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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앞으로 금융조사부에서 하는 수사에는 구형을 많이 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24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 검사실. 기자간담회가 한참 진행되던 도중 한 기자가 전날(23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던진 질문입니다.

기사를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천 장관은 전날 '유전무죄, 전관예우 청산과 시장경제 바로 세우기 토론회'에 참석해 "관대한 법 집행이 우리 기업과 경제를 병들게 해왔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분식회계를 한 대우그룹에 대한 사법처리 결과를 두고 한 말이죠.

"지난해 미국에서는 110억 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월드컴의 최고경영자에게 25년의 중형이 선고됐지만, 한국에서는 대우그룹 분식회계 규모가 미국 월드컴에 비해 훨씬 컸어도 사장 한 사람이 5년형 선고받은 게 고작이다."

천 장관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는 것은 사법양극화를 완화하고 양형평등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죠.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가 바로 화이트칼라 범죄를 다루는 곳 입니다. 금조부는 3차장 검사 산하에 있구요.

"수사하면서 경제 걱정하면 수사가 되겠습니까?"

이인규 3차장 검사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이 언제 구형을 약하게 하는 것 봤느냐"며 "검찰의 구형대로만 했으면 지금도 감옥에 들어가 있는 재벌 관계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구형'이라 함은 검사가 피고인에 대한 조사가 끝난 뒤 구체적 형벌의 종류나 분량에 관해 의견을 진술하는 것으로, 법원에서는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정색하고 답했던 이 차장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뜸 기자들에게 반문을 해왔습니다.

"(검찰) 수사와 경제, 수사와 정치, 수사와 국익…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기자들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아닌가요?"라고 입을 뗐구요.

이 차장은 "불가분이요?"라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기본적인 생각은 각자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수사하면서 경제 걱정하면 수사가 되겠습니까?"

"그럼, 법원은?" 한 기자의 꼬리 질문이 이어졌고, 이 차장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듯 "법원도 나름대로 그런 원칙이 있겠지요"라고 질문을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지금은 검찰을 나가셨지만, 예전에 특수부 수사를 잘해서 이름을 날리던 검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한번은 일본에 가서 일본 검찰 특수부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분이 특수부장에게 '수사를 하다 보면 경제에 여러가지 영향을 미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특수부장 답변이 '그런 것을 왜 우리가 고려합니까? 수사만 잘하면 되죠'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도 머쓱해졌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이인규 차장의 다음 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검찰이 불행한 조직임에은 틀림없습니다. 정치권에서 자기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여기로 가져와서…."

최근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 사건에 대한 한나라당의 고발 건이나, 이명박 서울시장 '황제 테니스' 파문에 대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고발 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입니다.

흔히 법조계에서는 이런 경우에 '검찰이 수사를 잘해도 욕 먹고, 못해도 욕 먹는다'는 말을 하지요. 어떤 수사 결과가 나온들, 상대 정당이 인정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불행한 검찰'에 대한 이 차장의 설명이 더 이어집니다.

"여러분도 잘 알지 않습니까. 하여간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서로 엄청나게 맞고소를 합니다. 수십 건씩 맞고소를 해놓고 나중에 서로 또 합의해서 고소를 취하합니다.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서 자기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여기로 가져와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습니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기자 "황우석 사건 수사는 연구비 수사까지 포함해서 발표하나요?"
이인규 차장 "아직 결정 안 했습니다. 수사 결과를 보고… 연결이 가능한 지를 보고 판단해야지요."

기자 "연구비에 대한 수사 기간은 얼마나 잡고 있습니까. 황 교수의 계좌만 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일부러 수사를 천천히 하는 것 아닙니까?"
이인규 차장 "천천히 하는 것 아닙니다. (황 교수에 대한) 계좌추적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주 말쯤이 되면 수사자료를 정리하는 팀만 놔두고 (나머지 검사를 투입해) 그 수사는 빨리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이 때 한 기자가 이 차장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수사는 정치, 경제 중에서 어떤 것과 연관이 되나요?"

표정이 굳어진 이인규 차장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끝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요. 경제라기보다는… 국민들이 첨예하게 반응하는 게 신경이 쓰입니다. 정치 문제도 아니고…. (황 교수가) 학자로서는 어제(23일) 끝난 것 아닌가요. 최고 과학자 자격도 박탈됐고, 더 이상 줄기세포 연구도 못하고…."

곤혹스러움이 뭍어나는 답변이었습니다.

황우석 수사 발표, 왜 미적댈까?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가 곧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아직 검토 중"이라는 검찰의 답변만 반복될 뿐입니다.

검찰은 극구 부인하지만, 이미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끝났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습니다. 그럼 수사한 그대로 발표하면 될 일인데, 왜 검찰은 수사 발표를 미루고 있을까요?

황우석 교수에 대한 처리 문제를 두고 '국민이 첨예하게 반응하는 게 신경이 쓰인다'는 이인규 차장의 말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찰은 불행한 조직이다.' 이 차장이 탄식처럼 내뱉었던 이 말에 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다가도, 황 교수 사건 수사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검찰을 불행하게 만드는 '주범'이 혹시 검찰 자신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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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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