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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많이 분 날 찍은 최근의 갑비 모습
바람 많이 분 날 찍은 최근의 갑비 모습 ⓒ 이승숙
우리 집에 온 갑비

남편을 많이 따랐던 '진욱'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진욱이가 그러더란다.

"선생님 개 좋아하시죠? 우리 집 풍산개가 임신했는데 나중에 새끼 한 마리 드릴까요?"

가을 해가 설핏 기울어가던 휴일날 오후에 마당으로 멋진 차가 한 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는 진욱이 어머니 가슴에는 아주 튼실한 강아지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황갈색 털이 북슬북슬하게 나 있었고 다리통 하나가 내 종아리만큼이나 될 정도로 아주 실한 놈이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그 개가 풍산개인 줄 알았다. 풍산개는 강아지 때부터 저렇게 크고 잘 생겼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삽살개란다. 삽살개라니 이름으로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풍산개는 원래 이렇게 큰가 봐요?"
"아유 풍산개 아니에요. 삽살개예요."
"아니 그럼 그 귀하다는 삽살개예요? 이 귀한 삽살개를 저희 주시고... 고마워서 어쩌지요?"
"선생님이 개를 좋아하신다니 저희도 기쁜 마음으로 드립니다. 아무리 개라고 하지만 아무에게나 줄 수는 없잖아요. 진짜로 개를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한테 드려야죠."

그 당시에 남편은 개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우리 집에는 진돗개를 비롯해 호랑이 무늬의 호구 개까지 하여튼 4~5마리 정도 키우고 있었다. 시골인지라 대부분 학생 집에는 개가 있었고 그래서 남편은 개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과 친밀감을 도모할 수 있었던 때였다.

2003년 여름, 벌써 털이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2003년 여름, 벌써 털이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 이승숙
갑비는 처음부터 내 마음에 딱 들었다. 대개 강아지는 천방지축으로 설치게 마련인데 갑비는 아주 점잖았다. 거실 유리문 앞에 내려놓았더니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이야기 나누는 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족보도 있는 갑비

갑비는 삽살개 보존회에서 발행한 혈통서도 있는, 족보 있는 개였다. '사단법인 삽살개 보존회'에서 내준 혈통서에는 갑비의 모계와 부계의 고조부 대까지 내력이 다 들어 있었다. 그리고 갑비의 출생 연월일도 들어 있었다. 우리 갑비는 2002년 8월 24일생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온 날은 그 해 10월 26일이었다.

삽살개보존회에서 발행해 준 갑비의 혈통서
삽살개보존회에서 발행해 준 갑비의 혈통서 ⓒ 이승숙
갑비는 아주 순하면서도 영리한 개였다. 그때 우리 집에는 갑비 이외에도 여러 마리가 있었는데 갑비는 자라서 어른 개가 되었어도 자기보다 작은 개들한테 한없이 너그러웠다. 다른 개가 새끼를 낳아서 그 강아지들이 좀 자라면 갑비가 보모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놀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어린애들한테도 아주 순하게 대했다. 한 번도 으르렁대거나 그러지 않았고 애들이 아무리 귀찮게 해도 그냥 가만히 있어 주었다. 또 우리 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짖다가도 일단 주인이 아는 체를 하는 사람에게는 짖지 않았다.

우리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집 주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갑비가 짖는 소리로 사람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매일 오는 집배원인지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다.

무료할 때면 자주 산을 찾았는데 갑비만 있으면 혼자서 산에 가도 무섭지가 않았다. 갑비는 항상 내 근처에 있었고 나보다 대여섯 걸음 정도 앞장서서 걸어갔다. 먼저 가다가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가만히 서서 기다리다가 내가 보이면 다시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 산에 가도 무섭지 않았고 저녁 무렵에 산에 가도 두렵지 않았다.

2004년 10월 강화도 진강산에서
2004년 10월 강화도 진강산에서 ⓒ 이승숙
천연기념물 368호 삽살개

삽살개는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개다. 신라 시대에는 황실에서 키울 정도로 대우를 받던 개였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액을 물리쳐 주는 개라고 해서 삽살개를 곁에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삽살개도 수난을 당하게 된다. 일제는 만주국 군인들을 위한 방한용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털이 긴 삽살개를 마구 잡아들였다. 그래서 삽살개는 멸종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삽살개를 다시 복원해내고 육종시켜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데, 갑비가 우리 집에 올 당시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로 우리나라엔 삽살개가 3천 마리도 안 되었다.

삽살개를 가만 들여다보면 눈이 참 예쁘다. 검은색 아이섀도를 짙게 칠한 것처럼 눈가가 까맣고 고혹적이다. 그리고 혀 색깔도 참 곱다. 분홍색이 선명한 혓바닥을 내밀고 달릴 때 보면 검은 그 눈과 분홍색 혀가 색깔의 대비를 이루면서 너무나 선명하게 아름답다. 또한 자라면서 점점 털이 길어지고 탐스러워져서 나중엔 눈을 덮을 정도가 된다.

2003년 어느 날의 갑비.
2003년 어느 날의 갑비. ⓒ 이승숙
삽살개를 데리고 다니면 설치지 않아서 좋다. 주인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지 개가 주인을 이끌고 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날뛰는 개들도 있는데 삽살개는 행동이 점잖다. 그리고 사람에게 아주 순해서 반려동물로 좋다. 그렇게 덩치가 큰 개가 항상 내 근처에서 머물면서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니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삽살개는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물로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갑비는 지난 여름 이후로 물 구경을 못했다. 그래서 털이 엉키고 부스스하다. 그나마 낮에는 묶여 지낼 때가 많고 마음대로 뛸 수 있는 시간은 주인인 내가 들길로 산책하러 나가거나 달리기할 때밖에 없다. 그래서 갑비는 내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온몸으로 반긴다.

다시 봄이 왔다. 겨우내 추워서 옹송그리고 살았는데 봄과 함께 다시 걷고 달려야겠다. 갑비에게도 달릴 기회를 줘야겠다.

2003년 12월. 마당에서 뛰어노는 갑비
2003년 12월. 마당에서 뛰어노는 갑비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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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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