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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리에 있는 충렬사입니다
남산리에 있는 충렬사입니다 ⓒ 이승숙
1636년 겨울,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기 전에 한성판윤 김경징(金慶徵)을 강도(江都) 검찰사로 임명했다. 한성판윤이라면 지금의 서울시장을 말한다. 인조는 김경징에게 도성의 빈궁, 왕족, 고관대작의 부녀자들을 안전하게 강화도로 피신시키는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백성들도 피난길을 나섰다. 피난행렬은 그를 하늘처럼 믿고 강화해협 갑곶진 건너편 김포쪽 갯벌에 모여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강화도로 건너갈 배가 없어서 이틀씩이나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했다.

드디어 호화로운 가마행렬이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그 동안 꼼짝 않던 배들이 건너왔다. 그리고 고관대작의 부녀자들과 왕족들 그리고 김경징의 식솔들을 배에 태우고 강화로 피신시켰다.

그들을 태운 배가 수십척 건너가고 나서 청나라의 기마병이 몰려왔다. 해안은 순간 공포의 마당이 되어 버렸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갯벌에는 피의 강이 흘렀다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청군을 원망하기보다는 "경징아" "경징아"하며 김경징을 원망했다. 그 후 사람들은 갯벌에 발갛게 돋아있는 해초를 '경징이'풀로 부른다.

서해안 갯벌에 가보면 발갛게 돋아있는 풀들을 보게 된다. 그 넓은 갯벌이 온통 발갛다. 밀물이 밀려들어오면 바다물 속에 잠겨 있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몸을 드러내는 염생식물 경징이 풀, 그 풀을 보면서 이른바 지도층이 해야 할 바를 생각하게 된다.

강화도에는 12개의 면이 있는데 그 중에 '선원면’은 선원(仙園) 김상용의 호에서 따왔다 한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왕족을 시종하고 강화로 피난을 왔다. 종묘사직을 챙기는 총책임자였던 셈이다.

이듬해에 강화성이 함락되자 김상용은 남문 앞에 쌓아두었던 화약 더미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 그를 따르던 유생 72명도 같이 목숨을 끊었다 한다.

김상용, 어재연 장군, 그리고 20여 분의 신위를 모신 충렬사 사당입니다
김상용, 어재연 장군, 그리고 20여 분의 신위를 모신 충렬사 사당입니다 ⓒ 이승숙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도망을 가거나 피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맞서서 싸울 수도 있다. 질 싸움이 뻔한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온 몸으로 버틴다. 그래서 만신창이가 되어서 죽어가지만 그 정신은 살아남는다. 피할 수 없는 선택에서 어떤 길을 택하는 게 승리하는 길인지를 김상용과 유생들은 보여준다.

선원면에 있는 '충렬사'는 김상용과 28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사당이다.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지도층들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흰 옷 입은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서 온 몸으로 싸웠다. 그 피 위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음을 위정자들이, 5월 31일에 새로 뽑힐 기초단체장들 그리고 지방의원들이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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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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