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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장안산. 산기슭엔 아직 흰 눈이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고,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월의 장안산. 산기슭엔 아직 흰 눈이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고,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서종규
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산기슭엔 아직 흰 눈이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고,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어오르던 진달래 꽃망울이 꽃샘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피기도 전에 고스러져 버렸고, 이른봄 온 산을 노랗게 물들이던 생강나무꽃도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있다.

남녘의 4월 하순 봄이라면 생강나무꽃이나 진달래꽃은 이미 지고, 벚꽃도 져서 새 잎이 나기 시작하며, 철쭉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때이다. 지난 3월 11일에 남해 사량도의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꽃의 기사를 올린 적이 있다. 남녘은 봄꽃들의 시절이 지나 나뭇잎들이 솟아나는 녹음의 계절이 된 것이다.

피어오르던 진달래 꽃망울이 꽃샘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피기도 전에 고스러져 버렸다.
피어오르던 진달래 꽃망울이 꽃샘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피기도 전에 고스러져 버렸다. ⓒ 서종규
그런데 전북 장수군에는 이제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언덕엔 개나리들이 노랗게 피어 있고, 조팝나무꽃도 이제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장안산 입구로 오르는 길에 심어진 벚꽃은 흐드러지게 하얀 꽃잎들이 가지가지에 가득했다. 바쁜 일상 중에 벚꽃의 아름다움을 놓쳐버린 동료의 입에서 환호가 울렸다.

전라북도 장수군은 계절이 늦된 곳인가 보다. 약 한 달 정도는 늦게 진행되고 있다. 전세버스가 전북 장수에 접어들었을 때, 써레질을 마치고 물이 가두어져 있는 논도 있었다. 벌써 모내기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추운 지역이어서 겨울이 오래 가고, 봄은 늦지만 가을 냉해를 생각하여 벼내기를 빨리 하는 곳인가 보다.

산을 좋아하는 '풀꽃카페 토요산행팀' 60명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이어지는 전북 장수군 장안산을 찾았다.
산을 좋아하는 '풀꽃카페 토요산행팀' 60명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이어지는 전북 장수군 장안산을 찾았다. ⓒ 서종규
지난 22일 오전 9시, 산을 좋아하는 '풀꽃카페 토요산행팀' 60명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이어지는 전북 장수군 장안산을 찾아 광주에서 출발했다. 아침에 빗방울이 거세게 몰아쳤다. 모두 심난한 얼굴로 말없이 전세버스의 윈도브러시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안산(1237m)은 일명 영취산이라고도 한다. 뻗어 내린 백두대간의 줄기인 지리산에서 호남정맥으로 연결되는 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연결되는 산이라 하여 반드시 찾는 산이다.

호남정맥은 이곳 장안산(영취산)에서 출발하여 진안 마이산(686m), 정읍 내장산(763m), 담양 추월산, 광주 무등산(1187m), 승주 조계산(884m), 그리고 호남정맥이 끝나는 광양 백운산(1218m)으로 이어지는 정맥으로 섬진강과 금강, 만경강, 영산강, 동진강, 탐진강과 만나는 호남의 줄기이다.

길가에 죽 늘어져 있는 제비꽃은 활기찼다. 특히 흰제비꽃이 많다. 그 흰제비꽃들 사이에 남산제비꽃도 하얗게 피어있다.
길가에 죽 늘어져 있는 제비꽃은 활기찼다. 특히 흰제비꽃이 많다. 그 흰제비꽃들 사이에 남산제비꽃도 하얗게 피어있다. ⓒ 서종규
오전 11시, 장안산을 등반할 수 있는 덕산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모두 비옷을 꺼내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덕산계곡 입구엔 커다란 댐이 건설되었다. 덕산분교 입구 밀목재에서 출발하였다. 이 밀목재가 바로 호남정맥의 길이다. 등산입구에는 자세한 안내판은 없고, 수많은 꼬리표만 붙어 있었다.

장안산은 이제야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멈추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봄의 입구에서 머물고 있다니, 남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온 느낌이다. 바닥에는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만 가득하고, 나무들은 벌거벗은 겨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한참 올라 도착한 이름 모를 봉우리에서 바라보니 장안산 정상은 건너편의 또 다른 봉우리였다.

처음 거세게 내리던 빗방울은 약해져 비옷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산길에 군데군데 하얀 눈이 남아 있다. 엊그제 강원도 지방에 많은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곳 장안산에도 이렇게 많은 눈이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장안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너머로 덕유산이 서 있다.
장안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너머로 덕유산이 서 있다. ⓒ 서종규
꽃샘추위에 진달래만 애꿎게 시달렸다. 진달래는 갓 피어나려고 꽃망울을 맺고 있었는데, 그 꽃망울들이 모두 고스러져 있다. 안타까웠다. 채 피어나지도 않은 진달래가 고스러져 있는 모습에서 모두 꽃샘추위의 위력을 실감해야만 했다. 봄은 그렇게 멈추어 있다.

그렇지만 길가에 죽 늘어져 있는 제비꽃은 활기찼다. 특히 흰제비꽃이 인상적이었다. 그 흰제비꽃들 사이에 남산제비꽃도 하얗게 피어있다. 추위도 아랑곳없이 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보랏빛 제비꽃들도 눈에 띄었지만 등산길 내니 눈에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모두 흰꽃들이다.

흰꽃 중에서도 가장 앙증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별꽃이다. 들꽃박사로 통하는 김애영 선생의 말에 의하면 개별꽃이란다. 별꽃이 모두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다른 이름이 있는 것이다. 앙증맞게 작은 하얀 꽃잎 여섯 개에 각각 두 개의 밤색 꽃술이 달려 있다. 수많은 하늘의 별들이 이 장안산에 내려왔나 보다.

정상부근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잔설이 인상적이었다.
정상부근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잔설이 인상적이었다. ⓒ 서종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생강나무꽃은 아직 꽃망울만 흔들어 대고 있다. 꽃이 피려다가 다시 들어가 버렸나 보다. 다행히 꽃샘추위의 화는 당하지 않은 것 같다. 남녘에서 일찍이 보았던 현호색도 이제야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른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겨우살이만 뚜렷하게 녹색을 띄고 있다.

오후 1시 덕천에 다다르기 전, 길가에 흩어진 낙엽들 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처음 등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되돌아갔다. 아니 처음부터 점심 먹는 곳까지만 등산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이다.

호남의 종산이라고 쓰여진 장안산 정상의 표지 석에 비하여 안내 표지는 너무 부족하였다. 다른 산들에 비하여 안내표지가 거의 없어서 당황하였다. 다행인 것은 여러 갈래의 길로 나뉘는 갈림길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단지 등산객들이 붙여 놓은 꼬리표만 길을 안내하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 지리산 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멀리 지리산 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 서종규
겨울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장안산이었지만 흙길은 우리에게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많은 산들이 모두 바위와 돌이 어우러진 산길이다. 그런데 장안산의 15㎞ 등산로는 모두 흙길이다. 등산을 하면서 흙을 밟는 촉감은 부드러운 어머니의 품속 같다. 그만큼 흙길은 등산객들에겐 큰 기쁨이요, 산을 사랑하게 만드는 유혹인 것이다.

발길마다 포근포근한 느낌이 든다. 발이 한 치나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스펀지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지난 가을에 땅에 내렸던 낙엽까지 밟고 가는 느낌이 너무 좋다. 먼 길을 걷는 발이었지만 그 피곤함이 거의 없다.

남아 있는 눈이 너무 아쉬워 조심스럽게 밟아 본다.
남아 있는 눈이 너무 아쉬워 조심스럽게 밟아 본다. ⓒ 서종규
오후 3시 30분, 부드러운 흙길의 능선을 타고 장안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엔 장안산을 알리는 표지석이 우뚝 솟아 있다. 멀리 지리산 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북쪽으로 덕유산 능선도 눈에 들어왔다. 하늘의 구름들도 서서히 엷어지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바라보이는 산맥들과 넓은 땅들이 마음으로 들어 왔다.

정상부근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잔설들이 인상적이었다. 남아 있는 눈이 너무 아쉬워 조심스럽게 밟아 보기도 한다. 우리는 중봉, 하봉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치재를 지나 법연으로 내려가는 길도 포근한 흙길이어서 부담감이 적었다. 길가에 늘어 선 하얀 제비꽃과 별꽃들이 아쉬워한다.

개별꽃. 앙증맞게 작은 하얀 꽃잎 여섯 개에 각각 두 개의 밤색 꽃술이 달려 있다.
개별꽃. 앙증맞게 작은 하얀 꽃잎 여섯 개에 각각 두 개의 밤색 꽃술이 달려 있다. ⓒ 서종규
오후 5시, 장안산 등반의 종착지인 법연 마을에 도착했다. 법연마을에서 우리는 장안산 등산을 거꾸로 한 것을 알았다. 법연마을은 하얗게 목련이 피어나고 있었다. 남녘엔 흰 목련은 이미 다 지고, 자목련마저 지려고 하는 판인데 말이다. 마을에서 바라본 장안산 뒤 하늘이 너무 파랗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토종꿀이라고 세 병을 가지고 오셨다. 김애영 선생이 세 병을 다 샀다. 매우 귀한 토종꿀이라며 아까워하시던 할머니는 고운 여선생님께 만원을 깎아준다 하시며 얼굴에 하얀 미소를 띄우신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서 바라본 하늘이 참 파랗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서 바라본 하늘이 참 파랗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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