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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안에 있는 김창숙 동상.
성균관대 안에 있는 김창숙 동상. ⓒ 김종성
심산 김창숙은 모든 성균관대 구성원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므로, 과연 김창숙이라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성균관대 특강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창숙이라면 박근혜 대표 초청했을까

양반지주 출신의 유학자인 김창숙(1879~1962년)은 명문가의 안락한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항일투사로 나서 일평생을 기구하게 살다간 '지조파 선비'다. 그는 을사늑약 당시에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을사오적을 참형에 처할 것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린 바 있고, 1925·1926년에는 2차례의 '유림단 사건'과 '나석주 폭탄 투척 사건' 등을 주도한 바 있다. 그리고 쑨원(손문) 등이 한국독립후원회·중한호조회 등을 설립하도록 하는 데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1927년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고문과 심문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가, 일제 패망 직전 다시 체포되어 고향인 성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던 중에 8·15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에 맞서 남한 단독선거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지조와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 출신인지라 정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은퇴하고 말았다.

정치에서 손을 뗀 후로는 전국 유림(儒林)을 재조직하고 성균관 및 성균관대학교를 중흥하는 등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한때 성균관대 총장도 지냈지만, 학교에서 물러난 후에는 집 한 칸 없는 궁핍한 생활 속에 여관과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창숙을 찾아온 '아주 특별한 손님'

그런데 김창숙이 병원 침상에 누워 있던 어느 날, '아주 특별한 손님' 하나가 병문안을 왔다. 그 얼마 전에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사회 지도층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직접 병문안을 온 것이다.

최고권력자가 찾아왔으니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일어나는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심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창숙은 벽을 향해 몸을 홱 돌리며 박정희를 외면했다.

그가 박정희를 냉대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일본군 장교 출신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것 앞에서는 한 치의 타협도 할 수 없다는 꼿꼿한 선비 정신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박정희 허리춤에 있던 권총보다도 민족과 양심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김창숙 동상에 적힌 문구.
김창숙 동상에 적힌 문구. ⓒ 김종성
그런데 11일 성대에서 특강을 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심산 김창숙이 외면한 박정희의 철저한 '계승자'다. 박근혜 대표를 문제시하는 것은 그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다. 친일파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친일파 독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친일파 독재자였더라도 그 자신이 깨끗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의 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박근혜 대표 스스로가 '아버지의 계승자'임을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아버지와 무관하게 정치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잘못을 갖고 그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스스로가 아주 자랑스럽게 '박정희의 계승자'임을 내세우고 있으며, 또 그것이 그의 유일한 정치자산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계승자'

심산 김창숙은 박정희를 외면하고 돌아누웠다. 마찬가지로 그는 박근혜 대표 역시 외면하고 돌아누웠을 것이다. 그런데 찾아오는 박근혜 대표를 외면은 못할지언정 그를 일부러 초청하여 강연까지 들었다니, 이 일을 어찌 이해해야 좋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11일 일부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사람은, 일제가 망하는 줄도 모르고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가, 일제가 망하자 어느새 공산주의자로 돌변하고, 공산주의 하다 감옥에 들어가자 동지들 이름 대고 자기만 살아남아 반공주의자로 탈을 바꿔 쓴 사람의 '계승자'다.

그리고 그는, 인권을 처참히 짓밟고,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나눠 주고,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고 죽이고, 환경 같은 것에는 아예 아랑곳도 하지 않고 자연을 마구 파괴한 사람의 '계승자'다.

아직 배우는 학생들로서는 가급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또 다양한 사상을 접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시대에 너무 뒤떨어지는 사람들'과 만나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폼생폼사'라는 말도 있는데, '시대에 너무 뒤떨어지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혹시라도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입학 때에 1권씩 받은 <김창숙 문존>에 보면, 김창숙의 시 '반귀거래사'의 일부분이 나온다.

"앉은뱅이 되어서야 옥문 나서니
쑥밭된 집안 남은 거란 없어
……
음험하기 짝이 없는 못된 무리들
고향에도 날뜀을 봐야 했어라
해방되어 삼팔선 나라의 허리 끊고
그 더욱 슬펐기는 동족을 죽인 무덤!
……
남북을 가르는 흑풍 회오리
화평을 이룩할 기약은 없고
저기 저 사이비 군자들
맹세코 이 땅에서 쓸어 버리리.
길에서 죽기로니 무슨 한이랴."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 김종성 기자는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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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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