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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자리(벼룩이자리) 무침인데 사실 우리 집에선 먹지 않았다. 전북 장수지역 처가에서는 냉이 다음으로 쳐주는데 서로 차지하려고 야단이다. 된장과 고추장 조금씩 뒤섞어 살짝살짝 주물러주면 된다.
벌금자리(벼룩이자리) 무침인데 사실 우리 집에선 먹지 않았다. 전북 장수지역 처가에서는 냉이 다음으로 쳐주는데 서로 차지하려고 야단이다. 된장과 고추장 조금씩 뒤섞어 살짝살짝 주물러주면 된다. ⓒ 시골아이고향
산나물을 찾으러 간 사람이 아직 밭가상에 있다. 팍팍하여 산엘 오르지 못한 게 아니다. 다리를 절룩거려서도 더더욱 아니다. 들과 산 접경에 서성이는 이유는 양지바른 그곳이 가장 따뜻하여 무언가 파릇파릇한 싹이 가장 먼저 새살 돋듯 솔솔 피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아도 잡초가 있다. ‘지심’이라 하던 진짜 김 말이다. ‘짐’이라고도 했다. 논배미도 아니고 밭 가장자리도 아닌 밭고랑 한 가운데에서 어머니와 내 누이 그리고 나를 지질이도 힘겹게 했던 ‘이름모를 잡초’라 불린 풀이다.

아내와 두 아이가 쑥을 캐고 있는 왼쪽에 양판지심(별꽃)이 널려 있다. 밭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이 잡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쑥을 캐고 있는 왼쪽에 양판지심(별꽃)이 널려 있다. 밭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이 잡초다. ⓒ 시골아이고향
지난 가을 수확을 끝내고 난 뒤부터 한 겨울을 버티다가 4월 이제 곧 자잘한 꽃을 피울 예쁘지도 않은 천덕꾸러기다. 어찌나 짓궂은지 얄밉다 못해 귀찮다. 성가시다 못해 지긋지긋하다.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모른다. 똥구녁을 괭이나 호미로 파내서 밭두렁에 던져놓아도 말라비틀어지는가 싶어 안심하고 있으면 봄비 찰랑찰랑 맞고는 땅과 호흡을 하는 건지 지네들끼리 따로 교신을 하는 건지 죽은 듯 있다가 다시 두 발, 두 팔을 한껏 벌려 미친 개떼처럼 잘 매놓은 밭을 점령하고 마는 웬수같은 존재다.

이름하여 양판지심과 벌금자리다. 둘은 서로 구분조차 쉽지 않다. 가운데 딱딱한 심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흐느적거리며 퍼진다. 양판지심이 논보리밭에도 있는 것과 달리 벌금자리는 밭에 있는 게 다를 뿐이다. 여기에 찹쌀뱅이와 좁쌀뱅이가 가세하면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파 밭을 차지하고 있는 벌금자리가 밉지만 어쩔 수 없다. 괭이로 바닥을 파서 엎어주는 수 밖에...이것마저 나물이라니!
파 밭을 차지하고 있는 벌금자리가 밉지만 어쩔 수 없다. 괭이로 바닥을 파서 엎어주는 수 밖에...이것마저 나물이라니! ⓒ 시골아이고향
이들을 처치하지 않고서 따사한 봄 말끔한 밭뙈기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농사를 손톱만큼도 모르는 사람이다.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엉겨 붙어서 손으로 뽑은들 사람을 비웃으며 잔디뿌리보다 더 질기게 여름이 될 때까지 농민 일손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독세기 풀이라면 제 혼자 자라지만 이놈들은 넝쿨이 지므로 작물을 칭칭 감지를 않나 포위하여 더 이상 크지 않도록 감싸 자라지 못하게 한다. 밭농사 짓는 사람들에겐 적이다.

봄철에 이 세 놈들만 없어도 품이 줄어 논에 더 신경을 써서 우리 어릴 적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수확거리인 벼에게 공을 들였을 테지만 까딱도 않으니 너희는 우리 모두의 공적 - ‘공공의 적’임이 분명하다.

보리 논을 뒤덮었던 독세기가 파릇파릇 살아났다. 외떡잎식물이라 따로 크며 논에 물을 잡으면 죽고마니 보리에겐 해를 끼치지만 곧 정상화되어 다행인 잡초다.
보리 논을 뒤덮었던 독세기가 파릇파릇 살아났다. 외떡잎식물이라 따로 크며 논에 물을 잡으면 죽고마니 보리에겐 해를 끼치지만 곧 정상화되어 다행인 잡초다. ⓒ 시골아이고향
양판지심은 양푼처럼 널찍하게 짝 깔려 있다고 우리들 어머니 아버지가 밭 매면서 붙인 이름이다. 이제 나물 이야기를 해야 할 참이니 조금이라도 친해지기 위해서 별꽃이라 하자. 별꽃이라고 한들 서양 수학자, 천문학자처럼 육각모양 ☆이나 ★로 할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우리가 별꽃이라 부르는 건 꽃받침이 여러 개 있지만 가까이서 보아도 하늘에 떠 있는 육안으로 본 별 모양을 닮아 거의 식별이 되지 않아서 그런다. 대충보아 별 모양인 게지 진짜 별 모양과는 상관이 없다.

허나 앞에서 분명 나물이 아니라 잡초라 했다. 잡초다보니 우리가 즐겨 먹지 않던 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가 먹었을까? 소다. 송아지가 주로 먹고 염소가 주인 몰래 뜯어 먹던 풀이다. 소도 뿌리째 캐와 삼태기에 담아 냇가에서 흔들어 흙을 털고 입맛이 떨어졌다고 하면 짚여물에 조금씩 섞어 풋내를 느껴보라고 한 꼴에 해당될 뿐이다.

잎이 큰 것이 꽃다지 나물이고 촘촘히 붙어 있는 건 찹쌀뱅이 또는 좁쌀뱅이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가장 먹고 싶은 곡물 이름을 붙였을까 보냐. 아, 서러운 시절이여!
잎이 큰 것이 꽃다지 나물이고 촘촘히 붙어 있는 건 찹쌀뱅이 또는 좁쌀뱅이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가장 먹고 싶은 곡물 이름을 붙였을까 보냐. 아, 서러운 시절이여! ⓒ 시골아이고향
이제 벌금자리 차례다. 벌금자리는 양판지심보다 줄기와 잎이 더 얇고 작다. 쌀보리와 겉보리 알갱이 배부름의 차이로 보면 된다. 그래서 벌금자리를 ‘벼룩이자리’라 한다. 줄기와 잎이 거의 구분이 되질 않고 가느다란 실에 벼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다. 여기에 빛깔이 약간 하늘을 더 본 듯 옅은 보랏빛이 감돈다.

좁쌀뱅이나 찹쌀뱅이나 사람마다 달리 부르지만 이 두 가지는 같다. 역시나 사람들이 나물로 쳐주지를 않는다. 응당 알 턱이 없다. 벌금자리와 양판지심보다 전체 크기가 현저히 작은데, 배고픈 시절 밥그릇에 말라붙은 밥알이 촘촘히 눌러 붙어, 꼭 빠삐용이 이(虱)를 잡을 때처럼,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도록 다소 도톰하여 씹어보고 싶다.

참, 지금껏 나는 나물을 말하면서 잡초, 김, 지심 이야기만 했다. 우리나라에 나는 나물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물 같지도 않은 것이 나물이요, 우리가 전혀 알아주지 않는 풀도 나물이라는 걸 말하고자 먼 길을 돌아왔다.

냉이 옆에 양판지심이 깔려 있다. 이른 봄 소에게 무척 많이 먹였다.
냉이 옆에 양판지심이 깔려 있다. 이른 봄 소에게 무척 많이 먹였다. ⓒ 시골아이고향
이 세 가지는 모양이 거의 닮았다. 이 천덕꾸러기들을 뿌리만 잘 떼어 둘둘 걷어 집으로 가져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잡초, 즉 풀이 이제 밥상으로 올라갈 차례다. 밥이 부글부글 끓어 뜸이 들여지는 동안만 작은 수고를 해도 된다.

먼저 찹쌀뱅이, 좁쌀뱅이는 잘 씻어서 두어 번만 썰어 냉잇국에 함께 넣으면 향도 그만이고 씹히는 맛도 보통이 아니다. 고깃국을 먹은 느낌이랄까. 뭔가 먹었다는 기분이 들고 된장국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다음으로 벌금자리는 다소 크므로 손으로 뚝뚝 찢어 여러 갈래로 나눈 뒤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버무리고 나서 주무르니 훌륭한 나물 반찬이 뚝딱 마련되었다.

끝으로 양판지심 별꽃은 벌금자리보다 물기가 더 많고 잎이 더 크고 무르기 때문에 고추장 양을 더하여 버무리면 이 또한 봄나물이다. 여기에 벌금자리와 양판지심은 된장국으로 끓여도 봄 내음 가득하다.

2월 15일 경에 경동시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디서 온 걸까? 냉이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는 전부 먹어서 하등 도움이 안 될 하우스 재배로 올라온 나물이다. 취나물이 제아무리 좋기로서니 제철 아니면 먹지 말며, 난 차라리 풀, 잡초를 먹겠다.
2월 15일 경에 경동시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디서 온 걸까? 냉이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는 전부 먹어서 하등 도움이 안 될 하우스 재배로 올라온 나물이다. 취나물이 제아무리 좋기로서니 제철 아니면 먹지 말며, 난 차라리 풀, 잡초를 먹겠다. ⓒ 시골아이고향
자, 밖으로 나가자. 가장 흔하게 깔린 게 나물이지만 산에 들에 쏘다닌들 아직 철이 아니다. 제철인들 이게 나물인지, 독초인지, 극약인지 모르잖은가? 어릴 적 소나 염소가 뜯어먹은 걸 본 기억이 있다면 그건 필시 나물이다. 들에 널려 있는 잡초라 무시하지 말고 거둬오면 시장에서 사온 냉이, 달래, 돌나물에 비할까?

이네들은 최소 6개월 동안 눈을 덮어쓰기도 하고 모진 바람과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한데에서 겨울을 났다. 가장 오래 세파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향마저 지극하다. 1차로 작년 고추밭으로 가면 꼭 만나게 되리라. 참 같잖은 풀이 마음을 고쳐먹으니 나물이라니!

벌금자리로 된장국을 끓였다. 냉잇국이나 쑥국처럼 무를 얇게 쳐서 넣으면 여느 나물국 못지 않다. 씹히는 감도 역시 좋았다.
벌금자리로 된장국을 끓였다. 냉잇국이나 쑥국처럼 무를 얇게 쳐서 넣으면 여느 나물국 못지 않다. 씹히는 감도 역시 좋았다. ⓒ 시골아이고향
어디 처음부터 나물이라고 정해진 게 있었겠는가. 먹어보니 별 탈이 없어서 자주 먹게 되니 나물이 되지 않았겠는가. 조상 대대로 차곡차곡 쌓인 정성과 여러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껏 몸에 좋다고 먹으니 더 없는 반찬으로 다가온 것이리라.

아, 그나저나 좀이 쑤셔 더 이상은 서울 집에 갇혀 살기가 싫다. 조금만 집 밖으로 걸어 나가면 될 것을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라니….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고향☜ 에 놀러 오십시오. 향기 가득한 나물과 고향의 맛, 멋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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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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