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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의 보물찾기> 겉그림.
<10일간의 보물찾기> 겉그림. ⓒ 창비
나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계산하는 걸 무지 싫어했다. 그런 게 나타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을 정도다. 그 때문에 과자나 물건을 사고서 거스름돈을 적게 받은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종종 내 머리를 쥐어박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헤헤' 웃으며 살며시 넘어가곤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수학이 더 싫어졌다. 어렸을 때는 계산하는 것에 그쳤지만 커갈수록 수학 문제는 장난이 아니게 어려웠다. 그 때문인지 그때는 문제와 답을 통째로 외워버리는 게 오히려 쉬울 정도였다. 이른바 예상문제라는 것들을 그렇게 외우곤 했다. 나만 그랬을까?

그만큼 수학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권재원이 쓴 <10일간의 보물찾기>(창비·2006)란 책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이 책은 왠지 수학과 나를 친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다. 무턱대고 어려운 문제풀이나 공식들이 나오는 게 아니라 수수께끼처럼 수학의 원리를 풀어 가는 이야기들이 잔뜩 들어 있어서 좋았다. 탐정소설이나 추리소설 같이, 뭔가 작은 창문을 통해 드넓은 세상을 알아 가는 듯한 신비로움을 맛보는 것 같았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야금야금 공부를 했지요. 그랬더니 무시무시하기는커녕 미스터리를 푸는 것처럼 흥미롭지 뭐예요. 지팡이 하나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는가 하면, 공식 하나로 우주의 모양까지 설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고 작은 구멍으로 큰 세상을 보는 즐거움을 느끼고, 또 더 나아가 세상을 보는 여러분만의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지은이의 말)

여기에는 지팡이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잰 탈레스를 비롯해, 수학을 신의 계시라고 믿었던 피타고라스, 눈이 아니라 이성으로 도형을 바라본 유클리드,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 과학 원리를 발견해 냈던 아르키메데스, 복잡한 말과 그림으로 된 기하학을 간단한 식으로 나타낸 데카르트 그리고 삼차원과 사차원의 세계를 조목조목 정리해 준 여러 과학자들과 그 원리가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런 수학자들과 재미난 이야기들, 수수께끼 같은 여러 수학 공식들은 '원도'와 '예은'이라는 꼬마 녀석들을 통해 들여다보게 한다. 녀석들은 할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원재의 꿈'이라는 도장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할아버지의 유산은 자신들 몫이 아니라 건축협회에 넘어가고 만다. 그것도 10일밖에 여유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 녀석들이었던지 그 꼬마 녀석들은 대견스럽게도 그 문제를 풀어나간다. 물론 유산상속에 관한 부분은 지은이가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친근하게 만들어주려는 배려에서 꾸며낸 이야기이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사 같은 쏠쏠한 재미를 더해 주기 위함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흥밋거리들로 인해 수학이 진짜로 재미있고 친해질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집트에서는 해마다 대홍수로 나일 강 물이 넘치는 일이 일어났지. 강이 범람하면 상류에 있던 기름진 흙이 떠 내려와 하류에 쌓여서, 농사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땅의 경계를 완전히 없애 버렸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기 땅인지 모르게 되자 사람들은 농토를 다시 구분하기 위해 넓이를 재고 원래 모양대로 그리는 측량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런 측량술이 바로 기하학의 출발점이 된 거야."(35쪽)

"'아르키메데스의 묘비가 불을 밝히면, 탈레스의 지팡이가 문을 두드린다.'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가 아니다.'
서재 바닥에 적힌 글귀를 다시 곱씹어 보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었다."(172쪽)


그렇듯 이 책은 많은 수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해 낸 수학원리들과 공식들이 수수께끼 형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 책을 따라 하루에 한 문제씩 열흘만 따라 가다보면 너무나 알찬 것들을 배울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만, 이 책을 대하면서 아쉬움이 가득 남았다. 어렸을 때 이런 책들이 나와서 좀더 빨리 접했더라면 지금과는 달리 수학과 친해지지 않았겠나 싶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좀더 커서는 수많은 공식들을 외우느라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으니 무척이나 싫었다. 또 고등학교 때에는 방정식에, 원기둥 같은 것들의 넓이와 면적을 구하느라 온통 골머리를 앓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예상 문제와 답들을 통째로 외고 또 외워댔던 기억들이 악몽처럼 되살아나니, 수학이란 말만 들으면 예나 지금이나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하지만 탐정소설처럼 수수께끼와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뭔가 쏠쏠한 재미까지 더해 주는 이 책은 그만큼 수학을 '내 친구 수학'으로 다가서게 해 주고 있다. 정말로 너무 좋고 너무나 재밌는 책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책이 나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은 내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4살과 2살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들이 수학을 알아갈 때가 되면 정말로 보람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을 녀석들이 대하면 나처럼 수학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녀석들에게 수학은 딴 세상 수학이 아니라 '내 친구 수학'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0일간의 보물찾기

권재원 지음,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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