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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평가지에 답을 하고 있는 학생들
ⓒ 정호갑

일석사조인 멍석 깔아주기

수업을 교사 중심에서 아이들 중심으로 바꾸었다. 50분 수업 가운데 내가 말을 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를 아이들의 삶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은 아니다. 매시간 수행평가지를 내주고 교과서에서 다루어야 할 것들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이렇게 수업을 함으로써 아이들은 자기의 삶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다. 자기 삶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단 하나의 정답만을 따라가는 획일화된 삶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을 깨닫도록 해준다. 그럼으로써 자기 삶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는 아이들 스스로 교과서를 정독함으로써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교사가 읽고 아이들은 밑줄을 긋고 받아쓰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은 수행평가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능동적인 책 읽기를 하는 것이다.

▲ 아이들이 해낸 수행평가지
ⓒ 정호갑
이렇게 함으로써 수능 언어영역 점수도 올릴 수 있으며 교실 붕괴도 막을 수 있는 그야말로 '일석사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수능 언어영역 점수를 올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능동적 독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시를 10년 이상 담당하면서 느낀 확신이다. 그리고 매 시간이 이렇게 이루어지므로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잠을 자는 아이가 없다.

어떤 이들은 수행평가 점수로 아이들을 옭아맨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1, 2점으로 모든 아이들을 옭아맬 수는 없다. 그것은 아이들이 1, 2점의 점수보다는 수업 시간에 스스로 활동하여 완결했다는 만족감, 그리고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 또 그렇게 했을 때 자기에게 오는 즉각적인 보상(수행평가 가산점) 때문에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7차 교육과정에 들어서면서부터 국어교과서에도 아이들의 삶의 모습이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많은 물음을 던져 놓았다. 그것을 빠뜨리지 않고 아이들도 스스로 드러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준다.

우리 아이들 바로 기자 해도 되겠지요

국어(상) <용소와 며느리바위> 줄거리

용소는 장연읍에서 20리 남짓 되는 몽금포 있는 곳에 있는데 그 용소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용소에 사는 인색한 부자 첨지 영감이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에게 쇠똥을 시주하자 며느리가 대신 쌀을 시주했는데, 스님이 며느리에게 재앙을 예고하며 피할 것을 일러 주었다.

하지만 며느리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주의를 어겨 화석이 되고, 그 영감이 살던 집터는 큰 소가 되었다. 용소 근처의 불타산 아래에는 산으로 몸을 피할 때의 며느리 모습 같은 화석이 지금도 있으며, 그때의 소는 끝을 모를 정도로 깊고 넓게 변했다
국어교과서(상)에 나오는 <용소와 며느리바위>에서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이 전설을 신문 기사화하는 것이다. 사건을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하면서 논평을 덧붙이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아이들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논평을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앞에 나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것이다. 이것 또한 옛 이야기를 자기 식대로 재해석하는 과정이므로 아이들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멍석을 깔아줄 때마다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은 그리고 창의력은 정말 놀랍다는 것을 느낀다.

불타산 도승의 저주인가

-갑자기 벼락 맞은 장재 첨지의 집이 용소가 되고 사람이 화석이 되다


"그 영감님이 원래 좀 인색하긴 했어요. 스님이 시주하러 와도 쌀 한 톨 주질 않으니… 그날은 스님이 시주하러 갔다 쇠똥을 가지고 나왔어요? 좀 너무했죠. 그것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게 아닐까요?"

황해도의 서부 바닷가에 있는 장연에 위치한 작은 읍에서 생긴 일이다. 장재 첨지 옆집에 살던 이모(18)군의 증언이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장재 첨지는 이웃을 도와주는 일이 없었고 돈만 모으는 인색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이날도 불타산의 한 도승이 그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서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하라고 하자, 장자는 그 소리에 화를 내며 뛰쳐나와서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으며 왜 우리 집에서 얻어먹으려고 하느냐"며 소리소리 지르며 쫓아 보내려 하였지만, 그 도승은 꿈쩍도 않고 불경만 외고 있었다. 그러자 화가 난 장자가 도승의 바랑에 쇠똥을 넣었다. 하지만 스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다 나왔다.

그때 우물에서 쌀을 씻고 있던 며느리가 이 광경을 보고 스님에게 씻고 있던 쌀을 시주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며느리에게 곧 큰 재앙이 내릴 것이니 소중한 것 두세 개만 챙겨서 불타산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도 남겼는데 며느리가 명주실 도투마리와 개와 아들을 데리고 가다가 천둥소리에 뒤를 돌아봐서 그만 화석이 되고, 장자 첨지네는 깊은 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 소가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넓은 논과 밭에 물을 대주고 있는 상황이다. 살아있을 때의 인색함이 죽어서는 넓은 아량이 된 것이다. 지금은 그 소를 용소라 부르는데 마을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비가 아무리 와도 넘치지 않고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지금도 불타산에 가면 아들을 업고, 명주 도투마리를 이고, 개를 데리고 가다가 화석이 된 착한 며느리를 만나 볼 수 있다. (대덕여고 1학년 김혜실)


저주라는 제목이 조금 눈에 거슬리지만, 장재 첨지의 인색함을 넓은 아량으로 바꿔 사건으로 드러낸 것이 돋보인다. 아이들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와 닿아 마음이 가볍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격담-사건의 진상-사건 뒷이야기까지 제대로 서술하여 기사로써 나무랄 데가 없다.

이 이야기를 앞에 나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특정 선생님의 목소리를 내며 이야기하는 아이들, 마치 자기가 그곳에 가 봤던 것처럼 꾸며서 이야기하는 아이들, 재밌게 이야기를 해 나간다.

그런데 한 아이는 정말 새롭게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장재 첨지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며느리가 자기는 빼고 도망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도 말한다. 용소 또한 자기의 반성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도 돋보인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내가 말이야. 지금은 지옥에 와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옛날엔 그렇지 않았다구. 내가 죽기 전에는 아주 부잣집 영감이었어. 근데 지금 이 신세인 건 그땐 내가 너무 못됐었거든. 사람들도 다 나를 깍쟁이, 돼지라 그러고. 내가 생각해도 참 못됐었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지만.

여하튼 그날도 한 스님이 우리 집에 시주를 왔는데, 난 그때 쇠똥을 퍼주면서 꺼지라고 그랬지. 그러니깐 그걸 보고 있던 우리 착한 며느리가 그 스님에게 날 좀 이해해 달라며 자기가 씻고 있던 쌀을 퍼주더라고. 그 모습을 보면서 쌀도 아깝고, 며느리도 이해 안 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역시 우리 며느리더군.

그래서 스님이 우리 며느리를 착하게 생각했던지, 뭐라 둘이서 꽤 심각하게 중요한 얘기를 하더라구. 그리고 얘기가 끝나자마자 며느리는 바삐 애들하고 자기가 소중히 생각하는 거 몇 개를 들고 불타산으로 가더라구. 그 다음부터 난 기억이 없어.

깨어나니 이 곳이더라구. 우리 며느리? 우리 며느리는 어떻게 된 지 몰라. 근데 지금 생각하여 보니 조금 괘씸하지 않나? 내가 아무리 못됐다고 해도 시아버지인데 나를 쏙 버리고 자기 아끼는 것만 데리고 가버리다니.

며느리 얘기는 내가 이곳에 와서 들은 것인데 며느리는 뭐… 뭐라더라. 뒤를 돌아봐서 그만 화석이 됐다더라고. 내 생각인데 우리 며느리도 나처럼 벌 받은 게 아닐까? 근데 우리 며느리는 이곳에 없더라구. 그래도 참 착했으니깐 천국으로 갔나 봐.

여하튼… 그래도 참 다행이지. 나는 이곳에서 정말 많이 반성했어. 그래서 옛날 내 집터를 용소로 만들었지. 땅도 아주 크고 물도 깊어 많은 평야에 물을 대주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정말 좋아해. 지옥 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내 집터라도 유용하게 써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행동을 반성하며 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어."(대덕여고 1학년 김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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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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