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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후임 총리 인선 '기상도'가 "한명숙 '맑음'-김병준·전윤철 '대체로 맑음'"으로 바뀔 조짐이다.

필자는 지난 16일자 '정치 톺아보기'에서 총리 인선 기상도를 일기예보에 빗대어 "김혁규·정세균 '흐림', 김병준·전윤철 '맑음'"이라고 '예보'했다. 당시 언론에서 총리감으로 거론한 후보 중에서 정치인 출신 두 사람이 기용될 가능성보다는 청와대와 정부에 몸 담은 두 사람이 기용될 가능성에 힘을 실은 기사였다.

이 '예보'는 국지적인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다음날인 17일 저녁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후임 총리 인선과 관련 "정치적 중립을 지킬테니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서실장의 갑작스런 브리핑, 총리 인선 기상도 변화

노 대통령이 이런 '기준'을 내놓자 청와대 안팎에서는 대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예상했다. 정치인 출신이 아니면서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기조에 정통한 인사라는 '교집합'을 모두 만족시키는 인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18일부터는 다른 언론에서도 대체로 김병준 정책실장과 전윤철 감사원장 중에서 기용할 가능성을 점쳤다.

그런데 20일 갑자기 총리 인선 기상도에 변화가 생겼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갖고 총리 인선 방향과 관련해 "정치권 비정치권이든, 남자 여자이든, 인선 기준으로 정한 몇가지 방향에 부합한 분을 4∼5배수 후보로 놓고 백지상태에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병완 실장이 이날 기자들에게 제시한 후임 총리 인선 기준은 ▲국정의 안정적 운영 ▲정치적 중립성 ▲참여정부 정책 이해도 ▲국회와의 의사소통 ▲행정능력 ▲대국민 정서적 안정감이라는 6개 기준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종종 '원론적 기준'보다는 일문일답 속에 '해답'이 숨어있다.

이병완 실장은 "대통령이 정치권, 비정치권이라고 나눠서 말한 적은 없었다"며 "정치권이라고 해도 특별히 두드러진 정치색이 없을 수도 있고, 비정치권 후보라도 정치권에서 정치색을 강조해서 볼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권 인사를 포함시켜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원점에서 재검토'의 의미에 대해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병준 실장의 경우 여전히 후보군에 포함돼 있으나, 폭을 최대한 넓혀서 최대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을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병완 실장이 '일부러' 기자실에 들러 '원점에서 재검토' 의사를 밝힐 때는 대개 '기존 카드' 대신에 '다른 카드'를 검토중임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 참모들의 처지에서는 언론이 너무 '정확'하게 인사를 예측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죄다 엉뚱하게 예측하는 것은 더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여성, 그리고 정치색이 두드러지지 않은' 교집합 후보는 한명숙 의원

▲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 점에서 보자면, 김병준 실장보다는 정치적 역량을 갖춘 열린우리당 의원이 더 유력해진다. 게다가 이병완 실장은 "정치권 비정치권이든, 남자 여자이든, 인선 기준으로 정한 몇가지 방향에 부합한 분을 4∼5배수 후보로 놓고 백지상태에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정치권이라고 해도 특별히 두드러진 정치색이 없을 수도 있고, 비정치권 후보라도 정치권에서 정치색을 강조해서 볼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여성, 그리고 정치색이 두드러지지 않은 후보'라는 교집합을 충족시키는 인사는 한명숙 의원(고양 일산갑)이 유력하다. 이는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을 나누어 이끌어갈 '책임총리'에 '최초의 여성 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한 의원은 처음부터 유력한 총리 후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필자는 지난 16일 당시 총리감으로 거론된 한명숙 의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하마평'만 다루었을 뿐, 기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보'를 하지 않았다.

"한명숙 의원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국면전환을 할 수 있는 여성총리라는 점에서 유력한 카드 가운데 하나다. 최근 독일 총리에 이어 칠레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등 세계적 흐름도 여성의 리더십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 여성의원들의 당직 인선을 조율하는 등 여성 의원의 '대모'로 꼽힐 만큼 리더십과 조정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노 대통령도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나라당도 반대할 수 없는 카드라는 점이 강점이다. 다만, '베스트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임기말의 레임덕을 관리할 수 있는 국정 장악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는 인선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도 반대할 수 없는 카드

'리더십과 조정능력 그리고 대통령의 호감'을 고려하면 한 의원은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거기에다가 '한나라당도 반대할 수 없는 카드'이니 말 그대로 '베스트 카드'였다. 결격이 될 만한 사안이 없어 인사청문회 통과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도 지난 17일 "당대표가 여성인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문제를 이야기할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며 '여성 총리' 지명을 고려해 달라고 제안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만나 "야당 마음에 쏙 들 총리"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일 '총리 기상도 예보' 기사에서 "임기말의 레임덕을 관리할 수 있는 국정 장악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는 인선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 것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견해가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고위 관계자는 "현재 총리후보 인선에 대한 대통령의 지침이 전혀 없다"고 전제하고 "노 대통령에게 관심사항은 지방선거가 아니라 이해찬 총리처럼 '일하는 총리'에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보다는 비정치인 쪽에 무게를 싣는 코멘트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청와대의 의도적인 여론 떠보기 수순에 따라 '정치권과 여성 그리고 정치색이 두드러지지 않은 후보'로서 한명숙 의원이 거론되는 것은 총리후보 인선에 대한 대통령의 지침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검증되지 않았던 국정 장악력에 대한 판단이 섰음을 의미한다. 물론 두가지가 동시에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의원은 특히 열린우리당 여성의원들의 당직 인선을 조율하는 등 여성 의원의 '대모'로 꼽힐 만큼 리더십과 조정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데다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 인사라는 점에서 여당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재야 출신이라는 점에서 김근태 최고위원과 가까운 인사로 분류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어느 계파에 속하지 않는 '중립'이라는 것이 한 의원측의 얘기다.

아울러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김대중 정부와의 연속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인선 기준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장관을 지낸 한 의원은 김명자 환경부장관과 박선숙 청와대 공보수석(대변인) 등과 함께 국민의 정부 장·차관급 발탁 인사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각각 국회의원과 환경부차관으로 참여정부에서도 중용되었다.

일부에서는 참여정부 임기 후반기의 관료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없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부·환경부장관 때의 부처 장악력은 합격점을 웃돌았다는 평가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 간사(1974~1979) 시절부터 '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체득한 조정력이 총리 역할 수행에 힘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평가도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가족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1989) ▲한국여성민우회 회장(1990~1994)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1993~1995)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1993~1995) ▲환경처 환경보전실무대책위원회 위원(1993~1995) ▲통일부 교류협력분과위원회 정책자문 위원(1993~1994)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1993~1996) ▲방송개혁국민회의 공동대표(1994~1995) 같은 민간 및 정부자문 분야에서 쌓은 그의 경력은 이미 '총리급'이다.

노 대통령은 막판 고심중

▲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과 전윤철 감사원장. 총리 기상도에서 여전히 '대체로 맑음'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아직 막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여성부·환경부장관으로서 무난하게 일을 처리해 오기는 했으나, 임기말의 어려운 국면을 타개할 능력까지 있는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일부 참모들도 "여성인 한 의원이 추가로 유력한 후보군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병준 실장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노 대통령의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언사일 뿐이지, 21일 현재 총리 인선 기상도는 김병준 '대체로 맑음'에서 한명숙 '맑음' 쪽으로 기울고 있는 느낌이다.

여성부장관 출신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을 슬로건으로 내세워온 한명숙 의원이 총리로 기용되면 그는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첫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갖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첫 여성 총리서리'로 기용했지만, 그는 국회 인준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총리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이르면 22일 후임 총리 인선을 최종 결심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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