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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저항사>와 같은 민중사를 저술한 미국의 걸출한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 그는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대표적인 비판적 참여주의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희곡을 썼다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학자가 쓴 희곡이라? 학자의 냉철함이 담겨진 희곡일까?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는, 마르크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노드라마(1인극)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오명을 씻기 위해 저승사자들을 부추겨서 현대 뉴욕으로 찾아온다는 설정이다. 이 희곡에서 등장하는 마르크스는, 역사상 실존 인물이자 동시에 현대 뉴욕으로 불쑥 튀어나와 자본주의의 실상을 비판하는 하워드 진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우선 역사상 실존 인물로서의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되는 대목을 살펴보자. 책에는 마르크스의 가난한 생활과 부인 예니와 딸들이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고, 부인 예니는 하녀 렌첸을 둘러싸고 불만을 늘어놓는다. 또한 예니는 마르크스의 훌륭한 저술 조업자로 등장한다.

혁명가로서만 그려졌던 마르크스 또한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워드 진은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를 마르크스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예니가 저술 조업자로 등장하는 대목은 하워드 진의 현재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하워듸 진의 부인 로즐린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역사극에서 멈춰있던 하워드 진의 극을 현대와 접목시키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그의 부인이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노동자 계급 출신인 하워드 진은 어린 시절에 이미 동네의 공산주의자가 권해서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공산당 선언>을 읽고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마르크스의 예견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으로 자본의 이동이 가능해질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하워드 진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재미있는 대목은 저자가 무조건 마르크스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제1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와 가장 심하게 사상투쟁을 벌였던 바쿠닌을 등장시켜 아나키즘에서 마르크시즘을 바라보기도 한다. 소비에트연방이 마르크스가 바라던 사회주의 공동체가 아니라 경찰국가였다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의 저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소련은 타락한 국가자본주의'라고 말해 하의드 진의 비판과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그의 실제 삶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한 비판적 지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 비해서 이 희곡은 값지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을 쉽게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하고 1인극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연극적 요소들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희곡이라는 장르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마르크스가 뉴욕에서 살면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그야말로 '극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대중들에게 더 설득력 있고 흥미 있지 않았을까?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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