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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둑을 두는 아이들
바둑을 두는 아이들 ⓒ 김현
아이들은 들어오자마자 금세 어울려 떠들고 웃고 하며 뭔가 놀이거리를 찾습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안방으로 몰려갑니다.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욱이가 동생들 노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도 데려다 달라고 합니다. 욱이를 안고 들어가자 아이들이 이불 뒤집어쓰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보미야, 니 얼굴 보여. 큭큭."
"언니는 발 나왔네 뭐. 한울아, 그만 밀어 나 떨어진다고."
"안 밀었어. 누나나 밀지 마 히히."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특별한 놀잇감이 없어도 노는 재주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잠시 진정시키고 욱이를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함께 놀으라 이야기를 하고 나오려니 불을 꺼달라고 합니다.

"아빠, 불 좀 꺼주세요."
"불은 왜?"
"히히히 불 끄고 놀려구요."

전등불을 끄고 나오자 방안이 요란합니다. 웃음소리, 이불 잡아당기지 말라는 소리, 발로 차지 말라는 소리, 떨어진다는 소리, 개구쟁이인 선빈이를 몰아내자는 소리 등. 그렇게 놀다 시들해지면 다른 놀이를 찾아 또 놉니다. 욱이도 모처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제수씨가 "욱이가 맨날 전주 큰엄마 집에 가자고 하는 이유를 알겠네요"하며 웃습니다.

밤 열시 반쯤 되자 동생 내외가 가겠다고 일어서는데 욱이는 가지 않고 자고 가겠다고 합니다.

"욱아, 정말 여기서 잘 거야? 아빠랑 엄마랑 간다."
"나, 여기서 잘 거야."
"정말 여기서 자려나 보네요. 형님이 좀 애써주세요."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바둑알 놓기 놀이하는 아이들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바둑알 놓기 놀이하는 아이들 ⓒ 김현
다른 때 같으면 엄마 아빠 따라 집에 가겠다고 할 터인데 이번엔 정말 자고 가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고 왔나 봅니다. 보미와 선빈이는 엄마 아빠 따라 집에 가고 욱이만 남았습니다. 그러자 집이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동생을 배웅하고 들어오자 바둑판을 펼치고 딸아이와 욱이가 바둑을 두고 있습니다.

"욱아, 너 바둑 잘 해?"
"응, 나 바둑 잘 해. 예지보다 더 많이 따 먹었어."
"너 바둑 배운 거야?"
"아니, 그냥 혼자 했어."

가만히 살펴보니 욱이가 딸아이보다 많이 따 먹습니다. 아이들의 바둑이라야 집 지어 따먹기 정도지만 보고 있는 그 재미도 괜찮습니다. 바둑 두는 것이 끝나자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바둑돌 놓기를 합니다. 이기면 세 개씩 놓고 지면 하나씩 놓아가는 게임입니다. 그 게임의 규칙은 저희들끼리 정한 거구요. 동생 한울이가 가끔 바둑돌을 대신 놓다가 비뚤하게 놓자 욱이가 한 마디 합니다.

"야, 삐뚤삐뚤하게 놓으면 안 돼. 마음이 삐뚤어진데."
"형아, 정말야? 그럼 반듯하게 놓아야겠네."

그러자 딸아이가 한 마디 합니다.

"야, 그런 게 어딨냐. 바둑은 바둑이고 마음은 마음이지."
"아냐 나 책에서 봤다. 바둑돌을 반듯하게 놓아야 한다고 그랬어, 그래야 마음이 안 삐뚤어진다고."
"무슨 책에서?"
"몰라 그건. 잘 생각 안 나."

ⓒ 김현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피식 웃습니다. 바둑판이 검은 돌과 흰 돌로 가득가득 메워지면서 아이들의 표정도 점차 진지해집니다. 가지런한 바둑알이 바둑판에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검정돌이 약간 모자란 듯 공간이 좀 빕니다. 판을 채운 아이들은 누구 바둑알이 더 많은지 세기 시작합니다. 어른들 눈에는 훤한 것을 아이들은 진지하게 셉니다. 그게 어쩌면 아이들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흰 돌과 검은 돌 사이에 아이들 마음이 있는지 모르고요.

바둑알 세기가 끝나자 이번엔 바둑알을 가지고 물건 사고팔기 놀이를 합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까워집니다. 아내의 그만 자라는 소리도 들은 척 만 척 놀이에 열중합니다. 평소 9시만 넘으면 쓰러져 자는 아들 녀석도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끝까지 남아 놀이에 동참합니다.

"야, 우리 돈 놀이 할까?"
"아니, 책, 서점놀이 하자."
"그래. 너 무슨 책 살 거야?"
"나, 기차가 있는 풍경 살 거야. 얼마야?"
"천원이야. 특별히 싸게 준 거야. 첫 손님이니까."

그러면서 바둑알 하나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니까 바둑알 하나가 천 원인 셈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서점 주인은 딸아이이고 아들과 욱이는 물건을 사러 온 것 손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화 장면을 들어보면 서점에선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 봅니다.

"연필 사도 돼?"
"응, 연필은 오백 원이야."
"그럼 난 호랑이하고 공룡 살래. 호랑이하고 공룡 주세요."
"알았어. 호랑이는 오만 원이고 공룡은 귀하니까 십만 원이야."

평소 호랑이나 공룡 같은 것을 좋아하는 아들 녀석이 호랑이 공룡을 달라고 하자 딸아이는 밖으로 나가 장난감 통에서 공룡 모형과 호랑이 모형을 가지고 옵니다. 그렇게 놀다가 12시 반이 넘어서야 아내의 성화에 잠자리에 듭니다. 아내가 욱이에게 큰엄마랑 자자 하니까 어째 눈치가 이상합니다. 그럼 너희들 같이 잘 거야 하고 물으니 동시에 네 하고 대답합니다. 함께 노는 재미를 잠자리에서까지 같이 하려나 보다 하고 자리를 펴줍니다.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는 아이들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는 아이들 ⓒ 김현
불을 끄고 나서도 뭐가 그리 좋은 지 속닥거리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우리도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쟤들은 뭐가 저리 좋을까. 그래도 잘 노는 것 보면 이쁘지?"
"다행이에요. 욱이 못 걷는다고 해서 별다른 눈치도 없고…."
""그런데 욱이 저 녀석 당신이랑 잔다고 하더니 잘 때가 되니 마음이 변하네. 안 서운해?"
"글쎄…. 아무래도 저희들끼리 놀고 자는 게 좋겠지 뭐."

예전에 한두 번 아들 녀석이 욱이 형아 왜 그러냐고 물은 적이 있을 때 아파서 그러니 잘 놀아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론 아이들끼리 잘 놉니다. 아이들 마음속엔 아직 장애아에 대한 어떤 편견 같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몸이 불편하다는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저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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