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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승계 비리 의혹을 받아온 현대ㆍ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8일 새벽 인천공항으로 직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귀국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승계 비리 의혹을 받아온 현대ㆍ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8일 새벽 인천공항으로 직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뜻밖이었다. 2주째 계속된 검찰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 브리핑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영락없는 '죄인' 신세였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은 비자금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검찰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예상보다 녹록치 않게 전개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8일 새벽 귀국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의혹의 핵심인 비자금 문제와 김재록(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씨와의 인연을 묻는 질문에 모두 부인하는 취지로 답변해 향후 검찰의 소환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정 회장은 이날 공항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보고받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른다"고 짧게 답했다. 또 "김재록씨를 아느냐"는 질문에도 "지나가다 악수나 할 정도인 것 같다"고 말해, 그동안 대검찰청 중수부의 채동욱 수사기획관이 정례 브리핑을 통해 누누히 밝혀온 현대차-김재록 커넥션 의혹을 부인했다.

정 회장 귀국 발언의 핵심 두가지
"모른다"와 "악수나 하는 정도"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정 회장의 '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김재록씨와 현대차와의 관계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정 회장이 '김재록씨를 안다, 그러나 정관계 로비를 맡긴 사실은 없다'고 말해야 '정답'인데, 지나가다 악수한 사이라고 어정쩡한 답변을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7일 현대차에 대한 수사 상황을 농사에 비유해 "현대차 수사는 벼를 수확해 밥을 짓고 있는 단계"라면서 "밥을 짓고 있는데 뜸들이는 것은 이르고, 열심히 끓이고 있다"고 밝혀 정 회장 등에 대한 소환 조사를 위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또 6일 브리핑에서는 '현대차와 글로비스㈜에서 압수한 것 중 거래장부가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글로비스 금고와 관련한 입·출금 내역을 보관자 입장에서 적어놓은 내역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금고 관리자는 따로 있고, 그걸 어느 곳에 썼느냐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구멍가게 같으면 집행을 주인 자신이 하기 때문에 금고에서 돈을 빼서 쓰면서 주인이 기록한다"고 전제한 뒤에 "글로비스의 경우 금고는 보관장소이고 이주은 사장이 보관을 책임지는 식이었다"면서 "대기업은 조직이기 때문에 금고 관리 책임자가 과자 20억, 라면 100억원 식으로 집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보관 책임과 집행자가 다르다는 검찰의 시각은 구속된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은 '금고지기'였을 뿐이며, 비자금의 구체적 사용에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 등 최고위층의 결재 없이는 불가능함을 내비친 것이다.

채 수사기획관은 또 "김재록씨의 경우 어느 정도 수사성과가 있었다"면서 "현대차 양재동 사옥과 관련해 건교부 실무자를 조사했고 관련 계좌추적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해 김재록-현대차 커넥션 의혹에 대해서도 성과가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8일 정 회장의 부인하는 발언은 비자금 조성은 해당 임원진이 도맡아서 한 일일 뿐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김재록씨가 현대차 그룹의 로비에 관여했다 하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또한 정 회장의 발언은 "글로비스 비자금 관리자와 집행자는 다르다"는 검찰의 설명과 다르고,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인허가 문제에 김재록씨가 개입했다는 정황과도 차이가 있다.

검찰, 김재록씨 대출 알선 혐의로만 10일 기소 예정... 현대차 로비 혐의는?

지난 24일 검찰에 의해 구속되는 김재록씨. 10일 기소가 예정된 김씨는 현재까지 대출 알선 혐의만 있을 뿐 현대차와의 관련성은 특정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4일 검찰에 의해 구속되는 김재록씨. 10일 기소가 예정된 김씨는 현재까지 대출 알선 혐의만 있을 뿐 현대차와의 관련성은 특정되지 않는 상황이다. ⓒ 연합뉴스 김상희
특히 오는 10일 구속시한이 만료되는 김재록씨의 공소장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가 관심사인데, 일단 검찰이 현대차 관련 의혹과는 무관한 세가지 혐의(대출 알선 혐의)에 국한해 기소하는 점도 검찰 수사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해 준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재래시장 패션몰 밀리오레의 모회사인 성창에프앤디가 서울 신촌 민자역사 쇼핑몰 공사를 하면서 500억원을 대출받은 부분과 지난해 6월 부천 투나쇼핑몰이 리모델링 공사에 325억원을 대출받은 것과 관련해 성창에프앤디로부터 11억원, 투나쇼핑몰로부터 2억원의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대해 해당 금융회사들은 정상적인 대출이라고 해명하고, 김씨 또한 로비의 대가가 아니고 회사인 인베스투스글로벌이 컨설팅 해주고 받은 돈이라고 주장한다. 김씨의 한 측근은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상적인 컨설팅 계약에 따라 회사가 컨설팅 대가로 받은 돈이므로 문제될 것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돈이 정상적 경영(컨설팅)을 하면서 받은 것인지, 아니면 불법 로비에 따른 것인지는 법정에서 다툼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령 대출 알선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김재록-현대차 커넥션 의혹 사건의 본류와는 무관한 지엽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7일 '김재록씨가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 컨설팅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한 것은 심증은 있지만 물증까지는 없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그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씨에 대한 수사상황으로 보건데, 현재 검찰은 심증 이상의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 부인하면 비자금 '출구 조사' 난항 겪을 듯

'금고지기'의 구속... 하청업체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현대차 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 이주은 사장이 지난 3월 28일 오후 구속수감되기 위해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금고지기'의 구속... 하청업체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현대차 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 이주은 사장이 지난 3월 28일 오후 구속수감되기 위해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정몽구 회장은 주위에 올해 자신의 목표를 ▲건강 회복 ▲정의선 사장 3세 경영체제 구축 ▲해외시장 개척의 세 가지라고 설명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가 올해 들어 언론인 영입과 법무팀 강화 등으로 기업홍보 및 법률지원에 역점을 둔 것도 3세 경영체제 구축을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문제의 글로비스 비자금도 경영승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한 정·관계 '로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현대차 비자금 의혹이 터지자 현대 내부에서조차도 정몽구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물론, 적어도 정의선 사장의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현대차 그룹 내부에서 '대국민 사과'를 언제 하는 것이 좋을지를 탐문한 것도 사법처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검찰 또한 현대차 그룹에 대한 수 차례의 압수수색을 통해 비자금 입출금 장부를 확보했다고 밝히고, 비자금 용처 수사는 물론 경영 승계과정에서의 비리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표출해왔다.

그러나 정 회장의 부인 발언은 비자금 조성이나 편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증거서류가 검찰에 압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럴 경우 막상 정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더라도 비자금 연루(집행) 혐의를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비자금 '출구(사용처) 조사'가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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