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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게 빼곡이 나있는 애기상추
탐스럽게 빼곡이 나있는 애기상추 ⓒ 김현
이번에도 어머니는 텃밭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애기상추를 솎고 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살금살금 다가가 내가 건네는 첫마디는 “엄마! 뭐해요” 이다. 상추를 솎고 흙을 만지고 있는 줄 알면서도 건네는 이 말에 어머니는 “왔냐. 얘들은?” 하고 손자들부터 찾으신다.

“엄마, 상추가 탐스럽게 자랐네. 계속 여기 있었던 거예요?”
“회관에 있다 조금 전에 왔지. 뽑아줄 텡게 이따 갈 때 가져가거라.”
“그거 밥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게다.”

맛있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상추 속잎을 한 잎 따 먹어보라며 주신다.

“그냥 먹어도 되는 거예요? 씻지도 않았는데.”
“괜찮어야. 이거 농약도 안 하고 목초액 조금 뿌려서 키운 겅게. 먹어봐. 쌔콤하니 괜찮을텡게.”

비에 촉촉히 젖은 상추에 윤기가 흐릅니다.
비에 촉촉히 젖은 상추에 윤기가 흐릅니다. ⓒ 김현
그러면서 당신도 한 잎 베어 먹는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베어 무니 싱싱한 흙내음과 함께 상추 특유의 맛이 입안에 가득 묻어온다. 씻지도 않은 상추를 씹어 먹으며 서로 웃고 있는데 아내가 모자지간에 무슨 좋은 일 있냐며 다가온다.

“좋은 일은. 그냥 엄마랑 상추 먹고 있었지. 당신도 한 번 먹어볼래?”
“아니 무슨 상추를 씻지도 않고 그냥 먹어. 암튼 못 말리는 모자지간이네요. 난 안 먹을 테니 두 분이나 많이많이 드세요.”

개화하기 전의 수선화. 한쪽 방향으로만 고개를 향하는 모습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표시 같다.
개화하기 전의 수선화. 한쪽 방향으로만 고개를 향하는 모습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표시 같다. ⓒ 김현
그리곤 상추를 솎기 위해 어머니 옆에 앉는다. 며느리가 오자 어머닌 아들은 잊은 듯 둘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아내는 가끔 시어머니를 부를 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 여사님이라고 부르곤 한다. 딸이 없는 관계로 여자들만의 애틋함이 없는 어머닌 그런 호칭을 처음엔 어색해 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다. 아내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부르는지 알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고마워하곤 했다.

활짝 웃고 있는 수선화
활짝 웃고 있는 수선화 ⓒ 김현
아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내의 자발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모님의 영향이 크기도 했다. 가끔 장모님은 아내에게 ‘너그 시집엔 딸이 없으닝께 니가 딸처럼 해야 헌다잉’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내와 어머니가 상추를 솎는 동안 난 작은 텃밭 여기저기를 세심히 둘러본다. 무너진 담벼락 아래에 있는 수선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다. 이 수선화는 심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자라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수선화가 피면 작은 텃밭은 환해진다. 모든 게 푸른빛인데 수선화만이 노란 꽃봉오리의 얼굴을 하고 밝게 웃고 있기 때문이다.

완두콩
완두콩 ⓒ 김현
담벼락을 따라 옹기종기 여러 채소들이 심어져 있다. 한 평 남짓한 땅엔 완두콩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막 내린 빗물을 달게 마시고 있고, 담 바로 밑 틈자리엔 부추가 나란히 나있다. 부추를 보니 어머니의 꼼꼼한 성격이 그대로 보인다. 어머닌 지금까지 한 뼘의 땅도 그대로 놀린 적이 없었다. 심지 못할 공간에도 거기에 맞는 씨앗을 뿌려 먹거리로 삼았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 때문에 우리집엔 싱싱한 채소가 떨어진 적이 별로 없었다.

담벼락 밑에 심은 부추
담벼락 밑에 심은 부추 ⓒ 김현
한쪽에선 마늘이 자라고 있다. 마늘은 10월 중순이나 말 쯤 심어 5월에 수확을 하는데 중간 중간 꽃대가 올라오면 따주어야 한다. 꽃대는 마늘종이라 해서 볶아서 먹기도 하고, 생것을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한여름 반찬으로 먹기에도 괜찮다. 마늘밭 고랑엔 파와 함께 시금치가 성글게 나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늘
마늘 ⓒ 김현
조금 있으면 마늘밭에 고들빼기도 올라올 것이다. 고들빼기는 번식력도 좋아 가만히 놔둬도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나온다. 온 식구들이 모여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땐 바로 뽑아 쌈을 싸 먹기도 하고,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는데 그 맛이 쌉싸해서 식욕을 절로 돋운다.

마늘밭 고랑에 성글게 나있는 시금치
마늘밭 고랑에 성글게 나있는 시금치 ⓒ 김현
밭 한가운덴 여러 물건을 저장하기도 하는 작은 하우스가 있다. 그 하우스 안 빈 공간에는 배추가 탐스럽게 자라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매일 닿아서인지 잡초 하나 나 있지 않다. 하우스 안뿐만 아니라 채소가 자라는 텃밭에선 잡초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호미도 사용하지 않은 채 맨손으로 늘 흙을 뒤집고 풀을 뽑고 하며 텃밭을 일구고 가꾸었다. 건강이 좋으실 땐 들일을 나가느라 텃밭에 신경을 덜 썼는데 몸이 좋지 않아 들일을 하지 못하고 나서는 텃밭이 어머니의 삶의 공간이 되었다.

배추
배추 ⓒ 김현
어머니가 텃밭을 가꾸는 건 단 한 가지 이유에서이다. 이 자식, 저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가꾸어 매번 갈 때마다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신다. 그게 어머니의 낙이기 때문이다. 텃밭을 돌아다니며 당신의 손길을 생각하는 동안 어머니와 아내는 상추를 다 솎았는지 일어서더니 저녁 먹거리로 조금 남겨두고 검정 비닐 봉투에 솎은 상추를 모두 넣어주신다. 배가 볼록하게 나온 비닐 봉투를 들고 아내가 “어머니 땜에 우리 며칠 싱싱한 봄맛을 먹게 생겼네” 하곤 잘 먹겠다고 한마디한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텃밭은 어머니의 보물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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