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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흔히 사람들은 봄을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로 알고 있지만 봄은 사실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봄의 숲길엔 여전히 지난해 한해살이를 마감한 낙엽들이 길의 채색을 이끈다. 그래서 그 길의 주된 색조는 갈색이다. 자연이 생을 마감하고 나면 그 자리는 텅비거나 아니면 갈색으로 변색된다. 봄은 그 죽음이 여전히 완연하게 남아 있는 계절이며 초봄에는 그 빛이 더더욱 완연하다.

생각해 보면 잎은 푸르게 살아 있을 때면 오히려 말이 없다. 바람이 흔들어도 그냥 몸만 내 맡길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생이 마감되면 그때부터 잎은 끊임없이 바스락거리기 시작한다. 봄철의 날씨가 많은 주의를 요할 정도로 건조해지면 더더욱 그 바스락거림은 커진다. 살아 있을 때 삶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었던 잎은 죽어서 비로소 입을 열며 때문에 숲길을 갈 때면 잎들의 속삭임이 그득하다.

ⓒ 김동원
가지 끝을 떠나 땅으로 떨어진 도토리 한 알이 여전히 속을 채운 채 가랑잎 사이에 앉아 있었다. 속이 찬 도토리는 작아도 충만으로 가득하다. 충만은 원래 우리가 수확의 자리에서 거두는 기쁨이지만 수확의 시기를 지나고 나면 그 충만은 마감된 생의 다른 이름이 된다. 봄에는 그렇게 지난 가을에 마감된 생이 여기저기 그대로이다. 사람은 죽으면 마감된 생을 우리 사는 곳에서 멀찌감치 치워놓지만 자연은 삶이 있던 자리에 죽음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 김동원
그러나 봄엔 그 자리에서 이제 생명이 움을 틔워 올린다. 마감된 생이 온통 갈색인 반면 새롭게 움을 틔우는 생명의 채색은 그와는 완연히 다르다. 생명의 채색은 푸르다.

ⓒ 김동원
봄철에 처음 피는 잎은 여리다. 바람만 불어도 상처받을 것처럼 여리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갓 태어나는 것이 여리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여린 아이가 태어나 울음으로 제 생명을 알렸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잎의 연둣빛은 어찌 보면 가지 끝에서 색깔로 피어나는 아이의 울음과 같다. 그러니까 봄에 피는 연둣빛 여린 잎은 그냥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응애"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 김동원
그렇다고 생명의 채색이 연둣빛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진달래나 철쭉의 나뭇가지 끝에서 생명의 채색은 짙은 분홍빛으로 몽우리를 잡는다.

ⓒ 김동원
연둣빛이 가장 생명감에 가까운 색깔이긴 하지만 사실 그 빛은 모든 이파리의 공통된 색이어서 그렇게 이파리로만 봄을 칠해가면 채색이 너무 단조롭게 될 것이 뻔하다. 우리가 그런 단조로움을 염려할 때 그 염려를 접어주는 것은 역시 꽃이다. 꽃들은 연둣빛의 단조로운 봄을 화려한 컬러로 치장해준다. 생강나무는 노란꽃으로 화려한 봄의 치장에 동참한다.

ⓒ 김동원
그러나 모든 꽃이 봄을 치장하기 위해 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제비꽃이 그럴 것 같다. 제비꽃은 제비가 돌아오기 전에 먼저 핀다. 제비를 맞으려면 제비보다 늦을 순 없다. 그러니까 제비꽃은 봄을 치장하려 핀다기보다 제비를 마중 나가려는 마음이 급할 때 그 자리에서 피는 꽃이다.

ⓒ 김동원
봄에는 그렇게 죽음과 삶이 한자리에 있다. 그러나 눈여겨보면 그 죽음과 삶은 그저 자리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음이 삶을 밀어올리고 있다. 이 봄에 낙엽의 한가운데서 파랗게 삶을 시작하는 이름 모를 풀의 생명은, 사실은 그 밑거름이 지난가을 삶을 마감한 낙엽들이었다. 봄은 죽음과 삶이 그냥 한자리에 있는 계절이 아니라 죽음이 삶을 일깨우는 계절이다.

ⓒ 김동원
봄에는 심지어 돌도 생명을 얻는다. 사람들이 숲을 지날 때마다 돌을 하나둘 쌓기 시작하고, 그러면 돌은 나무처럼 자라기 시작한다. 돌탑이란 돌이 생명을 얻어 자라기 시작하는 일종의 나무이다. 그러니 겨울엔 돌탑을 돌탑이라 부르더라도 봄에는 그것을 돌탑이라 부르지 말고 돌나무라 불러볼 일이다.

ⓒ 김동원
봄에 생명감을 얻는 것이 어디 돌뿐이랴. 논과 밭도 꿈틀대기 시작한다. 혹자의 눈엔 그저 논과 밭을 갈아엎어 놓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사실 그것은 겨우내 대지로 납작 엎드려 조금의 요동도 없이 겨울을 난 논과 밭이 이 봄에 드디어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기 시작하는 생명의 몸짓이다.

승재씨에게 물었더니 이곳의 마을 이름이 숲속산새마을(김포 고양2리)이라고 했다. 산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그 숲속산새마을에서 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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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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