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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30일 서울시 역삼동 스타타워 론스타 한국사무소에서 압수한 물품을 수레에 실어 가지고 나오고 있다.
검찰이 지난 30일 서울시 역삼동 스타타워 론스타 한국사무소에서 압수한 물품을 수레에 실어 가지고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최경준

"이번 론스타 수사는 참 어려운 수사이지만 하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다."

2일 오후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이 기자들을 만나 한 말이다. 지난 30일 론스타코리아 사무실 등 8곳을 압수수색해 700상자 분량의 증거물을 압수한 검찰은 3일부터 자료 분석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영어능력이 뛰어난 검사 2명이 보강됐고, 국세청 등 관련 공무원 10여명도 추가로 투입됐다.

검찰이 론스타와 관련해 혐의를 두고 있는 점은 ▲147억 탈세(국세청 고발) ▲860만 달러 외환도피(금감원 수사의뢰) ▲외환은행 헐값매입(국회 재경위 고발)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중 탈세와 외환도피 혐의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검찰과 국세청, 금감원이 총동원돼 매달리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외환은행 헐값매입 의혹은 성질이 좀 다르다. 물론 2003년 당시 론스타의 은행대주주 자격 취득 등의 위법성만 따질 수는 있다. 문제는 이른바 '김재록 게이트'다. 금융계의 큰손 김재록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은 커지는 추세다.

검찰, 경제수장들 명단을 펼치다

의혹은 비교적 간단하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위해 경제수장을 지낸 인물들이 김재록의 뒤를 봐준 게 아니냐는 것. 검찰은 벌써부터 첩보를 입수했고, 이들의 명단을 펼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곤혹스럽다. 명단에 오른 인물들은 대부분 현 정부의 요직에 앉았거나 앉아 있다. 더구나 론스타가 무려 4조5000억원의 차익을 챙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공분'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런 탓에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들도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다.

현직 정부·여당 고위 인사중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은 김진표 교육부총리와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김진표 부총리는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경제부총리였다. 그는 같은 해 7월 22일 <불룸버그 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재록씨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에 깊숙이 개입했고 김진표 부총리가 이 사실을 처음 언론에 공개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더구나 김 부총리는 자신의 입으로 "김씨와 상당히 자주 만났다"고 털어놨다. 아들 김아무개(30)씨가 김재록씨가 부회장으로 있던 '아더앤더슨'에 약 11개월간 근무한 사실도 시인했다.

강봉균 의장은 지난 2000년 9월 아더앤더슨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항공권으로 '부부동반 시드니올림픽 관광'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 의혹을 받고 있다. 강 의장은 "아더앤더슨 미국 본사가 초청한 것이고 현직에 있을 때가 아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강 의장 등을 지원한 비용을 김재록씨 개인이 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씨의 측근인 박아무개씨는 1일 MBC와 인터뷰에서 "가족들을 같이 보내고 해서 아더앤더슨 내에서도 문제가 됐다"며 "(초청비용은) 본인이 가불해서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의혹은 더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김재록씨와 강 의장이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또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되어 거론되고 있는 경제수장들. 왼쪽부터 김진표 교육부총리,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진념 전 경제부총리.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되어 거론되고 있는 경제수장들. 왼쪽부터 김진표 교육부총리,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진념 전 경제부총리. ⓒ 오마이뉴스 권우성·이종호·남소연
강봉균·이헌재 외유 비용, 김재록이 냈나

현직은 아니지만,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김재록 게이트'에 관계됐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 전 부총리는 DJ정부 초기 김씨를 알게 됐고 해외 출장에도 동행하는 등 깊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총리 역시 2004년 강 의장과 함께 '부부동반 외유'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 당시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앞서 강 의장은 지난 99년 5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이 전 부총리는 2000년 1월부터 8월까지 각각 재경부장관을 지냈다. 그 뒤 이 부총리는 국내 최대의 로펌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했다. 이 법률사무소는 론스타의 국내 법률자문을 맡은 곳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도 거명된다. 진 전 부총리 역시 같은 시기 론스타의 회계자문을 맡은 '삼정회계법인' 고문으로 올라있었다. 하지만 진 장관은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다"며 김재록 관련설을 부인하고 있다.

김진표·강봉균·이헌재·진념. 이처럼 국내 경제정책을 좌우한 최고위급 인사들은 지금 어떻게든 '외환은행과 김재록(론스타)' 사이에 얽혀 있다.

이들 뿐만 아니다. 당시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과 김석동 금감원 감독정책국장(현 재경부 차관보), 변양호 금감원 금융정책국장(현 보고인베스트먼트 사장) 등 '금융권의 검찰' 실세들도 줄줄이 의혹 선상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의 고발, '김재록리스트'였네

재계에서는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현 인베스투글로벌 회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현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김재록씨와 연관된 것으로 떠오른다.

특히 이강원씨는 재임 당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기고 재신임을 받아 은행장으로 연임됐다. 당시 이씨는 론스타와의 매각협상을 주도하면서도 '투기자본'이라는 경고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론스타를 옹호했다.

이씨는 매각협상이 완료된 2003년 9월 기자들을 만나 "론스타가 금융 투자자라고는 하지만 기업 가치가 오르지 않고는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니 전략적 투자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적극적 옹호론을 폈다. 이어 그는 "론스타로부터도 외환은행 투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하는 것이란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겠다던 론스타는 불과 2년 남짓 지난 현재 4조5천억원이 넘는 차익만을 챙긴 뒤 발을 빼려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투기자본감시센터(대표 허영구)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정·재계 인사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명단은 '김재록 게이트'에 연루된 명단과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직관력'이 나름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아먹은 김진표 전 재경부 장관,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은 '계미오적'이다."

2005년 10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감에서는 '계미오적' 논란이 일었다. 김양수(한나라당) 의원은 김진표 부총리 등을 구한말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오적'에 빗대 맹렬히 비난했다.

'계미오적'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닌지, 이제는 검찰의 수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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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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