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의 뮤지컬 마니아들은 '조지킬'로 불린 조승우의 '지킬앤하이드'에 푹 빠져 행복해했고, 올해에는 일본 팬들 또한 그에 열광하고 있다. 그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아오른 분위기 때문일까. 미국에서 순회공연 중인 뮤지컬콘서트 '지킬앤하이드' 오리지널 팀이 해외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뮤지컬 공연이 아닌 콘서트 형식의 '지킬앤하이드'는 어떤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까. 2시간여의 공연시간이 주인공을 맡은 배우 단 3명의 콘서트로 채워진다는 보도자료에 약간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과 작사가인 레슬리 브리커스(Leslie Bricusse)가 직접 기획, 연출, 각색까지 한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기존의 '지킬앤하이드' 뮤지컬에서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노래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콘서트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노래를 선보이는 것이다.
또한 음악과 노래 중심으로 전개되는 극의 흐름에 따라 완곡을 제대로 들을 수도 있어, 뮤지컬에서 못내 아쉬웠던 음악적인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제(9일) 찾은 공연장소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은 공휴일임을 감안할 때 예상보다 한산했다. 티켓가격이 너무 비싼 탓인지 아니면 '조지킬'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있는 뮤지컬 마니아들이 오리지널 팀에 별 흥미를 못 느꼈는지 그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연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보다 풍성해진 음악이 주는 감동은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드라마적인 요소도 꽤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맡은 세 배우의 출중한 노래실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원더풀!'을 외치게 한다.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1인 2역을 해내는 로버트 에반과 그의 약혼녀 엠마 역의 줄리 라이버, 그리고 지킬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루시 역을 맡은 맨디 곤잘레스까지. 세 사람 모두 탁월한 노래실력을 보여주지만, 특히 맨디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객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다가온다.
맨디는 귀여운 율동과 함께 객석의 박수를 유도하는가 하면 정열적으로 노래하며 매혹적인 모습으로 루시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다.
맨디의 노래는 줄리와 함께 듀엣으로 들려질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옥구슬처럼 낭랑한 목소리의 줄리와 맨디의 파워풀한 음성이 조화를 이룰 땐 최고의 하모니가 만들어진다.
이쯤 되면 지킬과 하이드를 연기해야 하는 로버트 에반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할 것이다. 딱 잘라 말하면 로버트의 외모는 지킬보다 하이드를 실감나게 보여주기에 적합해 보인다.
극 중에서 지킬이 실험대상으로 자신을 결정한 후 약을 먹는 장면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분위기에 적합한 조명에 로버트의 실감나는 연기까지 더해져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의 연기는 과연 뛰어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는 우리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명곡들이 많이 삽입돼 있다. '디스 이즈 더 모먼트(This is the moment)', ‘원스 어폰 어 드림(Once upon a dream)', '썸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 등등.
이렇게 주옥같은 노래들을 브로드웨이에서 함께 내한한 오리지널 밴드와, 알렉산더 프레이가 이끄는 20인조의 서울필하모닉의 멋진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알렉산더 프레이의 지휘는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나름의 안무를 따로 연구한 듯 보일 정도로 개성 강한 그의 몸짓에서 관객들은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극의 흐름이 다이내믹하게 흘러갈 땐 공중 위로 꽤 높이 뛰어오르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그에게 주체못할 끼가 숨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극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밴드의 강렬한 음악이,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면서 차분한 분위기가 무대를 감쌀 때는 아름답고 은은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만끽할 수 있다.
이렇듯 시원한 창법과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세 주연배우의 노래, 오리지널밴드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에 푹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1부는 끝이 나고 중간휴식시간이다.
2부가 시작되면서 이어지는, 지킬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괴로워하다 하이드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무대는 강렬함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뒤덮이고 밴드주자들도 벌떡 일어나 격정적으로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동작 또한 한층 커다랗게 바뀌면서 지킬은 하이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객석의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앙코르' '앙코르'를 연호한다.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함께 다시 무대에 오른 로버트 에반은 'This is the moment'를 앙코르곡으로 선사하고, 줄리와 맨디는 노래 중간에 무대에 나와 로버트의 음악에 맞춰 가볍게 춤을 추는 팬서비스로 화답한다.
'천사가 외치고 있어… 이건 위험한 게임이야'
하이드의 유혹에 흔들리는 루시의 대사 중 한 대목이다.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위험한 게임을 하고픈 갈등 속에서 번민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수시로 내면의 두 자아가 충돌하며 선과 악 사이에서 괴로워해야 하는 우리네 일상에, 콘서트를 보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연민의 정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