습니다)
※ 법흥사 가는길에 요선정이 있지만, 잘 찾아가야 합니다.(법흥사 가다가 수주섬모텔끼고 좌회전 후(20M) 미륵암으로 다시 좌회전(300M정도), 미륵암에 잠시 주차 후 표지판 따라 이동해야합니다)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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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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