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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화가 김영수(53)씨와 부인 이강경씨. 노모와 어린 딸, 그렇게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 이 부부를 보며 나는, 장애가 절대 인간의 자유의지만큼은 구속할 수 없다는 숙연한 진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했다.
구필화가 김영수(53)씨와 부인 이강경씨. 노모와 어린 딸, 그렇게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 이 부부를 보며 나는, 장애가 절대 인간의 자유의지만큼은 구속할 수 없다는 숙연한 진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했다. ⓒ 이동환
구필화가였다. 근육병 진행 중임에도 붓을 입에 문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김영수씨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구필화가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림 먼저 반해 찾게 된 화가가 목 밑으로는 거의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당황했다. 만나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 약속을 정하고 월요일(20일), 부랴부랴 화가 자택을 방문했다.

그림으로 다시 찾은 인생

김영수씨는 고려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스물한 살 때 근육병이 발병(1974년)했다. 젊은 그에게 그 사실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고통과 상심을 딛고 그는 힘겹게 대학을 졸업(1977년)했다. 하지만 건축학도로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음을 깨닫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구원은 있었다. 그림이었다. 화가가 꿈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1978년) 추계예술대 오수환(현재 서울여대교수) 교수로부터 3년여 동안 서양화를 배웠다.

ⓒ 김영수
김영수 : "1982년에 결국 근육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습니다. 치료는커녕 더 나빠진 몸으로 3년 후 귀국했습니다. 근육병 진행으로 손도 못 쓰게 되어 한 7년여 그림을 그릴 수 없었지요. 그 때가 제 생애 가장 힘든 어둠의 시간이었던 듯싶습니다. 1986년부터 손으로도 더는 그림 그리기 힘들어지자 판지를 뜯어내는 작업으로 그림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했습니다."

진행성인 근육병은 나날이 그의 몸을 마비시켰다. 그림마저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포기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릴 무렵(1992년) 설상가상, 결혼까지 염두에 두었던 여인이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를 그쪽 집안에서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그는 우연히 TV를 통해 한 여성 구필화가를 보게 되었다. 그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줄기 빛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김영수 :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사실 그 이전이었습니다. 성경공부 그룹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정도의 사이였는데 운명이었는지, 혼자 남겨진 제게 연민을 느꼈는지 아무튼(웃음)…, 결혼을 하게 됐지요. 제가 입으로나마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된 바탕에 언제나 아내의 그림자 같은 내조가 있답니다."

김영수씨는 이미 세 번의 개인전(95, 99, 04)과 150여 차례의 그룹전을 연 화가다. 첫 번째는 추상화를 선보였고 두 번째는 포천에서 시골생활하면서 접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풍경화, 그리고 세 번째는 누드크로키를 위주로 대중과 만났다. 지난 2000년부터 '선사랑'이라는 장애인 누드크로키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월 두 번씩 모델을 섭외해 함께 그림을 그린다. 장애인으로서 벌이기 힘든 행사를 그는 벌써 7년째 계속하고 있다.

김영수 : "저를 가르쳐 주신 오수환 선생님께서 항상, '그림을 농사짓듯 그려라'하고 말씀하셨지요. 그전엔 이 말씀을 단순히 꾸준하게 작업하란 것으로 이해했었지요. 예술이라는 게 영감이 몰아칠 때가 분명 있지만, 농사꾼처럼 꾸준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그리는 사람만이 그 영감을 받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나이 오십 넘어서면서 이제야 그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 6월, 네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화가 김영수씨는 대화를 나눠볼수록 참 옹골진 사람이다. 목 밑으로는 거의 움직이기 힘들지만 또, 계속 진행되는 병이기 때문에 점점 힘들어질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에게 그림은 곧 목숨이며 사랑하는 가족 앞에 가장으로서 떳떳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김영수씨의 그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독자들을 위해 이전 그림들 몇 점 모아 사이버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에 그는 한참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겸허와 부끄러움에 빠지게 만든 그의 그림을 온라인이나마 소개할 수 있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화가 김영수의 사이버 전시회

ⓒ 김영수
지난 2004년. 세 번째 개인전을 열 때 홍보책자 표지에 실었던 그림. 바로 이 그림이 내가 누드크로키 검색 중에 발견한, 나도 모르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그림이다. 먹과 수채를 이용한 과감한 필치도 필치려니와 절제된 욕망이 검붉은 색조로 아스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 김영수
22일(수)부터 28일(화)까지 인사동 소재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리는 그룹전 '새로운 바람'에 출품한 작품. 고전적 누드의 본류를 거부한 선과 색조의 파괴는 누드크로키의 또 다른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 김영수
왼쪽 : 잔뜩 번진 검정과 녹색 배경에 기댄 나부. 터질듯 풍만한 몸에 드리운 회색 그림자가 왠지 서늘하다. 오른쪽 : 어그러진 선 처리를 통해 작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한자유가 아닐까?

ⓒ 김영수
왼쪽 : 토르소(몸통만으로 된 조각상)를 보는 듯하다. 마른 몸과 불거진 갈비뼈들 사이로 소녀의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오른쪽 : 일상에 지친 여인의 휴식? 유난히 긴 등이 생경한 외로움으로 비친다.

ⓒ 김영수
왼쪽 : 눈 쌓인 계단과 교회당 빨간 지붕. 겨울풍경이 꼭 쓸쓸하지는 않다. 오른쪽 : 1982년에 그린 '복도 저 끝'이라는 작품. 근육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야 하는 답답한 화가의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 김영수
왼쪽 : 1995년 작품 '솟대' - 누구나 희망을 떠올리는 솟대. 작렬하는 태양과 오후의 뜨거운 대기 속에 말없이 서 있는 말라버린 나무, 새 한 마리. 화가는 솟대를 보며 어떤 희망을 품었을까. 오른쪽 : 판지화 '자화상' - 탁자를 짚은 맥없는 손등이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실제 나는 김영수씨와 헤어지며 맥 놓은, 그러나 굳센 그의 손등을 뭉클한 마음 담아 잡아보았다.

ⓒ 김영수
왼쪽 : '나무와 새', 오른쪽 : '빛과 어둠' - 작가 일기에 김영수씨는 '인간의 어떤 장애도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킬 수 없으며 모든 장애는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 그림은 영혼으로 그리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 김영수
벗은 군상의 욕망이 적나라하다. 성적 욕망을 떠나 우리 모두 일평생 헛된 욕망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은 아닌지. 돈, 명예, 권력…, 결국 헐벗은 욕망이요, 세속의 값싼 굴레는 아닐지, 과감하게 생략된 선과 번진 무채색 속에서 언뜻 그런 감상이 인다.

덧붙이는 글 | 바로가기 클릭 ☞ 화가 김영수 사이버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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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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