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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의 이동통신 대리점 자료사진. 30일 찾아간 이 곳에서 신규 고객과 기기변경 고객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서울 용산의 이동통신 대리점 자료사진. 30일 찾아간 이 곳에서 신규 고객과 기기변경 고객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 윤지로

"번호이동하세요. 더 깎아드릴께요."

새로운 휴대전화 보조금제 하에서도 신규가입 고객과 기기변경 고객 사이의 차별은 여전했다.

30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아가 "보조금이 너무 적어서 전화 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 때다' 싶었는지 판매점 직원은 번호이동을 권했다. "이동통신사를 옮기면 약관에 명시된 보조금 외에 10만원 가량을 더 주겠다"는 '당근'도 내걸었다.

그러면서 이 직원은 단속을 의식한 듯 "어디 가서 보조금 더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번호이동하면 보조금 더...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다른 매장으로 가서 삼성전자 애니콜 모델을 집어들고 "이 모델도 보조금이 지급되냐"고 물었다. 삼성전자가 직접 유통시키는 휴대전화에 대해 SK텔레콤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혹시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SK텔레콤은 삼성전자·LG전자·팬택·모토로라 등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가입자 한 명당 2만5000원의 보조금을 부담하도록 요구했지만 삼성전자만이 이를 거부해 양사간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다.

판매점 직원은 "우리는 삼성전자에서 직접 받은 휴대전화가 없다"며 "애니콜도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직접 일선 대리점에 공급한 휴대전화 수량이 적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보조금 제도가 시행되면서 정보통신부가 "신규고객과 기기변경 고객에 대한 차별을 강하게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현장에서는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일선 대리점과 판매점들이 정해진 보조금 이외에 신규 가입자 유치 수수료나 유통 마진을 불법 보조금으로 전용하는 등 혼탁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대리점들이 유통 마진을 포기해가면서까지 고객 붙들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합법적인 보조금 액수가 소비자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쳐 휴대전화를 사러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한 판매점 직원은 "휴대전화 바꾸러 왔다가 예전보다 더 비싸진 가격에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올 들어 보조금을 기다리는 대기 수요로 장사를 못 했는데 보조금이 허용되고 나서도 이러니 한 명이라도 더 붙잡으려면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진 포기하는 대리점들 "그동안 장사 못했는데 한 명이라도 더..."

ⓒ 오마이뉴스 이승훈
실제로 이날 용산 전자상가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들이 이통사들의 불법 보조금에 익숙해져 버린 결과다.

대학생 윤세원(22)씨는 "쓸 만한 휴대폰들은 모두 50만원 이상이라 보조금을 10만원 가량 받는다 해도 40만원이 든다, 구입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3월 초쯤 친구가 60만~70만원 하던 위성DMB을 단돈 10만원에 샀을 때 나도 구입할 걸 그랬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들이 그동안 경쟁사의 가입자를 뺏기 위해 마구 뿌려대던 불법 보조금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 꼴이다.

대학생 최정(24)씨는 "이번 보조금 제도가 장기 가입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들었는데 대리점들을 돌아보니 역시 '번호이동을 해야 더 할인해주겠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며 "처음엔 쌓여있는 마일리지를 생각해서 기기변경만 하려고 맘 먹었는데 휴대전화 가격이 만만치 않아 번호이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휴대전화 가격, 여전히 비싸다"

쥐꼬리만한 기기변경 보상금도 불만을 사고 있다. 쓰던 휴대폰을 반납할 경우 SK텔레콤은 3만원, KTF는 2만원을 보조금 외에 추가로 지급하고 LG텔레콤은 보상금이 없다.

대학생 김정원(25)씨는 "차라리 휴대전화를 반납하지 않고 중고폰 시장에서 직접 파는 것이 낫겠다"며 "이번에 이통사들이 주겠다는 보조금은 기존의 기기변경 보상금을 조금 올린 수준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씨는 "이통사들의 보조금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좀더 기다려 보는 게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보조금 지급이 시작된 후 3일 동안 이동통신사들이 지급한 보조금 액수는 130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SK텔레콤이 70억여원, KTF가 50억여원, LG텔레콤이 12억여원 등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예상보다는 이동전화 시장의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급되는 보조금 규모에 실망한 소비자들은 지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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