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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으로 가는 도중 특이한 비각을 발견했습니다.
곡성으로 가는 도중 특이한 비각을 발견했습니다. ⓒ 문일식
"어…, 잠깐만 저 건물 좀 봐. 작은 건물치고는 무척 특이한데…."
"어디 어디?"

일련의 호기심은 졸린 일행의 잠을 깨우고, 차는 다시 돌아 그 건물 앞에 이르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범상치 않은 문이 하나 있고, 문 사방엔 아담한 담이 둘러쳐 있습니다. 담 안에는 비를 보호하는 비각이 서 있는데 공포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단청은 죄다 벗겨져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희미한 채색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꽤나 오래전에 지어진 것 같았습니다.

비각에 물고기도 있습니다.
비각에 물고기도 있습니다. ⓒ 문일식
담장 너머 비각의 나무 살 사이로 비치는 비석에 '효행'이라는 글씨가 있는 걸로 봐서 효행비나 효자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지어졌거나 연륜이 있는 비석이라면 문화재로 지정돼 설명이라도 붙어있을 텐데 어디에도 안내문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석과 비각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 일행은 궁금증을 풀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마을 사시는 분들을 찾아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계족산.. 일명 닭발산의 전경...
계족산.. 일명 닭발산의 전경... ⓒ 문일식
비각과 비석이 자리 잡은 마을은 중평마을. 전남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중평마을에는 너무나도 우뚝 솟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계족산입니다. 한자를 풀어보면 닭 계(鷄),발 족(足), 즉 닭발산입니다. 재미있는 지명을 가진 산인데, 산의 모습 때문에 이런 지명이 붙었다 합니다.

산봉우리 하나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면 그 형세가 마치 닭발을 그려놓은 듯합니다. 계족산 뒤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시야를 모두 가렸지만, 언뜻 보아도 쉽게 닭발이 연상됩니다. 산 정상부엔 깎아지른 듯한 수직절벽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다하여 병풍바위로 불린답니다.

중평마을의 표지석과 예전 물레방아로 쓰였던 석물의 흔적
중평마을의 표지석과 예전 물레방아로 쓰였던 석물의 흔적 ⓒ 문일식
도로 가까이 세워진 마을 표지석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중평'이란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뒤편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마냥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와 그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에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일렁이고, 나무 아래에 서니 바람소리만으로도 상쾌함과 시원함이 가득합니다. 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잎이 울창해지는 오뉴월 늦은 오후라면 더없이 시원하고 좋았을 텐데….

중평마을의 정경 1
중평마을의 정경 1 ⓒ 문일식
마을 입구에 조그만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고, 슈퍼마켓 옆에 마을이 보였습니다. 산수유마을에서 보았던, 돌담을 두른 민가의 풍경이 그 때 기억만큼이나 차분하게 다가왔습니다. 시멘트 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옛 모습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빨래터의 흔적도 남아있었는데,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고 시원했습니다. 힘 좋은 아낙네가 빨래방망이로 빨래를 하는 빨래터 풍경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중평마을의 정경 2
중평마을의 정경 2 ⓒ 문일식
마을 돌담길은 적당한 곡선과 보일 듯 말 듯한 높낮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감이 넘치는 돌담길 안쪽으로 봄을 알리는 많은 꽃들이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가운데 낯선 이방인이 찾아든 중평마을 이곳저곳에서는 인기척을 느낀 듯, 긴장감 넘치며 날카로운 개 짖는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앞서가던 일행이 중평마을의 한 어르신 한 분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조용한 마을에 찾아든 낯선 이방인들을 별 거부감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비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올해 연세가 82세이신 그 어른은 환갑에 이른 아드님이 세 분이나 계신다고 했습니다. 모두 외지에 계시고 연로하신 어르신 내외만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가옥의 처마에 지어진 제비집... 작년의 제비가 다시 찾아올는지...
가옥의 처마에 지어진 제비집... 작년의 제비가 다시 찾아올는지... ⓒ 문일식
어르신은 우리 일행을 집 마당으로 들이시고 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제비집이었습니다. 지난해에도 제비가 찾아와 새끼를 치고 한해를 났다고 합니다. 올해도 다시 찾아올 거라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순수해 보였습니다. 그런 마음이라도 반영하듯 제비집 밑둥이 떨어지지 않게 각목을 덧대어 놓으신 모양입니다.

어렸을 적만 해도 서울에서도 흔치않게 본 조류였는데, 서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이제 시골에서도 그 흔적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습니다. 변화와 발전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잊혀져 가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효행비각의 우람한 공포
효행비각의 우람한 공포 ⓒ 문일식
어르신을 따라 비각 앞에 이른 뒤, 비석에 관한 내력을 들었습니다. 어르신이 설명해주시는 비석의 내력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어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20여년전 이곳 청주 한씨 문중에서 만석꾼이 생겼고, 그 후 1920년대에 세워진 비각이라고 했습니다. 어르신도 왜 효행비인지는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이제 80여년밖에 되지 않은 비각이 왜 그렇게 고풍스럽게 보였는지 우리의 눈썰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을 타고 피리를 부는 비천상
학을 타고 피리를 부는 비천상 ⓒ 문일식
어쨌거나 일제시대 이후였기 때문에 가능한 건축물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저한 신분과 계급이 있고, 유교가 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서 돈만으로 그런 비석을 세울 순 없었을 테니까요. 비각과 비석의 내력에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국가에서 지정하는 문화재가 될지도….

비각의 정문에 새겨진 귀면상...
비각의 정문에 새겨진 귀면상... ⓒ 문일식
비각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 새겨진 귀면상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석과 비각이야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더라도 중평마을의 정감어린 풍경과 여든을 훌쩍 넘기신, 너무나도 정정하셨던 어르신과의 만남은 비석의 내력을 덮고도 남았습니다. 계족산 뒤편으로 떨어지는 태양의 마지막 기운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오후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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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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