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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무 作, 泉聲山色, 135×35×2cm
ⓒ 이재무
우현 이재무 서예전이 3월 30일부터 4월 5일까지 백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습윤함과 드라이(dry)함이 공존한다. 그것이 다양한 프리즘을 형성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초대전을 포함, 세 번째가 되는 이번 개인전에는 병풍 2벌을 포함하여 56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예서와 전서 작품이 많은 편이며, 한글 작품도 10여 점 된다. 해서와 행서 작품도 더하였다. 나열식보다는 공간을 활용한 작품을 많이 했고, 한문 글씨에 한글 협서를 다는 형식을 취한 작품도 있다.

소품을 많이 한 편이며, 작품지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흰 화선지 외에도 색지를 썼는데, 다양한 색상들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죽간이나 반구대 탁본했던 것에 작품한 것도 있다. 이는 전시장 자체를 아틀리에라고 생각하고 표구도 다양하게 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갑골문이 지닌 거친 기운 좋아해

작가는 중학교 1학년 때 소헌 정도준 선생을 만나 지도를 받게 되면서 서예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그렇게 출발한 작가의 학서(學書)는 대학을 거치고 서른네 살에 미협 초대작가가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혹 너무 일찍 꽃을 피워 조로(早老)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초대작가가 될 무렵 결혼을 했는데, 이전과는 다른 생활들이 이어지면서 시간을 많이 뺏기다 보니 전만큼 공부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이선경씨 개인전에서 이전과 달라진 작품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부터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건너뛰지 않고 공부를 하였지요."

그렇게 2년 반 가까이 공부를 지속하자 점차 탄력을 받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초대전 또한 적절한 긴장감을 준다며, 초대전 의뢰가 오면 적극 수용하는 편이라고 한다.

▲ 이재무 作, 養民, 40×70cm
ⓒ 이재무
작가는 중학교 때는 한글을 하였고, 대학교 때 한문을 시작하여 안근례비, 장천비, 예기비, 집자성교서를, 제대 후 양수리에 살면서 매일 첫차를 타고 십년을 인사동으로 출근하면서 산씨반, 광개토대왕비, 사신비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장맹룡비, 석문명 등도 더하였다.

중국과 수교 후 교류전과 학술토론회 등에 다니면서 작가는 중국 서예를 눈여겨봤다. 특히 행서에서의 자유스러움을 보았고, 여기에 자극받아 행서를 열심히 공부하게 됐는데, 미불의 자연스러움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1997년 중국 남경에서 개최된 국제갑골문대전에 각국에서 몇 명씩 초청되어 전시할 때 다양한 갑골문 작품들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작가는 갑골문이 지닌 거친 기운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 이재무 作, 自遣, 135×45cm
ⓒ 이재무
이재무씨는 석사논문으로 <조지겸의 예술연구>를 썼는데, 조지겸을 논문 대상을 삼은 동기도 질문해보았다.

"1992년, 대만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고흥박물관 부원장이었던 이엽상 선생의 사무실에 방문하였는데,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었어요. 그 가운데 조지겸의 작품이 있었는데, 그전에는 법첩을 보면서 조지겸의 작품이 특이하다는 정도로만 느꼈는데, 진적을 보면서 아주 자유스러운 맛을 받았어요.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 조지겸 연구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계기였지요."

그의 붓끝이 피워내는 꽃

이번 전시회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일까?

"서체에 대한 언급은 앞에서 했고, 획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칼칼한 맛을 살린 획을 구사하려고 하였고, 조형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구현하려는 것도 고려했고요."

이러한 측면은 평소 작품관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작품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글씨가 된다고들 해요. 그래서 깊숙이 박혔던 나쁜 마음들이 정화되면 자연스러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역으로 글씨를 씀으로 해서 마음을 정화시키는 훈련도 되는 것 같아요. 또한 처음과 끝이 똑같은 마음을 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향기가 나는 작품이라고 할까, 그러한 작품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완곡한 은유의 표현으로 자신의 작품관을 말해주었다. 청초의 비평가 김성탄은 '홍운탁월(烘雲托月)'의 화법(畵法)으로 인물 묘사의 묘미를 설명한 바 있다.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관을 '홍운탁월 화법'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목적은 작품에 있는데, 그는 작품에 임하는 평소의 태도를 언급하여 작품을 제대로 그려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 이재무 作, 種德, 34×66cm
ⓒ 이재무
작가의 작품집 편집을 할 때 어깨너머로 기웃거린 작품 가운데 대소, 강약, 윤갈이 대조와 조화를 이루어 강하게 눈길을 끈 작품이 있었다. <필두생화(筆頭生花)>. 붓끝에서 꽃이 피어날 듯이 아름답고 뛰어난 필력을 이르는 이 말은 마치 작가의 작품관을 집약해서 표현해 주는 듯한 느낌을 전해 받았다.

筆頭生花! 그의 붓끝이 피워내는 것이 어디 꽃뿐이고, 그 말이 어디 '문재(文才)'만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꽃'이라는 말에 담긴 깊고 무거운 의미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도 '花'한 글자로 작가의 심회를 충분히 담아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여겨졌다. 인터뷰를 통하여 전해 주려고 했던, 작가를 관통하는 작품관이 바로 '筆頭生花'가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서예가 우현 이재무씨는 건국대와 경기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하였고,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청년작가전에 5회 선발되었다.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한국미술협회 구리시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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