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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다가 찍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찍었습니다. ⓒ 김관숙
수바시장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차들이 밀리는 바람에 버스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버스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바로 옆 바다에 떠 있는 아주 큰 배로 향합니다. 나는 얼른 바지 주머니에서 디카를 꺼내 듭니다. 그러나 욕심입니다. 나는 좌석이 없어 서 있던 차였습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차창으로 디카를 내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창가 쪽에 앉은 푸른 티셔츠를 입은 검고 뚱뚱한 여자가 그런 나를 힐끗 보더니 좌석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피지 원주민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내가 못 알아들을까봐 손짓까지 하면서 자기가 앉던 자리로 들어가라고 아주 상냥하게 말합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그 자리에 가 앉자마자 창으로 디카를 내밀어 큰 배의 모습을 잡습니다. 버스가 움직일까봐 조마조마 합니다. 좋은 각도는 아니지만 버스 높이가 있어서 맨땅에서 잡는 것보다는 훨씬 시야도 넓고 안정감 있게 나올 것 같습니다.

수바 항에는 가끔씩 큰 배가 들어오고는 합니다. 조금 높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는 넓디 넓은 바다 풍경을 집에서 바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집 포치(PORCH)에서는 옆집 정원의 우람한 나무들 때문에 나뭇가지 사이 사이로 바닷물이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들이 한쪽으로 쏠리듯이 흔들릴 때는 조금 더 많이 보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버스가 움직였습니다. 좌석을 도로 내주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푸른 티셔츠의 여자는 그대로 있으라고 곧 종점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가 터미널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버스가 완전히 서야만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버스가 서기 전에 뒤쪽이나 중간에 앉은 사람들이 미리 일어나거나 문 쪽으로 가거나 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문은 앞 쪽에 하나 있습니다. 앞 쪽에 앉은 사람부터 차례로 내리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나는 그런 그들의 성급함이 없는 그래서 어떤 품위까지 느껴지는 질서가 너무나도 부럽고는 했습니다.

버스 터미널
버스 터미널 ⓒ 김관숙

수바 노천시장
수바 노천시장 ⓒ 김관숙
늘 사는 중국인 가게에서 배추와 부추를 사고 노천시장으로 나와 단이 실한 비름나물을 한 단(F$1) 삽니다. 비름나물은 우리나라의 비름나물과 달리 줄기가 굵고 이파리들이 큽니다. 살짝 데쳐서 된장양념에 무치면 맛이 그만입니다.

비름나물 단이 탐스럽습니다
비름나물 단이 탐스럽습니다 ⓒ 김관숙

이름은 모르지만 잘 팔린다고 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잘 팔린다고 합니다 ⓒ 김관숙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시장 한바퀴를 돌아봅니다. 살 것이 없어도 그냥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모습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많은 모습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들은 따듯하고 친절합니다. 물건 이름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을 해줍니다. 한 번은 푸른색 과일인 ‘아보가도’를 사지는 않고 이름만 물어보고는 돌아다니다가 이름을 까먹어서 다시 그 자리로 가서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버스터미널로 나와 노란색 버스인 바투왕가(VATUWAGA)행 버스에 올라 운전사에게 버스요금 45센트를 막 내고 났는가 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향해 굵은 목소리로 "하이"합니다. 아까 내게 좌석을 내준 바로 그 푸른 티셔츠를 입은 뚱뚱한 여자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버스가 움직일까봐 조마거리며 사진 찍는 데만 신경을 쓰느라고 고맙다는 말도 못한 것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나는 홍당무가 돼서는 그 여자가 가리키는 대로 그 여자 옆, 빈 자리로 가서 장을 본 장바구니를 무릎 위에 놓고 얌전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검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품고는 창 밖을 가리키며 더 찍을 풍경이 없냐고 합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없다고 했습니다. 찍을 게 있다고 하면 좌석을 바꾸어줄 기세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인사성이 없으면 인간미 꽝인데, 디카가 대체 뭐길래, 아, 그때 바로 고맙다는 말 한마디만 했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을텐데. 이제라도 할까. 그런데 문득 여자가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커단 비닐봉지를 다시 챙겨 잡고 있습니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 보입니다. 카사바가 비죽거리는 큰 비닐봉지에서 성게 비린내가 확 올라옵니다.

역한 비린내에 구토증이 났습니다. 불볕 날씨라 그런지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돌리려다가 그만둡니다. 나로서는 최선의 예의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눈치를 챘습니다. 지금은 냄새가 많이 나지만 카레가 들어가면 전혀 냄새가 안 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무릎 위에 장바구니를 보면서 비름나물도 카레로 무쳐보라고 합니다. 듣고 보니 카레양념을 해 무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그렇게 해 봐야겠습니다.

저도 카사바를 좋아합니다
저도 카사바를 좋아합니다 ⓒ 김관숙

성게 싱싱합니다
성게 싱싱합니다 ⓒ 김관숙
여자는 놀리 스트릿(KNOLLY ST) 초입이 보이자 동생 집에 들러가야 한다면서 손을 올려 차창 위에 줄을 한 번 잡아 당겼습니다. 차창 위로는 차창을 따라가며 가로로 긴 줄이 있습니다. 빨래줄 같은 그 줄은 벨 대신입니다. 승객들이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이 다가오면 그 줄을 한 번 잡아당기는데 그러면 운전석 쪽에서 소리가 나고 운전사가 정차를 합니다. 소리는 크지 않지만 버스 안이 조용해서 잘 들립니다. 정감이 흐르는 풍경입니다.

차창을 내다보니까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얼굴 가득히 웃으면서 손을 흔듭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오늘처럼 큰 장이 서는 토요일이면 버스 안이나 시장에서 그 여자를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내가 먼저 반듯하게 인사성을 차릴 생각입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하나 얻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미 나는 좋은 친구를 만났는지도 모릅니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던 그녀의 모습은 바로 친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겨울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지낼 때의 어느 날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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