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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팝콘이 열린 것 같은 백목련
마치 팝콘이 열린 것 같은 백목련 ⓒ 정명화
늘 목련이 좀더 오래 피어 그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언제나 목련은 아쉬울 만큼 빨리 꽃잎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봄이구나 하기가 무섭게 빨리 사라져버리는 봄의 모습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봄은 모든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건조한 들판은 파릇파릇 새싹들로 푸른빛을 찾아가고 간간히 몸집이 작은 보라색 꽃, 제비꽃의 얼굴도 볼 수 있게 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마저 녹이는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1월에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많지만 학교의 개강도 그렇거니와 긴 겨울에 종지부를 찍는 봄이 진정한 새해의 시작이 아닐까.

실제로 보면 너무 작은 제비꽃
실제로 보면 너무 작은 제비꽃 ⓒ 정명화
봄이 되면 '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흔히 봄을 타는 것으로 대표되는 증상들은 다양했다. 입맛이 없어진다거나 졸음이 몰려오는 것, 알 수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거나 뭐 그런 증상들 말이다. 나는 입맛이나 졸음보다도 기분이 들쭉날쭉한 게 제일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풍부한 감정은 봄에 절정을 이루어 슬픈 노래 한 구절에도 닭똥 같은 눈물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한 방울씩 샘솟았고, 그럴 때마다 심장은 더욱 펌프질에 박차를 가하곤 했다. 봄은 내게 일종의 마약 같다. 중독되어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마약.

몇 해 전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았을 때도 봄이었다. 아직 차가운 공기가 데워지지 않은 3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던 노래도 생각나고, 상우가 은수를 잊지 못하고 비 오는 어느 날 자신의 방에서 목놓아 불렀던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하고 / 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 이라는 제목 모를 노래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도 물밀듯 떠오른다. 영화를 본 이후 봄이면 언제나 그랬다.

밤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벚꽃
밤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벚꽃 ⓒ 정명화
어쩌면 봄을 좋아해서 가당치도 않은 의미 부여를 많이도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여름이 되면 곧 봄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면서 어김없이 겨울이 되면 봄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사람은 간사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나 보다.

휴일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야심한 밤 벌써 잠자리에 들어야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아 난감하다. 영화를 한 편 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생각만 하고 말았다. 봄을 탄다는 말을 몸으로 느끼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이 봄을 더 즐기고 싶어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지구가 좀 천천히 돌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는 것인지 잠이 오지 않아서 이런 저런 생각에 젖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제 속도로 흐르는데 내 생각에 따라 그 시간은 늘어졌다 빨라졌다 하기를 반복한다.

생각 많은 계절, 봄은 언제나 짧다. 생명의 끝이 예정된 화병의 꽃처럼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른다. 봄이 가기 전에 소풍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짐만 꾸리다 또 봄이 저만치 달아나 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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