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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일 6년 만에 컴백

지난 토요일 정말로 우연치 않게 TV채널을 돌리다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가수 윤수일(52)이 나온 것이다. 옛날보다 다소 살이 쪘지만 한마디로 "여전했고, 너무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TV 쇼프로를 1시간 동안 변함없이 지켜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윤수일의 표현으로는 '6년 만의 컴백'이라고 한다.

윤수일은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는 노래로 77년에 데뷔했다. 당시 대마초사건으로, 이른바 이름 있다는 가수들이 대부분 TV에서 사라진 틈을 타 최헌, 최병걸, 이은하, 혜은이 등과 함께 가요계에 바람을 몰고온 스타군의 하나였다.

22살에 트로트를, 26살에 록을 부른 가수

한참 뒤에 안 일이지만 윤수일의 가요계 입문은 울산에서 상경한 이후 73년 '골든그레이프스'라는 혼혈인으로 구성된 밴드에서 밤무대를 전전한 뒤에야 이뤄진 결과였다.

나는 윤수일이 좋았다. 잘 생겼고-그가 혼혈인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았다- 참 인상이 좋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인받아보고 싶었던 첫 번째 연예인이 윤수일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윤수일은 스타임은 분명했지만 1등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78년으로 기억된다. MBC 10대가수가요제의 가수왕 발표 때 나는 윤수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웬걸, 수상자는 '오동잎'의 최헌. 그런데 TV화면에 비쳐진 윤수일은 최헌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축하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하이파이브의 옛날식 표현이라고 할까.) 정작 팬인 나는 안타까워 죽겠는데 말이다.

나는 윤수일은 1등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나 1979년 '나나'라는 노래를 통해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뒤 당시 MC였던 변웅전씨가 소감을 묻자 "너무너무 좋습니다"라고 천진하게 웃어대던 그를 보고서야 그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80년대가 되자 이른바 대마초 문제에서 해금된 조용필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서 말 그대로 '조용필 시대'가 열린다. 조용필, 이주일 그리고 전두환. 이 세 사람이 TV출연시장에 있어 이른바 과점체제를 형성하던 시절이었다.

최헌, 최병걸, 조경수 등 윤수일보다 좀 더 인기가 있던 70년대 스타들이 무대 뒤편으로 사라질 당시 윤수일은 '도시음악'이라는 콘셉트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이때 윤수일의 콘셉트는 말 그대로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나 할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트로트를 부르던 가수가 록을 하는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는 팬들은 많지 않았다. 이때가 1981년. 1955년생 윤수일이 만 26살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10대 후반 록그룹에서 활동했던 무명가수가 22살에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트로트를 부르며 스타가 된 뒤 26살에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들고 무대에 선, 어찌 보면 제자리를 찾은 듯했지만 당시 분위기나 각종 매체 상황에서는 이해해줄 여유가 없었다.

특히나 당시의 쇼프로는 성인 취향의 '100분쇼'와 청소년 취향 '젊음의 행진'으로 나뉘던 시기였는데 윤수일 처지에서는 '젊음의 행진'에 출연하기도 어색해 보이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나이만 보면 당시 청춘 스타였던 송골매의 리더 배철수가 1953년생으로, 윤수일이 2살이 더 어렸음에도 '청춘스타'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하며 아파트, 아름다워 등을 발표

이때 윤수일은 밴드를 결성했는데 그 밴드 이름이 '윤수일 밴드'. 지금은 '윤도현 밴드'란 이름이 전혀 촌스럽지 않지만 그때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에 비해 왜 그렇게 어색했던지.

세상의 관심이 조용필에게, 송골매에게 그리고 '잊혀진 계절'을 부른 이용에게 몰리던 1983년 윤수일은 또 한번 시대를 앞서가는 노래를 만들어 낸다. 그 이름은 '아파트'. 본인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80년대 윤수일의 노래는 대부분 본인이 작사작곡한 노래이다-는 당시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데 그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윤수일이 1982년 MBC PD와의 불화로 1985년까지 MBC 출연이 정지되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아파트'는 설명이 필요없는 국민가요로 노래방 애창곡, 대학가 응원가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가요로 세월이 지날수록 그 인기가 높아졌다. 최근 '숲마다 섬마을'을 통해 컴백한 윤수일은 타 매체 인터뷰 중에 '아파트'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를 했는데, 참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윤수일은 1984년 '아름다워', 1986년에는 '황홀한 고백'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이른바 '10대 가수'에 단골로 참여하는 가수가 되었다. 특히 '아름다워'는 정말로 시대를 앞서 태어난 노래였다. 1984년 발표된 이 노래를 지금 라디오에서 틀어도 옛날 노래로 보기 대단히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특히 지난 토요일 윤수일이 출연한 프로에서 80년대 윤수일이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재현되었는데, 미스코리아대회에 출연했던 역대 모든 남자가수들 중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가 바로 윤수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처럼 뮤직비디오가 신곡발표에 필수였던 시절이라면 정말로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성공적인 컴백을 바라며

어찌 보면 윤수일은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다니엘 헤니와 많이 유사하다. 다니엘이 학창시절 농구선수였다고 하는데 윤수일 역시 중학교 때까지 투수로 활약했던 바 있고, 똑같은 혼혈인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윤수일은 언제나 성실했다. 음악에 관한 고민과 창작에 있어서는 조용필의 그것과 견주어 뒤떨어짐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오락프로에서 이른바 '농담 따먹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연예인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존재이다.

윤수일은 신곡 발표와 함께 전국 투어 콘서트도 한다고 한다.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시도지만 이 역시 윤수일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당부해본다. 1940년생 톰 존스가 몇 년 전에 환갑 나이 때 'Sex Bomb'이란 노래를 부른 것을 상기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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