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책 겉그림
ⓒ yes24
"니체는 피로 쓴 글만이 글다운 글이라고 했다. 이 시대에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것이 아직까지 나에게는 외침이고 투쟁이다."(여는 글)

이는 <박정희와 친일파의 유령들>(삼인·2006)이란 책에서 한상범 님이 밝힌 글이다. 그는 2004년까지만 해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며 앞장 서서 독재시대 인권 유린의 망령들과 싸워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법조계 안팎에서 이미 '반골'로 이력이 나 있는지라, 평생 정의를 향한 외길을 달려 왔기 때문이다.

그는 1964년 군사독재 시절에는 한일협정을 반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도 반대했으며, 1972년 유신 반대 운동에도 참가한 바 있다. 그만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한 몸을 던지며 살아온 것이다. 그만큼 글 쓰기와 행동, 그 양쪽 진영에서 활발한 현실 참여를 해 온 실천적인 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바가 무엇인가?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우리사회를 유령처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말끔하게 청산됐어야 할 친일파들이 발빠르게 친미파와 숭미파로 거듭나 살아 있고, 그 유령들이 이제는 일본 극우 세력과 야합하여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개혁에 대해 '친북'이니 '용공'이니, '좌경'이니 '빨갱이'니 하며 몰아붙이는 공세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국보법이 폐기되면 빨갱이 나라가 될 것이라고 '안보 위기설'을 들먹이고, '빨갱이 교수'가 나라를 망친다며 선량한 학자의 학설까지 단죄하고 있으며, 사학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는 사학법 개정이 좌익 전교조 장악의 음모라는 허위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소리들이다.

"박정희는 일본제국의 괴뢰국 만군장교였다가, 1945년 일제 패전 이후 국방경비대 시절에 180도 전환, 남조선노동당 군사부장으로 밀령을 받고 국방경비대에 침투하여 공작을 하던 중 1948년 그 사실이 드러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 후 군에서 불명예 제대를 했고, 귝군 정보실 문관으로 무급 근무를 하게 된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복귀, 장군까지 돼서 1961년에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 자리까지 올라갔다."(78쪽)


이상이 쿠데타 주범의 간략한 경력이다. 박정희가 살아 온 삶을 단 몇 줄로 짧게 줄여서 한 말이다. 다른 어떤 군더더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될 그야말로 확실한 설명서이다. 일제시대 친일파로서 일본 군인에 몸을 담아 일했고, 해방 후에는 공산당에 들어가 활동했고, 그리고 출세를 위해 군사 반란까지 일으켰으니 다른 설명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기회주의자란 말 이외에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그가 그랬으니 그의 추종자들은 두 말해 무엇하겠는가. '친일파 유령들'은 어떻게든 박정희를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박정희의 공적과 치적을 치켜세우는데 모든 힘을 동원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박정희가 경제발전의 영웅이 되지 않으면 안되게끔, 기필코 박정희 신화를 정당화시키려고 온갖 꾀를 짜 내지 않겠는가. 그래야 자신들의 가치도 그만큼 올라갈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의 영웅으로 둔갑된 것은 문민정부 시절의 경제 파산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그 파탄마저도 박정희 식 개발독재의 정경유착에서 터져 나온 산물임을, 더군다나 박정희의 개발독재 드라이브는 이미 장면 정부 때 제시된 청사진이었음을.

다만 박정희는 그것을 표절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경제 기적이 박정희 개인의 이니셔티브가 아니라 노동자의 피땀 어린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모두들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를 따르는 친일파 유령들은 쿠데타가 없었더라면 이 민족은 이미 망했을 것이라고 날뛰고 있다. 그만큼 과거 독재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무리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자신들이 처한 입장이 불리해져 온갖 궤변으로 과거를 정당화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지금 미국에 붙었다, 일본 극우 세력에 붙었다, 그야말로 박정희 식 기회주의를 그대로 답습하여 과거청산이나 개혁에 대해서는 '친북'이니 '용공'이니,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것 아니겠는가.

"일본 극우의 빨갱이 몰이는 친일파를 한·미·일 동맹의 자유민주 보수세력으로 미화시키고, 개혁은 친북, 용공, 좌경, 빨갱이라고 하는 식의 각본을 짜 놓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자칭 우익 보수주의는 그들과 손을 잡고 역습을 하려고 한다. 아니 그 역공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들의 마지막 무기가 동원된 것이다."(215쪽)

유령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저 그럴 듯한 행세를 하고 기승을 부리며 날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실물이 아닌 그 유령에 혼비백산하여 자빠질 때가 많다. 속이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에 그렇다. 정신만 온전하다면 유령에 흔들릴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사회가 박정희와 그 친일파 유령들에 혼이 쏙 빠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앞으로도 몇 백년은 더 똑같은 유령들에 혼줄이 나지 않겠는가. 한국사회는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히려 그 유령들이 혼비백산하여 물러가도록 사람 개개인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정신만 온전하다면 어떤 유령 앞에서도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속만 꽉 차 있다면 허깨비 같은 그 유령들 앞에서도 굳게 맞설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들이 설령 '친북'이니 '용공'이니, '빨갱이'로 몰아친다 할지라도 온전한 정신 속에서 이루는 개혁이요 과거청산이라면 그 유령들은 머지않아 이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진정 어린 정신 속에서 이루는 개혁과 과거청산 앞에 허깨비 같은 유령들이 어찌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박정희와 친일파의 유령들

한상범 지음, 삼인(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