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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의 모습
습지의 모습 ⓒ 김현
전주엔 아름다운 산 하나가 있다. 도심 속에 있는 산, 건조한 아파트 숲속에 작은 일곱 개의 봉오리를 가슴에 품은 산이 있다. 해발 186m의 낮은 산이지만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 완산칠봉이다.

그 완산칠봉 산자락엔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습지가 하나 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각종 동식물이 자란다. 지난 3월 26일 아이들을 데리고 습지를 보러 갔다. 2월 말쯤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습지를 봤을 땐 마른 풀밖에 없었는데 여기저기서 파릇한 봄기운이 솟고 있었다. 웅덩이에 고인 물도 그때보다 조금 많았다.

습지 내 작은 웅덩이에서 꿈틀거리는 올챙이들
습지 내 작은 웅덩이에서 꿈틀거리는 올챙이들 ⓒ 김현
웅덩이 가까이 다가가자 소금쟁이며 올챙이들이 꼬물대는 모습이 보인다. 아들 녀석이 그 모습을 보고 '와! 누나 여기 봐 올챙이가 엄청 많아'하며 누나를 부른다. 그러면서 손으로 웅덩이 속을 살짝 건드리다 깜짝 놀라며 소리를 쳤다.

"아빠, 여기 와 봐요. 뭐가 물속에 있어."

습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돌아보다 아이들 곁에 와 아들 녀석이 말한 '뭐가'를 살피니 거머리였다. 정말 얼마 만에 보는 거머리인가. 어릴 때 논에서 방죽에서 종아리와 겨드랑이, 심지어 사타구니에까지 달라붙어 수없이 내 피를 빨아먹던 거머리를 도심 한 구석에서 보다니 기분이 묘했다. 거머리는 작은 물속에서 여유롭게 몸을 잔뜩 늘리며 유영하고 있었다.

"아빠, 저게 뭐에요?"

거머리
거머리 ⓒ 김현
골똘히 거머리 보는데 빠져있는 아빠에게 딸아이가 거머리를 보고 묻는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했을 것이다.

"너희들 저거 책에서 안 봤어? 저거 거머리야 거머리."
"본 것 같기도 해. 근데 저게 왜 여기 있어요?"
"아빠, 거머리 물어요. 징그럽게 생겼어."

아이들의 거머리에 대한 호기심에 내가 해줄 말은 어릴 때 거머리에게 물려 피를 뜯겼던 이야기뿐이다. 거머리가 연체동물이니 환형동물이니 하며 아는 체하기엔 아는 게 너무 없다. 아이들과 함께 백과사전 펴놓거나 인터넷을 뒤져 나중에 찾아보기로 하고 다시 웅덩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거머리 새끼들
거머리 새끼들 ⓒ 김현
나뭇잎 하나를 뒤집어 보자 거머리새끼들이 착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세어 보니 열 마리 정도 된다. 아이들은 거머리의 무리를 보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선다. 아들 녀석은 징그러운 거머리가 못내 못마땅한지 왜 여기는 거머리만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습지 주변을 흰나비 한 마리가 한가로이 날아다닌다. 다른 나비도 있나 찾아보나 다른 나비는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에 담으려 하자 한 자리에 앉아 있지를 않는다. 아이들은 옳거니 하고 나비 쫓기를 하며 습지 부근에서 논다. 습지 위로 올라가며 다른 생물들이 있나 살펴보지만 특별한 게 보이지 않는다. 올챙이도 습지 맨 아래 웅덩이에만 보인다. 소금쟁이 몇 마리만이 낯선 불청객을 별 두려움 없이 맞이해 준다.

소금쟁이
소금쟁이 ⓒ 김현
이 완산칠봉 아래 있는 습지는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우연히 이 습지를 발견한 사람들('완산칠봉을 사랑하는 모임')은 습지보존운동을 펼치게 된다. 그래서 사유지였던 습지를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를 통해 구입하여 영구 보존의 길을 열어놓았다. 일종의 자연신탁운동(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펼쳐 습지를 시민의 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습지 내의 작은 웅덩이 모습
습지 내의 작은 웅덩이 모습 ⓒ 김현
습지를 보면서 자연은 그대로 놔두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습지에 개발이라는 이름을 들이대고 수로를 내고 관찰할 수 있는 길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의 잠시의 편리를 위해 그렇게 한다면 습지는 습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해버릴 것이다.

죽은 것의 개발은 다시 살려놓은 기능을 하지만 살아있는 것의 개발은 살아있는 것들을 죽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경제적 가치론 아무 쓸모없을지도 모를 습지지만 습지를 돈이 아닌 살아있는 자연, 즉 생명의 움직임으로 봤기에 시민들은 작은 힘을 모아 그 습지를 구입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우리 인간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먼저지 자연이 먼저냐 하는 생각, 먼저 사람 배부터 불러야지 배고픈 자연이 무슨 소용이냐 하면서 살아왔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자연과 인간이 함께 상생하는 길로 가야할 때라 본다.

덧붙이는 글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자연신탁운동)이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및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를 통해 영구보전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시민환경운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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